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말에 거침없이 이의제기하는 학생들… “나는 정답만 말하며 기죽고 살았는데…”
브라질에 와서 7년째 가망없이 마냥 질질 끌고만 있던 인류학 대학원 논문을 마침내 포기하고 난 뒤인 97년경이었다. 상파울루시에서 운영하는 시립음악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건 나름대로의 살길을 궁리하다 찾은 대안이었다. 어렸을 때 배워놓은 피아노 실력이 그럭저럭 아마추어 소리를 들을 만하니까 공부를 더 하면 노후에 취미생활도 되고 피아노 레슨을 해서 용돈벌이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서였다.
시립음악학교는 돈이 많이 드는 예능교육을 받을 여유가 없는 서민가정의 자녀들을 위해서 무료로 수업을 받게 해주고 전문 연주자를 양성하는 곳이다. 지금은 나이 제한이 없어졌지만, 그 당시 피아노부에서는 33살이 입학연령 제한선이었다. 악기실습 외에 음악이론 과정도 이수해야 했다. 한국말로는 이분음표, 사분음표, 팔분음표라서 숫자만 알면 쉽게 외우는 음표 이름들이 포르투갈어로는 전부 다른 이름을 달고 있는 걸 보고 당황해 할 정도로 ‘생초보’였던 나는 가장 낮은 단계의 초급반 수업부터 들으러 갔다.
점심이 체했는지 잘 못 알아듣겠다?
첫 시간 교실에 들어가면서 제일 먼저 내 또래 수강생이 있는지부터 살펴봤다. 예상했던 대로 다들 열대여섯살 정도로 보이는 청소년들이었다. 그렇다고 쭈뼛거리면서 뒷자리에 숨어 앉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미 서른을 훌쩍 넘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아줌마 대열에 들어선 지 한참이었다. 브라질에서 꽤 오래 살았다고 해도 포르투갈말은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귀기울여야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는 외국어다. 그런데 제일 앞자리를 차고 앉아 기본 단어도 생소한 음악이론을 열심히 좀 배워보려던 나에게 생각도 못했던 방해요인이 있었으니, 바로 반 학생들의 막되먹은 수업태도였다. 선생님이 한참 설명을 하고 있는데 자기가 뭐 좀 궁금하다 싶으면 중간에 말허리를 끊고 질문을 던지는 건 예사였다. 그 질문에 선생이 답을 해주면 그래도 잘 모르겠다고 버티는 것까지는 좋은데, “오늘 낮에 먹은 음식이 체했는지 지금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서 잘 못 알아듣겠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배경설명까지 공개적으로 늘어놓는 것은 정말 이해가 안 갔다. 젊은이들이 기죽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론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별 시답지 않은 얘기들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들어야 하는 수업의 흐름이 자꾸 끊기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자꾸 짜증이 났다. “입들 닥치고 조용히 좀 못 있겠니? 나는 지금 너희들 집안사정 이야기나 들으려고 여기 앉아 있는 게 아니란다”라는 말이 하고 싶어 죽겠는데 참느라고 진땀을 흘리는 가운데 학기 절반이 지나고 중간시험을 봤다. 시험 다음 시간은 점수를 매긴 답안지를 나눠주고 문제풀이를 하는 시간이었다. 음악사나 곡 해석도 아니고 초보적인 음악이론 문제는 국민학교 산수처럼 뻔하고 명료하게 답이 떨어지는 건데도 그 문제풀이를 갖고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도 와글와글 말들이 많았다. 답을 제대로 맞춘 애들은 오히려 가만 있는데 틀린 아이들이 시끄럽게 굴었다. 자기는 이렇고 저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답을 썼노라고 바보 같은 소리들을 해대고 선생은 또 그걸 일일히 상대해주느라 시간이 다 지나갔다. 나는 끓어오르는 성질을 혼자 참느라 정작 시험보던 날보다 더 기진맥진으로 지쳐버렸다. 어두워진 상파울루의 밤거리에 나와 버스와 지하철에 흔들리며 집에 돌아오는데 가슴 한편이 멍든 것처럼 얼얼했다. 그건 억울하다는 느낌이었다. 