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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원리포트/ 대만의 <낮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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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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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8살에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50년 넘게 별마와 싸워온 추미코 할머니. 그는 증언도중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
“일본이 아시아 침략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목소리만이 모든 일본인의 목소리는 아니다. 지난 8월11일 ‘전쟁책임을 생각하는 치바 8월의 모임’(치바모임)이 개최한 ‘대만으로부터의 호소-다시 종군위안부 증언을 듣는다’는, 최근의 일본 교과서 왜곡사건과는 또다른 목소리를 접할 수 있게 해준 모임이었다.

치바모임은 85년 나카소네 당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공식참배에 대해 아시아 여러 나라가 크게 반발하자, 이를 계기로 일본의 뜻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돼 86년 결성됐다. 오사카에 사무국을 두고 있으며 30여명의 자원봉사자와 1달에 1천엔 이상을 내는 200여명의 회비로 운영되고 있다.

모임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영화상영과 대만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으로 꾸며졌다. 영화는 지난 98년 대만의 아카데미상에 해당하는 짐마(金馬)상 최우수 기록영화상을 받은 <할머니의 비밀>.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를 연상케 하는 이 영화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차례차례 찾아나선다. 얼굴을 가린 채 지난 92년 대만 최초로 일본 정부를 고발한 3명의 할머니, 산 속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客家人) 자매 할머니, 공개석상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내밀고 일본 정부의 배상과 공식사죄를 요구한 아토우 할머니, 대만 국내에서 일본군의 성적 봉사를 강요받았던 원주민 할머니들이 그들이다.

증언에 나선 사람은 대만의 위안부였던 후미코 할머니(76살). 아직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밝히지 않길 원해 가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식당일’ 인줄 알고 언니와 함께 따라나섰던 곳은 하이난다우(海南島)의 위안소. 그때 나이 18살이었다. 언니보다 조금 일찍 대만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그로부터 50년 넘게 병마와 싸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일본 젊은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해도, 그들이 이를 사실로 받아드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지난 8월15일 오사카에서 일본 14개 지역 사람들이 모여 개최한 ‘전쟁희생자를 가슴에 새기는 집회’는 그런 의미에서 뜻깊다. 일본의 젊은이는 물론 일본인 모두의 가슴에 희생자의 이름들을 아로새겼기 때문이다. 그날 오사카로 간 대만 할머니들은 우리나라 나눔의 집 정신대 할머니들과 ‘텔레비전 전화 집회’도 가졌다. 오는 12월 개최를 위해, 7개 국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2천년 여성국제전범 법정’을 위한 1만명 회원 캠페인도 한창이다.

치바모임 회장 오오시마(大島孝一)는 최근 일본 교과서에 일본은 전쟁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내용을 싣는 문제에 대해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아시아에서 다시 패권을 잡기 위한 초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본이 좀더 명예로울 수 있는 것은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도쿄=신명직 통신원 mjshin59@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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