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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런던거리가 눈부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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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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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지금 빡빡머리 대유행… 노동계층과 극우집단에서 시작해 일반 서민층까지 확산

사진/ 도버해협 인근의 바닷가마을에서 한 부자가 시원한(?) 머리를 하고 집수리를 하고 있다.
올 여름 런던거리는 유난히 눈부실 것 같다. 갈수록 머리를 완전히 밀어버린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타도 한칸에 최소 한명 이상 이런 머리형을 한 사람들이 보인다. ‘빡빡머리’는 런던뿐만 아니라 영국 전역에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이다. 얼마 전 필자는 해안습지를 보고자 영국 남동부 리드(Lydd)마을을 지나다 한 부자가 머리를 ‘시원하게’ 하고 집수리를 하고 있는 장면을 인상깊게 봤다.

아주 드물게 여자들에게도 이런 머리스타일을 볼 수 있지만 대부분 남자들이 머리를 민다. 어른들만이 아니다. 런던시내의 유명 전시관 중 하나인 서머싯하우스를 찾은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 중에서도 서너명의 빡빡머리 남자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런던소재 케임브리지초등학교 아이들로, 인솔선생님인 데이몬슨(Damonson)은 “약 3년 전부터 빡빡머리가 유행이다. 통상 한반에 4분의 1 정도의 아이들이 빡빡머리 아니면 거의 빡빡에 가깝게 하고 다닌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해준다.

70년대 히피문화와 극명한 대비


사진/ 빡빡머리가 넘쳐나는 거리. 올 여름 런던은 유난히 눈부실 것 같다.
유럽에서의 빡빡머리는 스킨헤드(skin head)로 불리며 ‘피부가 드러난 머리카락 없는 머리’를 일컫는다. 60년대 영국의 일부 노동계층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독일의 나치스트, 영국의 NF(National Front: 국민전선) 등 백인들로 구성된 극우인종차별집단이 자신들의 이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머리를 빡빡깍기 시작했다. 이어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이런 머리스타일이 인기를 끌다가 이제는 일반인들까지 머리를 밀기 시작했다. 즉, 강렬한 인상을 주는 헤어스타일로 자신들의 정치적 이미지나 문화적 특성을 집단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 지금은 개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표현하는 대중적인 헤어스타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통상 빡빡머리를 모두 스킨헤드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스킨헤드라는 말은 백인인종차별집단을 일컫는 용어로만 제한돼 사용된다. 얼마 전 영국 중부지방에서 발생한 인종분쟁을 보도하는 언론은 간단히 “한 무리의 스킨헤드가 유색인종을 테러했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다. 유럽에서 10여년째 살고 있는 한 한국유학생은 스킨헤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들을 볼 때 순결, 청결, 백색, 태양, 인위성, 우월성, 기계성, 반히피, 이동전화, 자동차…. 이런 이미지들이 떠오른다면 제가 너무 비약하는 걸까요? 어쨌거나 70년대 자연주의자들의 문화적 기호였던 장발, 청바지, 운동화 등과 극단적으로 대비된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남자들도 스포츠선수나 연예인이 특별한 머리스타일을 하면 많이들 따라하곤 한다. 특히, 영국 축구국가대표팀의 주장 베컴이 가운데만 머리를 남겨 세우고 좌우머리를 밀어버리는 인디언부족 헤어스타일인 ‘모히칸스타일’을 하고 나타난 뒤 이런 머리스타일을 한 사람들이 곧잘 눈에 띄곤 했다. 훌리건으로 불리는 축구광들과 건축노동자에게서도 빡빡머리는 많이 눈에 띈다. 자주 접하면 익숙해지지만, 머리를 하얗게 민 채 정장차림을 한 빡빡머리 영국신사를 처음 보는 관광객은 다시 한번 쳐다보게 마련이다. 무섭고 위협적인 분위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영국 국민들에게 빡빡머리는 그저 하나의 헤어스타일일 뿐이다.

런던=최예용 통신원 choiyeyong@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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