이 아이들은 틀린 답을 대고도 주눅이 안 들고, 왜 틀렸는지도 거리낌없이 말하면서 학교를 다니는구나. 나는 저 나이에 선생 앞이나 수업시간이라면 끽 소리 한번 못 내고 죽는 시늉을 하고 살았지. 저 나이를 지난 다음에는 남 앞에서 행여나 틀린 답을 대게 될까봐 자신없어하고 눈치만 살피면서 살았지. 저 나이 때에 배우는 지식과 겪는 경험이 이후의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와 세상을 보는 눈을 만드는 데 얼마나 엄청난 영향력을 갖는지 살면 살수록 새록새록 깨닫는 건데. 내 청춘을 돌려달라고 누군한테랄 것없이 그냥 악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첫 시간 교실에 들어가면서 제일 먼저 내 또래 수강생이 있는지부터 살펴봤다. 예상했던 대로 다들 열대여섯살 정도로 보이는 청소년들이었다. 그렇다고 쭈뼛거리면서 뒷자리에 숨어 앉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는 이미 서른을 훌쩍 넘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는 아줌마 대열에 들어선 지 한참이었다. 브라질에서 꽤 오래 살았다고 해도 포르투갈말은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귀기울여야 무슨 소리인지 알아먹는 외국어다. 그런데 제일 앞자리를 차고 앉아 기본 단어도 생소한 음악이론을 열심히 좀 배워보려던 나에게 생각도 못했던 방해요인이 있었으니, 바로 반 학생들의 막되먹은 수업태도였다. 선생님이 한참 설명을 하고 있는데 자기가 뭐 좀 궁금하다 싶으면 중간에 말허리를 끊고 질문을 던지는 건 예사였다. 그 질문에 선생이 답을 해주면 그래도 잘 모르겠다고 버티는 것까지는 좋은데, “오늘 낮에 먹은 음식이 체했는지 지금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서 잘 못 알아듣겠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배경설명까지 공개적으로 늘어놓는 것은 정말 이해가 안 갔다. 젊은이들이 기죽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론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별 시답지 않은 얘기들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들어야 하는 수업의 흐름이 자꾸 끊기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자꾸 짜증이 났다. “입들 닥치고 조용히 좀 못 있겠니? 나는 지금 너희들 집안사정 이야기나 들으려고 여기 앉아 있는 게 아니란다”라는 말이 하고 싶어 죽겠는데 참느라고 진땀을 흘리는 가운데 학기 절반이 지나고 중간시험을 봤다. 시험 다음 시간은 점수를 매긴 답안지를 나눠주고 문제풀이를 하는 시간이었다. 음악사나 곡 해석도 아니고 초보적인 음악이론 문제는 국민학교 산수처럼 뻔하고 명료하게 답이 떨어지는 건데도 그 문제풀이를 갖고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도 와글와글 말들이 많았다. 답을 제대로 맞춘 애들은 오히려 가만 있는데 틀린 아이들이 시끄럽게 굴었다. 자기는 이렇고 저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답을 썼노라고 바보 같은 소리들을 해대고 선생은 또 그걸 일일히 상대해주느라 시간이 다 지나갔다. 나는 끓어오르는 성질을 혼자 참느라 정작 시험보던 날보다 더 기진맥진으로 지쳐버렸다. 어두워진 상파울루의 밤거리에 나와 버스와 지하철에 흔들리며 집에 돌아오는데 가슴 한편이 멍든 것처럼 얼얼했다. 그건 억울하다는 느낌이었다. 이 아이들은 틀린 답을 대고도 주눅이 안 들고, 왜 틀렸는지도 거리낌없이 말하면서 학교를 다니는구나. 나는 저 나이에 선생 앞이나 수업시간이라면 끽 소리 한번 못 내고 죽는 시늉을 하고 살았지. 저 나이를 지난 다음에는 남 앞에서 행여나 틀린 답을 대게 될까봐 자신없어하고 눈치만 살피면서 살았지. 저 나이 때에 배우는 지식과 겪는 경험이 이후의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와 세상을 보는 눈을 만드는 데 얼마나 엄청난 영향력을 갖는지 살면 살수록 새록새록 깨닫는 건데. 내 청춘을 돌려달라고 누군한테랄 것없이 그냥 악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