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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강요된 작전… 불필요한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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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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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전투부대 참전, 진보진영에선 ‘용병론’ 내세우며 ‘반공·민주수호론’ 반박

“필리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작은 기억용량을 지니게 되었는가.”

필리핀의 역사학자들은 한탄해왔다. 이걸 부정할 만한 근거가 없다. 적어도 필리핀 시민들이 자신의 역사나 독재자들의 결함을 기억하는 부분만큼은. 대부분 시민들이 심지어, 1899년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 필리핀-아메리카전쟁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마당이니. 이건 역사가 교육이나 문학의 우선적인 대상으로 존중받아보지 못한 필리핀의 지독하게 일그러진 현실 탓이다. “과거 보기를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저주스런 역사가 되풀이될 것이다.” 모두가 존경하는 필리핀의 영웅 호세 리잘이 100년도 더 전에 경고했든 말든. 이런데 어디서부터 필리핀의 한국전쟁을 찾아가야 할 것인가.

세계사 시간에도 배운 적이 없다


사진/ 50년9월, 유엔참전군 국기를 들고 있는 각국의 군인들. 미국, UN, 한국, 영국 국기와 함께 맨 오른쪽에 필리핀 국기가 보인다.
어쨌든, 지금 필리핀에서 한국전쟁을 알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부터가 고민거리였다. 7천명이 넘는 전투병을 파견했고, 이들 중 500여명이 전사했고 전쟁포로나 실종자로 처리되어 생사를 모르는 이들이 부지기수라는데도. 정직하게 말하면, 1992년 대통령이 되었던 피델 라모스 중위(당시)의 지휘로 한국전쟁에서 용맹을 떨쳤다던 전투대대(BCTs)의 이야기나 독재자 마르코스에게 암살당했던 베니그노 니노이 아키노가 <마닐라타임스> 기자로 전선을 취재했던 일 정도가 시민들이 알고 있는 한국전쟁의 전부다. 왜 필리핀이 아시아에서는 타이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전투병을 한국전쟁에 파견했는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의문에서부터 필리핀의 한국전쟁은 시작되어야 마땅한데, 그 연구의 성과도 거의 전무한 상태다. 존 할리데이와 브루스 커밍스 같은 학자들이 <한국- 미지의 전쟁>이란 책에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시민사회나 군부 모두에게 한국전쟁이 최초로 인기없는 전쟁이었다는 합일된 사실을 놓고 ‘잊어버린 전쟁’이라 표현해왔는데, 필리핀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은 ‘이상한 전쟁’쯤으로 표현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필리핀 학생들은 역사시간이든 세계사시간이든 결코 교과서에서 21개 나라가 참전했던 국제적인 한국전쟁을 배운 적이 없다. 심지어 필리핀군이 참전했다는 사실마저도. 학계에서도 최근 들어서야 일부 학자들이 한국전쟁에서 필리핀의 역할을 놓고 대화를 시작한 상태다. 그것도 지난해 한국전쟁 50주년 기념식이나, 좀더 선명해진 남북한 사이의 대화 같은 일들이 불을 지핀 결과로.

왜 필리핀이 무리하게 한국전쟁에 참전했는가. 최근의 일부 관심도 역시 이 부분에 치중되고 있다. 둘로 나눠진 논점의 차이에는 주류쪽이 ‘반공·민주수호론’이라면, 비주류쪽은 ‘미국용병론’을 내세우고 있는 모양이다.

“국제연합 회원국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일이다.” 미국과 영국군에 이어, 세 번째로 1400명의 필리핀 군인들이 국제연합군의 일원으로 부산항에 도착한 1950년 9월19일, 당시 필리핀 대통령 엘피디오 퀴리노는 그렇게 짤막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퀴리노 대통령은 그에 앞서 9월2일 한국전쟁에 파견하는 10대대와 작별인사에서 좀더 근본적인 파견 이유를 밝힌 바가 있다. “가난하기 짝이 없는 우리가 당신들을 한국전쟁에 파견하며 큰 희생을 감수하는 까닭은 영구적인 자유와 해방을 위해 단 한푼의 페소라도 투자하는 것이다.”

당시 필리핀의 이해는 명료했고 누구도 이견을 달지 못했다. “필리핀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남한으로 군대를 파견한다.” “미국은 남한의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하는 반면, 소련과 중국은 북한을 지원해서 아시아 전역에 공산주의-불경스럽거나 또는 독재적인 이데올로기- 국가를 건설하려고 한다.”

