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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평가는 높고 할 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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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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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사무총장 연임한 코피 아난… 총회 결의사항 추진, 위상 재정립, 평화유지군 개편 등이 숙제

지구촌은 만성적인 빈곤과 전쟁으로 조용할 날이 없다.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벌이로 간신히 연명하는 빈곤층, 경제제재로 고통받는 국민들, 내전의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 189개 국가들 모임인 국제연합(UN)의 사무총장 코피 아난(63)은 이런 문제들로 씨름해왔다. 아난 총장은 지난 4년 반 동안 미국 등 유엔안보리에서 거부권을 지닌 강국들과 제3세계 국가들 틈바구니에서 유엔이 거듭나기 위한 개혁을 추진해온 인물이다. 이집트 출신으로 반미적 자세를 보였던 부트로스 갈리 전 유엔 사무총장은 미 클린턴 행정부의 반대로 총장 연임에 실패하고 물러났다. 유엔 사무차장에서 97년 1월 총장에 오른 코피 아난은 지난 6월 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지명을 받고, 유엔총회에서 5년 임기의 사무총장 연임이 확정됐다. 그는 출신지(가나)인 아프리카 국가들은 물론이고, 미국이나 중국 등으로부터도 긍정적 평가를 받아 연임에 성공한 인물이다.

“국제외교무대의 록스타”

클린턴 정권에서 유엔 미 대사를 지낸 리처드 홀브룩 같은 이는 아난 총장을 “국제외교무대의 록스타(rock star)”라고 후한 점수를 매긴 바 있다. 아난 총장은 지난 62년 세계보건기구(WHO) 예산·행정담당관으로 유엔에 첫발을 들여놓았고, 35년 만에 유엔 직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 부드러운 말씨 속에 설득력을 지닌 외유내강형이다. 지난 5년간 안으로는 군살빼기로 유엔을 개혁하고 빈곤퇴치운동과 분쟁지역의 평화유지 등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아왔다. 연임에 즈음해 이루어진 기자회견에서 아난은 인권탄압과 만성적 빈곤퇴치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아난 총장은 현재 특별위원회를 구성, 오는 9월에 열릴 유엔 정기총회에 지구촌과 유엔이 당면한 문제점들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당면한 유엔 개혁과 빈곤퇴치, 평화유지업무에 대한 문제점과 보완책이 담겨질 것으로 보인다.


아난 총장에게 주어진 과제들은 하나하나가 간단치 않다. 인류와 지구촌의 앞날에 관한 과제물들이다. 지난해 9월 밀레니엄정상회의와 유엔총회에서 잇따라 결의한 사항들을 제대로 추진해나가는 것은 아난 총장의 중장기적 과제다. 아난 총장의 제안과 주도 아래 전세계 147개국 국가원수 및 정부수반들이 참석했던 밀레니엄정상회의에서는 △2015년까지 하루 1달러를 못 버는 절대 빈곤층과 굶주리는 사람들 숫자를 절반으로 줄이고 △2020년까지 적어도 1억 도시빈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빈민가 없는 도시들을 만들고 △2015년까지 전세계 모든 어린이들이 초등교육을 받게 하며 △2015년까지 유아 사망률을 75% 줄이고 △2015년부터는 HIV/AIDS와 말라리아를 비롯한 주요 질병들의 확산을 그치게 하자고 결의했다. 그러나 이런 목표치들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충분한 재원이 마련돼야 한다. 현재 유엔의 1년 예산은 미국 뉴욕시 1년 예산보다도 적은 형편이다. 선진 부국들의 협조를 얻어 그 재원들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상당부분 아난 총장의 외교력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유엔의 위상 재정립과 관련한 다수국가들의 불만과 개혁요구를 어떻게 소화해 나가는가도 아난 총장이 풀어야 할 과제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강대국들에 휘둘려 유엔이 제3세계의 목소리를 전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유엔총회가 유엔의 중심 정책결정기구이자 대표기구라고는 하지만, 유엔의 중요결의사항이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지닌 5대 강국들의 손에 좌지우지되는 게 현실이다. 유엔의 무게중심은 5개 강국들이 버티는 유엔안보리쪽에 실려 있다. 그렇기에 “유엔총회는 안보리 결의를 추인하는 들러리”라는 지적을 끊임없이 듣고 있다. 제3세계 국가들이 이런 문제점을 고치려 해도 개혁은 조체 쉽지가 않다. 힘의 논리가 현실정치에 반영되는 한, 유엔에서 이른바 ‘빅5’의 기득권을 흔들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빅5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 한편으로 다수 회원국들의 목소리를 유엔 운용에 반영하는 것은 아난 총장의 정치력과 외교력으로서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친미적 인물은 아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 등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대치중인 국가들에 대한 유엔의 제재결의는 아난 총장이 풀어야 할 쟁점현안이다. 일부에서 “코피 아난은 친미적 인물”이란 지적이 제기돼왔다. 그러나 이를테면, 이라크 경제제재와 관련한 그의 태도로 미루어보면 친미 일변도라는 지적은 올바르지 않다. 98년 코피 아난이 이라크를 방문할 무렵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은 아난 총장을 통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에게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무기사찰 요구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폭격을 받느냐”를 택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아난 총장은 미국의 요구가 온당치 못하다는 판단을 했고, “이라크에 대한 유엔의 비효과적인 경제제재는 이라크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줄 뿐”이라는 의견을 내비쳐 올브라이트를 화나게 했다. 당시 올브라이트는 “당신의 전임자 부트로스 갈리가 미국의 반대로 사무총장에 연임하지 못했다는 점을 잊지말라”고 퉁명스레 말한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은 물론 러시아에 대해서도 코피 아난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할말을 해왔다. 지난 5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아난 총장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란으로 쑥밭이 된 체첸지역에서 유엔 요원들이 실태조사를 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체첸은 인권 시비와 관련해 러시아로선 아픈 구석이라 외부세계의 발길이 닿는 게 부담스러운 곳이다. 아난 총장은 지구촌 어떤 특정국가 안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생겨날 경우 인권 차원의 간섭(Humanitarian Intervention)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론을 펴왔다. 그러나 일부 국가들과 국제법 학자들은 ‘주권침해론’을 펴왔다. 국제법학계에선 아난 총장이 내건 인권 차원의 국제적 간섭론이 주권침해론보다는 주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인권단체들은 코피 아난의 인권에 대한 높은 관심에 후한 점수를 매겨왔다. 국제적인 인권감시기구인 HRW(Human Rights Watch)는 아난 총장의 연임에 즈음한 성명을 통해 “역대 사무총장 가운데 코피 아난은 인권을 유엔의 중심업무로 자리매김한 총장”이란 평가를 내렸을 정도다. “아난 총장의 연임이 곧 인권의 승리”라는 얘기다.

