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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겨울잠이라뇨? 말도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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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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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회진출의 ‘숙원’을 풀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영국 녹색당 대표 페니 켐프를 만나

사진/ 영국 정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의 빅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영국 녹색당의 실질적인 리더인 페니 캠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핀란드, 네덜란드 등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 녹색당이 연립정부에 참가하는 등 ‘녹색정치’가 고조되어 있다. 이에 반해 영국의 녹색당은 유럽최초의 녹색당이란 역사에도 불구하고 최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단 한명의 국회의원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총선 직후 만난 영국 녹색당 대표 페니 켐프(Penny Kemp, 중앙위 의장)의 얼굴은 아주 밝고 희망에 차 있었다.

비례대표제가 문제였다

“다른 유럽국가들의 녹색당들이 비례대표제도에 힘입어 의회진출에 성공하고 공동집권까지 하는 데 반해 영국은 아직도 총선에서 소선거구제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10명의 후보가 5% 득표를 넘어 공탁금을 반환받았어요. 이는 굉장한 약진입니다. 비례대표제로 치른 런던시의회선거에서 11% 득표로 25명 정원에 3명을 당선시켰고, 유럽의회선거에서는 5%의 전국적인 지지를 얻어 2명의 의원이 활동중이죠. 모두 최근 몇년 사이의 일이에요. 총선에서 비례대표제를 실시한다면 12∼13명은 우리 녹색당 몫이라고 생각해요. 영국 녹색당의 미래는 밝습니다.”


실제 영국 녹색당은 유럽에서 환경운동이 가장 활발하던 지난 89년 유럽의회선거에서 전국 15%라는 세계 녹색당 선거사상 유례없는 지지를 얻어냈지만 비례대표제를 실시하지 않아 단 한석도 얻지 못했던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다. 런던서 기차로 한 시간 가야 하는 켄트라는 농촌지역에서 살고 있는 페니 대표는 일주일에 한두번 런던으로 와서 의장으로서의 업무를 본다. 70년대 초반에 나온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Silent Spring)이란 책 한권은 인권과 평등의 문제에 몰두해 있던 그를 환경적 불평등의 문제로 이끌었다. 그 책이 준 깊은 충격은 녹색정치 실현을 위한 그의 삶에 깊이 새겨져 있다.

최근의 양상을 “유럽에서 가장 먼저 생긴 영국 녹색당이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고 하자, 그는 “겨울잠이라뇨? 당치도 않은 표현이에요. 우리가 그동안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는 말인가요?”라며 필자가 머쓱해 질 정도로 정색을 했다. 아무리 두드러진 결과를 내지 못해왔다 할지라도 22년여를 녹색정치의 실현을 위해 애써온 페니에게 겨울잠이라는 표현은 대단히 섭섭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그는 지역과 중앙의 역할을 맡으면서 경험을 쌓아 <90년대 녹색당선언> <유럽의 녹색대안> 등 모두 3권의 책을 집필한 녹색정치 전문가이다.

단일통화, 연대의 가장 큰 장벽

영국은 독일 못지않게 환경운동이 활발한 나라인데 왜 유독 녹색당 활동만은 이렇게 큰 차이가 난 걸까. “영국 내 수십만명의 회원을 가진 대형환경단체들은 새보호, 동물보호, 내셔널트러스트 등 특정환경분야에 국한되어 있어요. 그리고 독일과 달리 영국은 총선에서 비례대표제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점, 독일의 모든 정치정당은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다는 점 등이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죠.”

그는 유럽 각국의 녹색당들이 서로 연대활동을 벌이려 할 때 장애가 되는 큰 의견 차이가 하나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유럽단일통화문제이다. 즉 유로화가 중심이 된 단일경제시스템을 둘러싸고 각국의 문화, 역사적인 배경에 따라 큰 이견을 보인다는 것이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심에 자리한 국가의 녹색당들은 찬성하고, 외곽의 스칸디나비아국가들과 네덜란드, 아일랜드, 영국 등은 반대한다고 한다.

지난 4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열린 제1회 세계녹색당대회에 그와 다른 동료들은 참가하지 않았다. 이유는 지구온난화의 원인 중 하나인 비행기 이용을 자제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운동과 정치,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녹색당’이라는 정치와 현실을 택한 그이지만 여느 운동가나 이론가 못지않게 원칙을 고수하며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런던=글·사진 최예용 통신원 choiyeyong@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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