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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떠나자, 아시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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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7-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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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타령하면서 해외여행을 문제삼는 이상한 세계화주의자들을 마음껏 비웃어주자




사진/ 발리.

  


사진/ 치앙마이.



사진/ 팔라완.

  


사진/ 앙코르와트.



“먹고살기도 어려운 판에 해외여행이라니….” “경제사정이 이런데 외화 낭비를….”

휴가철이 돌아왔지만 해외여행은 궁지에 몰렸다. 요즘 분위기라면 서민들은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해외여행을 입에 담기도 힘든 실정이다.

상업학교를 마치고 염색공장 서무로 일해 받는 월급 75만원(올해 기준)에서 매달 2만원씩 6년간 계를 들어 마련한 돈 120만원- 노조 파업 때 30만원, 아버지 환갑에 20만원을 쾌척해서 차질이 생김- 으로 해외여행을 꿈꾸어왔던 한 아가씨도 철퇴를 맞았다. “대학간 친구들 배낭여행 갈 때도 나는 일만 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인도를 꿈꾸어왔던 이 아가씨의 10년 묵은 계획은 요즘 흔들리고 있다. 주변 눈들이 무섭고 사회가 으름장을 놓는 탓이다. 지면마다, 채널마다 해외풍물을 쏟아내며 ‘떠나기’를 자극했던 신문과 방송들이 외환타령으로 해외여행자들의 발목을 잡는 통에.

‘여행자’와 ‘업자’의 차이

정부는 경제지표가 조금만 흔들려도 어김없이 해외여행부터 문제삼아왔다. 무역역조의 책임도 외화부족의 책임도 심지어 외채의 책임도 모조리 해외여행 탓으로 돌리겠다는 태도였고 해외여행자들을 마치 범법자 보듯 흘겨왔다. ‘여행자유화’ 거짓말도 밥먹듯이 했다. 정부가 나서 ‘위화감 조성’, ‘외화낭비’를 우겨대는 판에 그 자유는 어디로 새버린 것이다. 우리말고는 환율변동과 외환사정에 따라 여행의 조건을 제한하는 정부도, 경제사정에 따라 민관합동으로 여행자들에게 회초리를 드는 경우도 이 세상에는 없다. 그 내용도 따지고보면 ‘빈대 잡겠다고 초가산간 태운 꼴’.

잡을 놈은 따로 있다. 순결한 여행자들을 도맷금으로 넘기지 말라는 뜻이다. 롤렉스 숨겨오는 작자들이나 밍크코트 걸치고 돌아오는 아줌마들이나 또 카지노에서 하룻밤에 수십만달러를 날리는 졸부들을 ‘여행자’라 부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이들은 ‘업자’다. 업자와 여행자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부는 직무유기며 언론은 왜곡보도다. 수백만달러를 카지노에서 날렸다는 언론사 사주 하나만 제대로 잡아들였어도, 배낭 메고 온 세상을 배움터 삼아 돌아다닐 우리 젊은이들 수천명의 여행경비와 맞먹는 외화를 절약할 수 있었다는 계산인데, 이래도 초가산간을 태울 것인가.

세금으로 해외나들이를 하는 국회의원 하룻밤 방값 350달러면 70명의 젊은이들이 낮선 이국땅에서 하룻밤을 거뜬히 보낼 돈이다. 이래도 가자미눈으로 볼 것인가. 한번 물어보자. 도대체 업자들 자금을 빼고 난 순수여행자들이 일년에 해외에서 쓰는 돈은 얼마며, 무역외수지 불균형이 순수여행자들의 과대지출 탓인지….

정부가 정확한 수치를 공개할 수 없다면 지금까지 거짓말을 해왔다는 증거이고, 정부가 정밀한 수치를 제시할 수 있다면 또 국제적인 망신이다. 연간 1500억달러치나 물건을 내다파는 한국경제의 인색함이 폭로되면서. 주고받는 게 국제사회고 국제관계의 ABC다. 외국관광객 유치를 위해 별 희한한 궁리를 다 하면서 자기 국민들의 해외여행경비 지출은 불손하게 여긴다니! 국제사회에 눈치가 보여 대놓고 해외여행을 막지는 못하겠고, 안방에서 끙끙 앓고 있는 이 비정상적인 세계화주의자들, 이 협애한 자국이기주의자들, 이게 우리다.

누가 자유로운 여행을 왈가왈부하는가

냉정하게 현실을 보자. 여행은 자유다. 누구도, 어떤 이유에서도 이 본질적인 권리를 놓고 왈가왈부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가고 싶으면 가고 가기 싫으면 가지 않는 게 여행이다. 정부도, 언론도, 시민단체도 또 외환사정도, 경제불황도 그 어떤 사회적 현상도, 문화도, 종교도, 이념도 자유로운 여행을 제한할 만한 자격이 없다. 이건 개인의 선택이고 개인의 사정일 뿐이다. 그래서 아시아 네트워크는 휴가철을 맞아 중대한 결심을 했다.‘떠나자, 아시아로’라는 도발적인 구호를 내걸고. 도와주지 못할 바에야 온 세상을 품에 안아보겠다는 꿈과 야망을 지닌 젊은이들의 앞길에 훼방만은 놓지 말자는 뜻에서. 그리고 염색공장 아가씨도 큰 용기를 얻어 10년간 가꾸어왔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굳이 아시아가 아니어도 좋다. 아프리카든 라틴아메리카든 또 유럽인들 어떠랴. 가고 싶은 곳이 있고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자신있게 길을 떠나자. 아시아 네트워크는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배워보자는 뜻에서 아시아를 우선했을 뿐이다.

끝으로 아시아 네트워크는 현실적으로 해외여행을 떠날 수 없는 대다수 건강한 시민들에게도 이번주 아시아 네트워크를 선물로 바친다. 비록 여행은 아니더라도 아시아를 이해하는 정보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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