인권침해와 전쟁범죄를 일으키는 국가의 주권은 보호받을 수 없다는 이른바 ‘아난 독트린’은 국제법 전문가들 사이에 힘을 얻고 있다. 아난 총장은 지난해 봄 시에라리온의 반군 혁명연합전선(RUF)이 유엔평화유지군을 포로로 잡고 사실상 로메평화협정(1999년)을 파기한 사실을 들어 “반군들에 대한 면죄부를 거두어들이고 전쟁범죄자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 1999년 미국 클린턴 정권이 RUF 반군지도자 포데이 산코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을 뼈대로 하는 로메평화협정을 추진할 때 인권단체들은 “전쟁범죄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나쁜 전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비판했었다. 1999년 동티모르에서 친인도네시아 민병대들에 의한 학살이 벌어질 당시 아난 총장은 “인도네시아 정치지도자들이 다국적 평화유지군의 배치에 동의하지 않으면 언젠가 전쟁범죄자로 법정에 서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최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지나친 총기 사용, 특히 팔레스타인 행동대원들에 대한 표적암살(Targeted Assassinations)에 대해서도 아난은 매우 비판적이다.

힘얻는 ‘아난 독트린’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아난이 고심해온 것이 유엔 평화유지 활동에 대한 전면 재검토 작업이다. 이 부문에서 유엔은 그동안 비능률과 시행착오를 보여왔다. 아프리카 소말리아 내전(93년), 르완다 내전(1994년), 보스니아 내전(95년) 시에라리온 내전(2000년) 등에서 그러했다. 보스니아 내전 당시 유엔이 설정한 ‘안전지대’에 머물렀던 회교도들이 세르비아계 무장세력에 집단학살과 조직적 강간을 당할 때도 비난결의안을 내는 수준에 머물렀다. 정작 세르비아계를 제압한 것은 미국과 영국군이 주도한 나토군이었지 유엔평화유지군은 아니었다. 코피 아난은 지난해 유엔 평화유지 업무 전반에 걸친 재검토 작업에 들어갔고, 그 결과 유엔 신속대응군 창설을 뼈대로 하는 브라히미 보고서가 제출됐다. 이 보고서는 분쟁예방, 분쟁의 평화적 해결, 평화유지, 분쟁 뒤 평화조성과 재건에 필요한 자원과 도구들을 갖춰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로선 상비군(常備軍)을 비롯한 자원과 도구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이래저래 코피 아난 총장이 풀어야 할 과제들은 산더미다.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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