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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숨은 돈'은 어디로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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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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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러시아 IMF 지원자금 횡령 수면 위로…푸틴은 옐친 시절 그림자 벗을 수 있을까

(사진/경제 위기에 대한 IMF의 지원은 헛수고 였는가.98년 8월 예금 인출을 위해 줄서 있는 모스크바 시민들)
98년 7월 러시아에 외환위기가 닥치기 직전 국제통화기금(IMF)이 러시아에 지원한 480억달러의 자금 중 일부가 없어진 사건이 뒤늦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IMF 지원금의 횡령 사실이 처음 불거져나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의 일이다. 당시는 뉴욕은행의 계좌들에서 러시아가 출처일 것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액수의 불법자금 돈세탁 사실이 국내외에 알려지면서 러시아의 정·재계가 후유증을 앓고 있던 때였다. 당시 러시아 국가두마 내 국가부패방지위원장을 맡고 있던 빅토르 일류힌은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두마 차원에서 거론하고 사태의 신속한 해결을 위한 심도있는 수사에 착수해줄 것을 대검찰청에 요청했다. 그의 수사 요구에 검찰은 마지못해 행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당시 중앙은행 총재인 게라쉔코는 의회 증언에서 “러시아로 지원된 IMF 자금은 그 전액이, 마지막 1센트까지 다 도착했다”며 일류힌의 문제제기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되고 말았다.

미궁 속의 사건이 다시 물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5월15일 스위스 법무당국이 러시아 당국에 수사 협조를 촉구하면서부터이다. 이에 대한 러시아쪽의 대답은 ‘침묵’이었다. 사실 ‘뉴욕뱅크 스캔들’ 이후 스위스 법무당국은 인터폴과 협조해 불법자금의 국제적 유출과정을 조사해왔는데, 이 과정에서 스위스에 체류중인 러시아인 및 러시아계 주요 사업가와 업체들에 부속된 3천만스위스프랑의 금액이 러시아에서의 IMF 지원자금 횡령과 긴밀한 연관이 있음을 포착하게 된 것이다.

뉴욕은행의 ‘돈세탁 미스터리’


스위스의 <제네바 트리뷴>은 뉴욕뱅크 스캔들과 IMF자금 횡령건을 함께 조사해온 로란 카스페르 안세르메의 말을 인용해 “러시아에 대한 IMF 지원자금은 4차례에 걸쳐 러시아 중앙은행으로 들어갔는데 480억달러의 지원자금 중 일부인 14억달러가 1998년 8월18일 뉴욕은행의 계좌로 송금된 게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앞으로의 수사결과는 이 자금이 뉴욕은행 돈세탁과 연결돼 있다는 물증을 확보하는 데 달려 있다고 전망했다.

러시아에서의 IMF 자금 실종 사건과 뉴욕은행 돈세탁 사건은 주로 해외 언론과 해외 수사진에 의해 추적돼왔다. 그러나 최근들어서는 이 문제가 이제 러시아에서도 본격적으로 규명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7월31일자 스위스의 <르 탕>( Le Temps)에는 “IMF 자금 횡령건에 관한 스위스쪽 수사활동이 러시아에서의 수사에 활력을 줄 것”이라는 제하의 분석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최근 몇년 동안 러시아에서 크레믈린이 깊이 연관되어 있을 그 어떠한 경제범죄도 IMF 자금 횡령건 만큼 큰 스캔들은 없었다”며 “러시아 대검 수사관 니콜라이 볼코프가 러시아에서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게끔 할 중요한 정보를 스위스쪽으로부터 전달받았다”고 보도했다. 볼코프가 “자금의 일부가 스위스에 존재하고 있거나 혹은 보관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하며 이 문제를 대검 지도부와 숙고할 예정이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는 것이다.

볼코프는 자타가 공인하는 경제범죄 전담 수사관이다. 러시아 언론사 기자들은 바로 다음날 모스크바로 돌아온 볼코프에게 사실의 진위를 묻기 위해 몰려갔다. 그러나 그는 <르 탕>에 인용된 자신의 말과는 전혀 다른 말을 발표해 모든 이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볼코프는 <리아 노보스지>와의 회견에서 “나는 IMF 자금의 불법적 횡령 사건을 수사할 의도가 있다고 말한 적도 없고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며 스위스 언론의 보도는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다. 그외 수사와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며 침묵으로 일관했다.

볼코프의 꾸러미 속엔 무엇이?

그러나 기자들은 볼코프가 스위스에서 모스크바로 가져온 0.5t에 해당하는 20여개의 박스에 주목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업무차 출장을 갔다온 사람의 짐이 그렇게 많을 리 없다는 게 대다수 기자들의 생각이다. 이 박스의 내용물은 대부분 수사와 관련해 입수한 자료들일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최근까지 푸틴 정부는 이른바 올리가르흐라 불리는 과두 재벌들과 크고작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 모두가 구옐친의 토양에서 자라온 과두재벌들임을 감안할 때 최근 조처들은 가히 옐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평가될 만하다. 그간 틈만 나면 ‘법의 지배’를 천명해온 푸틴 정부가 옐친 시절 최대 자금 스캔들로 치부되는 이 사건에 종지부를 찍고 사라진 돈의 행방을 밝혀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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