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 방콕의 룸피니 공원에서 레드 셔츠들이 지난 4~5월의 시위 진압 과정에서 숨진 이들을 기억하려 ‘시체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집권당 선거 승리도 가린 폭발 이날 터진 폭탄은 오히려 아피싯 정부의 비상사태 유지에 좋은 명분을 안겨주었다. 정부 대변인 빠니탄 와따나야꼰은 “이날의 폭탄은 비상사태 유지가 불가피함을 일깨워주었다”고 말했고, 국방부 장관 프라윗 웡수완은 치안을 더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비상사태 연장 반대에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보이던 여론조사 결과도 달라졌다. 폭발 사건 직후 수안두짓라자밧대학이 실시한 조사는 비상사태 지지율 47%를 보이며 비상령 유지에 힘을 실어줬다. 최근 아피싯 정부는 비상사태 해제 압력을 국내외에서 받아왔다. 한 예로 7월5일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은 진정한 화해를 위해 타이 정부가 레드 셔츠 지도부에 대한 테러리즘 혐의를 기각하고 비상사태를 해제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다음날 정부는 방콕과 동북부 19개 지역의 비상사태를 연장했다. 정부 주도로 구성된 ‘전국개혁위원회’의 아난드 파냐라촌 위원장조차 최근 비상사태 해제를 권고한 바 있지만, 29일 해제된 6개 지역을 포함해 9개 지역에서만 비상사태가 해제됐을 뿐이다. 7월28일 현재 전국 10개 지역(레드 시위 이전인 2004년부터 폭탄 테러가 있던 남부 3개 이슬람 분쟁 주를 포함하면 총 13개 지역)에 여전히 비상사태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는 만에 하나 다른 지역은 비상사태 해제를 검토하더라도 방콕은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흥미로운 건 옐로 셔츠인 민주주의민중연대(PAD) 시위대 수백 명이 7월27일 오후 방콕 유네스코 건물 앞에서 비상사태령에도 아랑곳없이 시위를 벌였다는 점이다. 캄보디아 정부가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에 의해 자국 소유로 판명받은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을 브라질에서 진행 중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 회의에 문화유산 후보로 올려놓자 PAD가 이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인 것이다. PAD는 이 사원의 소유 문제를 두고 극우적 캠페인을 벌이며 2년 전 양국의 무력 분쟁까지 촉발한 바 있다. 아무튼 PAD처럼 비상사태령을 무시할 수 없는 레드 셔츠는 법망을 피해가는 옥외 시위를 여러 형태로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레드 셔츠는 8월1일 민주기념탑 부근에서 퍼포먼스와 토크쇼 등을 벌일 계획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리고 있다. 아울러 레드 셔츠 안에서 급진적 입장을 가진 ‘레드 시암’ 조직도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폭탄은 같은 날 치러진 방콕의 제6선거구 보궐선거에서 득표율 8%포인트 차로 당선된 집권 민주당 파닉 비킷스렛 후보의 승리에 쏠린 이목도 분산시켰다. 타이 영자 일간지 <더네이션>은 ‘폭탄이 파닉의 승리에 초를 쳤다’고 제목을 달았다. 민주당은 사실 독점적으로 선거운동을 벌였다. 그와 접전을 벌인 레드 셔츠 지도부이자 프어타이당이 공천한 코캐우 피쿨통(43) 후보는 테러리즘 혐의로 방콕 리멘드 감옥에 수감 중이고, 선거운동을 위한 보석 석방을 계속 거부당해왔다. “이 사회에 불의가 있다고 믿는다면 유권자가 나를 찍어주길 바란다.” 선거 직전 기자와 가진 옥중 인터뷰에서 그는 선거운동을 거의 못하지만 결과에는 승복하겠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불공정한 선거운동을 업고 이겼다는 눈길을 받는 민주당의 승리는 투표 종료 직후 폭탄 뉴스까지 터져 더욱 어색해진 셈이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랏차쁘라송 거리가 쇼핑가의 영광을 회복할 수 있을까. 여전히 대형 백화점이 밀집한 시암 스퀘어에는 사람들이 북적이지만, 랏차쁘라송 교차로에서 펫차부리 방향으로는 예전 같은 교통 체증이 보이지 않는다. 68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이 돌아가는 이 구역에서 터진 폭탄의 범인을 잡아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울러, 폭탄이 터지는 방콕 도심이 또다시 불타는 건 ‘만일’이 아니라 ‘언제’의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우려스럽게 전망한다. 극심한 서열 체제와 소수 엘리트가 독점하는 타이 사회에 순응해온 사회 구성원 다수의 눈과 귀가 트여버린 이상, 그들이 다시 순응하는 인간형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 같다. 법망을 피해가며 끈질기게 모여들어 퍼포먼스를 벌이고 에어로빅댄스를 추는 군중의 모습은 분명 그 신호다. 방콕(타이)=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