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보수 일본 ‘신나는 전쟁’

365
등록 : 2001-06-27 00:00 수정 :

크게 작게

외화수입의 1/3 조달하며 서방진영에 추파… 일본 사회경제부흥의 대도약기를 맞다

1943년 도쿄에서 난 필자는 71년 도쿄도립대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72부터 95년까지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는 불교계 사립대학 고마사와(駒澤)대학에서 아시아경제론을 강의했다. 96년부터 현직에 있으며 저서로는 <대동아공영권의 형성과 붕괴>(오챠노미즈 서방, 1975), <일본기업의 아시아 전개>(일본경제평론사, 2000), <전후 아시아와 일본기업>(이와나미 서점, 2001)이 있다.

1950년 6월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이 전후 일본의 경제와 사회의 부흥에 끼친 영향은 결정적이었다. 나는 1943년 8월 도쿄에서 태어나 50년에는 7살 나이로 도쿄에 살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던 곳은 도쿄 북부지역으로 중소기업이 밀집한 공업지대였다. 그때까지 파산 직전이었던 이웃 작은 공장은 주문이 쇄도하면서 바빠졌고 그 집 주인은 2, 3명의 종업원을 데리고 매일 밤 늦도록 일을 계속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자동차 부품을 만들고 있던 작은 공장이었는데 해를 넘기자 그곳을 떠나 도쿄 교외에 큰 공장을 지었다고 들었으므로 한국전쟁에 따른 수요 증대로 큰돈을 벌었던 듯하다.


중소 영세공장까지 풀가동 활황

사진/ 70년대 미국의 베트남 침략을 반대하며 시위하는 일본의 지식인들. 그러나 이미 진보진영은 한국전쟁 이후 급속히 위축됐다.
또 도쿄 북부에는 커다란 미군 군수공장이 있어 전차(탱크) 수리나 차량 등의 생산을 하고 있었다. 그곳도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일거에 부산해졌다. 가까운 역에서 철도로 하루 2, 3회 전장에서 파괴당한 전차나 트럭이 실려와 수리된 뒤 다시 실려나갔다. 공장 안에는 큰 광장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수리를 마친 트럭이나 전차가 매일 굉음을 울리며 시험주행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나는 형과 함께 일요일 등 쉬는 날에는 담장 너머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 공장 주변은 풍기가 문란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공장 앞에 요란스럽게 차려입은 여성들이 몰려들어 미군 병사들과 수작하는 모습은 어린 나로서도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무렵은 지금과 달리 미군기지와 미군 병사들이 많아 그들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그럼에도 그 공장 문 앞의 광경은 요상스러웠다.

이상은 나의 한국전쟁 체험담인데 그 전쟁이 전후 부흥기의 일본 사회경제에 끼친 영향은 결정적이었다.

첫째, 그것은 일본 경제부흥의 캄푸르(쇠약한 몸에 주사하는 강심제- 역주)가 됐다. 특히 군수제품 주문이 일본에 쇄도하고 흙포대용 마포, 철조망, 드럼통, 철재, 트럭생산이 풀가동했다. 이것이 하청받은 중소 영세공장의 수요까지 증대시켜 도쿄 북부지역 영세공장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미국은 이 생산활동 대금을 달러로 지불했기 때문에 당시 달러부족 상태였던 일본에 귀중한 달러수입원이 됐다. 52년부터 53년에 걸쳐 한국전쟁에 따른 수요는 일본 외화수입의 3분의 1 이상에 이르렀다고 한다.

두 번째, 그 전쟁이 발발한 다음해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대일강화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일본이 서방진영의 일원으로 승인받아 활동하도록 방향이 정해졌다. 나는 소학교 2학년생이었는데 그 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희고 붉은 만두를 학교에서 받아와 단것을 구하기 어려웠던 당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당시 그 샌프란시스코조약이 지닌 의미 따위를 알 리가 없었다.

일본의 재군비계획 급속히 추진되다

세 번째로는 50년 7월 경찰예비대 창설에서 보듯 그것을 기화로 일본의 재군비계획이 급속히 추진된 사실을 꼽을 수 있다. 그것이 보안대를 거쳐 자위대로 발전하게 되는데 그 출발점이 된 것은 한국전쟁 시기에 만들어진 경찰예비대였다.

네 번째로는 전후 급속히 발흥했던 일본 과격(급진)노동운동이 소멸하고 거꾸로 온건한 노동조합운동이 급속히 확대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공무원 파업규제와 정부의 강공책도 현저했다.

한국전쟁 휴전이 이뤄진 것이 것이 1953년 7월인데 그 전쟁을 계기로 체력을 회복한 일본경제는 55년부터 고도경제성장을 시작했고 그해에 자유민주당(자민당)도 결성돼 일본은 정치안정의 길을 걷게 된다.

고바야시 히데오(Kobayashi Hideo)/ 와세다대 아시아태평양센터 대학원 교수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