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원 NG리포트
북국의 여름이라지만 한낮에는 25도 이상을 웃돌아 후덥지근할 때도 있다. 불쾌지수로 말하자면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이런 날씨에는, 더구나 먼 이국땅에서 불이익을 겪고 있노라면 괜히 짜증이 나곤 한다. 몇년 전 바로 이맘때의 일이다. 나에게 불현듯 전화를 해온 그 사람도 어지간히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나하고는 직접 안면도 없던 사람인데 아내와 학교에서 몇번 마주쳤던 모양이다. 아내에게서 내 휴대폰 전화번호를 얻어 내게 상담을 해오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래도 그렇지 휴대폰 벨이 울리자마자 첫마디가 다짜고짜, 마치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박현봉씨 맞습니까? 아니, 이래도 되는 겁니까? 도대체 남의 돈을 떼먹자고 작정을 한 것이지!”라고 큰소리쳐대는 데는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이구, 죄송합니다만 누구신데 무슨 일로 그러시는지요?”라고 묻는 내 목소리가 아주 초라할 만큼 죽어들어갔다. 문제는 한국에서 부친 돈이 한달이 넘도록 입금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곳의 유학생들치고 한때 송금문제로 골치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선 대개 송금은 미국계 은행을 거쳐 이루어지기 때문에(러시아엔 한국은행 지점이 없다) 시간도 더 소요되고 한국에서 송금을 신청하는 절차 또한 복잡하다. 게다가 한국의 은행시스템과 같은 온라인 제도나 고객편의 위주의 전산망이 잘 갖춰져 있지 않기에 단돈 1달러를 찾으려 해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현지 은행 거래 창구 곳곳에서 고객과 은행직원들이 무언가 열심히 손으로 적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나의 유학생활 1년차 때의 일이다. 아라비아 숫자와 함께 문자로 찾을 금액을 기입하는 과정에서 예금청구서를 무려 반나절이나 작성하면서 러시아 숫자를 문자로 적는 방법을 현장에서 확실히 배운 적이 있다. 이를테면 숫자의 첫 알파벳은 대문자로 써야 한다. 소문자로 기입되어 있으면, 우리 생각에 간단히 다시 고쳐쓰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철자 하나 잘못된 덕택에 나머지 A4 한장 분량의 모든 기재사항을 다시 기입해야만 한다. 고객을 완전히 무시한 관료주의 산물이라고 투덜거려보지만 어쩔 수 없다. 다시 쓸 수밖에. 모든 신청서류가 이같이 신청자의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일이 잘못된 경우는 대체로 신청자가 무언가 실수했다는 결론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충고는 이러한 나의 일화를 반복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마치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었다. “아니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한국에서 실수할 리가 없어요. 우리 동생이 보냈는데 그 애가 그렇게 덤벙댈 녀석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돼먹지 않은 러시아 은행에서 고의적으로 돈을 안 내주거나 실수한 겁니다”라는 대답이 충고에 대한 보답의 인사였다.
그리고 한달쯤 지났을까? 우연히 당사자를 길에서 만났다. 문제가 잘 해결됐냐는 나의 질문에 “알고보니 한국의 은행에서 미국 은행 계좌와 예금주 계좌번호 둘을 다 적어야 하는데 미국 은행 계좌만 적는 바람에 돈이 되돌아갔다고 하더군요”라며 얼른 얼버무리고 사라졌다. 자초지종을 잘 살펴보지 않고 성질부터 내고보는 한국인의 ‘냄비문화’에 스스로도 씁쓸해질 수밖에 없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박현봉 통신원 parkhb_spb@yahoo.com

그리고 한달쯤 지났을까? 우연히 당사자를 길에서 만났다. 문제가 잘 해결됐냐는 나의 질문에 “알고보니 한국의 은행에서 미국 은행 계좌와 예금주 계좌번호 둘을 다 적어야 하는데 미국 은행 계좌만 적는 바람에 돈이 되돌아갔다고 하더군요”라며 얼른 얼버무리고 사라졌다. 자초지종을 잘 살펴보지 않고 성질부터 내고보는 한국인의 ‘냄비문화’에 스스로도 씁쓸해질 수밖에 없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박현봉 통신원 parkhb_spb@yah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