공산주의자들과 싸워본 필리핀군의 경험

사진/ 50년9월19일, 부산에 도착한 첫 필리핀 군대를 육군 군악대가 환영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미국의 웨스트포인트를 갓 졸업한 피델 라모스 육군 중위는 ‘세계평화와 민주주의 수호’를 내걸고 기꺼이 한국전쟁의 용맹스러운 소대장이 되었다. 당시 <이브닝뉴스>의 특파원으로 한국전쟁을 취재했던 아트 빌라산타의 보도는 필리핀의 한국전쟁 참전을 읽는 교과서 구실을 했다. “한국은 필리핀으로부터 기껏 1500마일 떨어져 있고,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승리는 즉각 내부적으로 공산주의 혁명세력들과 분쟁상태에 있는 필리핀으로 불어올 것이다.” 그의 말은 한국전쟁에서 필리핀군의 역할에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했다. “당시 필리핀군은 연합군 가운데 유일하게 공산주의와 싸운 경험이 있는 군대였고 특히, 필리핀 공산주의자들은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에 그들의 전술에 익숙했던 필리핀 군대는 한국전쟁에서 중국 인민군과 전투를 효과적으로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진보진영에서는 ‘용병론’을 내세우며 주류의 논리를 반박하고 있다. “필리핀 군대는 50년 동안 미국의 식민지로서 미군의 전술을 익혔던 탓으로 한국전쟁에서 매우 유용한 용병이 될 수 있었다.” 월든 벨로 같은 학자들의 진단이다.

현재 필리핀에서 벨로의 한국전쟁 읽기는 비주류를 대표하고 있다. “북한군의 38선 공격은 미국의 주장처럼 소련의 설계에 따라 자유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었다. 그건 한국사회 내부의 가슴아픈 내전이었을 뿐이다.” 벨로는 지난해 6월27일 한 칼럼에서 주장했다. “북한과 남한은 한국전쟁이 있기 전부터 이미 몇년 동안 피로 얼룩진 전투를 해왔고, 그 분쟁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 국경분쟁 이상의 것으로 강요되었다.”

말하자면 당시 트루먼 행정부는 소련을 봉쇄하는 구실로 북한 사안을 활용하고자 했다는 것이 벨로를 비롯한 비주류들의 관점이다. 미국은 국제연합을 통해 한국에서 경찰행위를 합법적으로 인정받았고 동시에 친미·반공 구체제를 남한에 수립해 소련을 봉쇄한다는 정책을 추진했던 것이 결국 한국전쟁으로 비화되었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필리핀군의 한국전쟁 파견은 어떻게 볼 것인가. “불필요한 희생이었다. 군대를 통해 확장주의로 치닫고 있던 미국의 불손한 국제전략이 한반도에서 펼쳐지는 동안 필리핀의 참전은 미국의 강요된 작전일 뿐이었다.” 벨로의 이런 분석은, 베트남전 참전군인으로 라모스 행정부의 국가안보위원회 의장을 지낸 호세 알몬테장군 같은 이들도 인정한 바 있다. “국제연합의 결의안은 필리핀군의 한국 파견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순이었고, 미국은 연합군의 축으로 필리핀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알몬테 장군의 주장에 대해 라모스 전 대통령도 뒤를 받쳤다. “자유독립국가로서 한국전쟁에 군대를 파견한 일은 의무였다. 한국전쟁은 지정학적이건 이념적이건 자유진영의 미국과 공산진영의 소련이 충돌한 최초의 국제적인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진보학계와 보수적인 군부는 같은 분석을 통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필리핀군은 중국과 북한으로부터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던 남한을 구제한 자유진영에 기여를 했다”고 믿어온 알몬테 장군은 그동안 벨로가 주장해온 남북한 사이의 ‘내전론’이나 외국군의 ‘간섭론’을 물론 인정하지 않는다.

대물려 증명된 ‘굴종의 모형’

사진/ 지프를 타고 가는 필리핀군. 필리핀은 한국전쟁 당시 육군 1개 독립대대가 참전했으며 1백12명의 전사자가 발생했다.
한국전쟁의 성격이 대리전이든 어쨌든, 필리핀군의 참전이 정당했든 어쨌든, 분명한 것은 아직도 한국전쟁은 끝나지 않은 논쟁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더욱 분명한 것은 벨로의 지적대로 한국전쟁을 통해 미국은 대아시아 전략 아래 자신들이 추구하는 모형대로 필리핀 정부를 욕심껏 재단해왔다는 사실이다.

추후 마르코스 정부는 공산주의 격파라는 명분으로 필리핀군을 베트남전쟁에 파견함으로써 그런 사실을 결정적으로 입증했다. “1950년대 한국전쟁에 군대를 파견했던 퀴리노 정부처럼, 마르코스 정부는 베트남전쟁에 군대를 파견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지출비용에 대한 보장뿐만 아니라 필리핀군의 확대와 경제지원까지 약속받았다.” 벨로는 덧붙였다. “문제는 한국전쟁의 모형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에스트라다 정부는 미국의 대중국전략의 일환인 이른바 순시군협정(VFA)에 서명함으로써 ‘굴종의 모형’을 대물려 증명했다.”

그리고 최근 국제적인 말썽거리로 떠오른 부시 행정부의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에 대한 필리핀 정부의 입장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결국 필리핀 현대사에 굴종의 정치를 가르친 한국전쟁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필리핀에서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비무장지대뿐만 아니라 필리핀과 아시아에서도.

마리테스 시손(Marites Sison)/ 전 <마닐라타임스> 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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