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계/ <그란샤코 마을의 주술사들>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국경을 마주대고 있는 나라, 파라과이는 정치적으로는 혼란의 연속이고 경제적으로는 국내 제조산업이 거의 없다시피한 불모지대이며, 밀수나 해서 먹고사는 나라라고 손가락질받는 가난한 나라다.
그러나 파라과이는 19세기 초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먼저 공화국 정부를 세웠으며 당시에 아르헨티나보다도 부유했다. 독립적인 경제를 굴려가고 있던 파라과이가 오늘날 후진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130년 전에 일어났던 파라과이 전쟁의 파괴력이 워낙 컸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역사가들이 많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가 한편을 짜고서 1865년에서 1870년 사이에 파라과이 인구 전체의 78.5%이자 남자 인구의 96.5%를 살해했으니 가히 ‘인종말살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남미대륙 역사상 제일 큰 규모의 전쟁이었고 세계전쟁사에서 극히 잔혹한 대량학살전 중 하나로 꼽힌다. 전쟁중에는 당시 브라질 국왕 동페드로 2세의 사위였던 데우 백작이 이끄는 연합군 2만명이, 파라과이의 소년병 부대 4500명을 8시간 만에 싹쓸이해 죽인 전투기록이 남아 있다. 1870년 3월1일에, 훗날 ‘프라타강의 나폴레옹’ 이라 불린 파라과이 대통령 솔라노 로페즈가 브라질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전쟁이 끝났다.
요즘 이 4개 나라는 메르코술(남미자유무역지대)의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한 세기 전에 그토록 ‘박터지게’ 싸운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무엇보다 국경선인 프라타강 유역에 대한 지배권을 둘러싼 갈등이 주요 원인이었다. 게다가 파라과이의 세력 성장에 위협을 느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영토 확장욕도 분쟁을 심화시켰다. 일부 사회주의 성향의 역사학자들은 색다른 배경을 거론하기도 한다. 남미대륙과의 무역을 통해 실속을 챙기던 영국이 파라과이의 국가 경영 모델을 못마땅하게 여겨 뒤에서 전쟁을 사주했다는 것이다. 당시 파라과이는 지역 공동체 생산에 기반하여 산업화 기반을 일구고 자급자족 경제를 추구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 영국의 위치는 20세기 들어 남미대륙에서의 미국이나 마찬가지였고, 파라과이는 일종의 쿠바였다는 이야기다. 군사정권시대였던 60년대에 많은 브라질 역사학자들은 파라과이 전쟁을 ‘철저하게 비겁하고 부당했던 살육전’으로 떠올렸다. 이들은 일종의 저항 이념화를 시도하기 위해 “19세기 초에 유일하게 외국 자본에 침식당하지 않았던 파라과이가 영국의 제국주의 세력과 여기 부화뇌동한 주변국들에 의해 파멸당한 전쟁”이라는 식의 해석을 내리기도 했다.
최근에 아르헨티나의 알파과라 출판사에서 펴낸 책 <그란샤코 마을의 주술사들>은 파라과이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역사서적이 아니라 소설이다. 파라과이와 우루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4개국에서 전쟁을 피해 모여든 탈영병들이 숨어 사는 그란샤코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여기를 방문한 한 영국인 여행자의 눈을 통해 상황을 서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발하고자 하는 것은 역시 전쟁의 비극이고, 특이한 점은 파라과이 전쟁에 참가했던 4개 나라의 작가 4명이 공동작업을 해서 써냈다는 점이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최근에 아르헨티나의 알파과라 출판사에서 펴낸 책 <그란샤코 마을의 주술사들>은 파라과이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역사서적이 아니라 소설이다. 파라과이와 우루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4개국에서 전쟁을 피해 모여든 탈영병들이 숨어 사는 그란샤코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여기를 방문한 한 영국인 여행자의 눈을 통해 상황을 서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고발하고자 하는 것은 역시 전쟁의 비극이고, 특이한 점은 파라과이 전쟁에 참가했던 4개 나라의 작가 4명이 공동작업을 해서 써냈다는 점이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