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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아름다운 굴레, 원주민의 베틀

쿠스코에 잠시 정착해 직물짜기를 배우다 베틀이 인생의 굴레가 된
여성의 삶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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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19 16:41 수정 : 2011-01-2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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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코에 2개월간 정착한 목적과 이유는 단순했다.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이 ‘집’이 된다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안락함과 청결함이라는 부분에서 조금 결핍된다 할지라도 육체와 영혼이 쉴 수 있는 공간은 ‘집’이라고 불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이 바라보는 ‘집’은 투자 대상이지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운 좋은 사람들이라서 어딜 가든 머물 공간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이 작은 오두막이든 창고든 중요치 않았다. 쿠스코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달동네 언덕의 옥탑방에서 오랜 여행에 작은 쉼표를 찍고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때 가장 좋았던 것은 당분간은 매일 같은 곳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맨 오른쪽)가 베틀로 직물을 짜는 친체로 여성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쿠스코에 도착해서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전통 직물짜기였다. 그것을 배워보고 싶었다. 시내의 한 고급 부티크에서 하루 2시간 과정의 강좌가 있었지만 가격이 비쌌다.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이 이곳에서 10만원이 넘는 벨트가 ‘친체로’라는 인디언 마을에서 오는 것이라고 귀띔해주었는데, 그녀는 우리가 고가의 물건을 살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걸 금세 알아차린 듯했다.

다음날 우리에게 베틀 기술을 가르쳐줄 선생님을 찾아 친체로로 갔다. 인상 좋은 아줌마에게서 벨트를 하나 사고 기본 기술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러 쿠스코 시내로 나오는데 그때마다 만나서 가르쳐주었고, 우리는 형편에 맞춰 수업료를 냈다.

대부분의 친체로 여성들이 그렇듯, 그녀는 8살 때부터 베틀 다루는 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직물 짜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시간이 많이 드는 작업이었다. 특히 계속 연결되는 무늬를 새기기 위해 수십 개나 되는 실들을 하나하나 세고 정렬해야 하는 과정이 헷갈렸다. 우리가 배운 것은 커다란 기계가 아닌 길다란 나무조각 두 개로 이뤄진 휴대용 베틀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쯤은 현장 학습차 친체로를 찾았다. 베틀로 직물 짜는 것도 구경했고, 무엇보다 그곳에 가면 딸기를 섞어 만든 ‘치차’(옥수수로 만든 막걸리)를 마실 수 있었다. 이는 마을 아낙네들이 특히 좋아하는 음료였다. 한 잔을 사먹으면 언제나 서비스로 한 잔을 더 받는데, 두 잔을 다 마시면 나는 어느새 알딸딸해지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한번은 벨트를 만드는 데 필요한 털실을 샀다. 조금 바가지를 썼지만 이번만은 애교로 받아주었다. 털실을 만드는 작업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아낙네들은 양털을 직접 깎고 꼬아서 실을 만들고 천연 재료를 이용해 여러 색으로 물을 들였다. 내가 특히 좋아한 빨간색 실은 선인장에 기생하는 개미처럼 생긴 빨간 벌레를, 초록색 실은 풀을 삶아서 물을 들였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작업들이 구식으로 여겨져 시내에 나가 화학염료를 사다가 염색한다고 한다. 우리는 그들이 지켜나가는 전통 방식이 매우 소중한 것이며, 또한 외국인을 상대로 판매할 때 천연 염색이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들이 더 가치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우리가 산업문명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을 동경하는 것처럼 어쩌면 자연에서 모든 것을 얻어 자급자족하는 그들에게는 돈으로 뭐든 얻을 수 있는 편리한 우리 사회가 동경의 대상일 수도 있다.

우리의 베틀 실력은 걸음마도 못 뗀 아기 수준에 그쳤다. 친체로 마을을 의미하는 고유의 ○× 무늬가 들어간 가장 간단한 벨트를 만드는 데 10일이 넘게 걸렸다. 오랜 시간 앉아 있자니 하체가 쑤시고, 얇은 실들만 보고 있으니 고개도 눈도 아팠다. 그리고 그녀들의 삶을 가득 채운 베틀이 아름답기만 하다고 여긴 나의 생각도 바뀌었다. 직물짜기는 어쩌면 그녀들이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의 굴레임을 아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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