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민이 수천 년 동안 사용한 언어를 국가가 바꿀 수 있을까. 지난해 9월6일 중국 광시성 좡족자치구 난닝시의 한 극장에서 광둥어 경극을 공연하고 있다.
푸퉁화를 구사하면 유식해 보인다? 이런 언어인 광둥어가 최근 푸퉁화에 밀려 입지가 좁아지고 있으니 광둥어 사용자들의 반발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비록 광둥어를 완전히 축출하자는 움직임은 아니지만 언어가 사라지면 문화도 사라질 수 있다는 역사적 경험을 간직한 중국인, 특히 광둥 사람들에게는 이 사태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광둥인은 원래 자신들이 중국의 중원을 지배했으나 이민족의 침입으로 남하해 현재 광둥 지역에 살고 있으며, 실질적인 한족은 자신들이고 따라서 자신들의 언어가 원래 한족의 정통 언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광둥어 탄압이나 말살로 불릴 만큼 반향을 일으키는 이번 사건이 발생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대개 다음의 몇 가지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중국 정부의 푸퉁화 보급 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푸퉁화 보급을 사회 통합적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중국 정부의 노력에 비해 푸퉁화 사용 캠페인은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중국은 지난 2001년 국가기관 근무자들은 의무적으로 표준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로 ‘국가 통용 언어문자법’을 제정하고 강력한 표준어 보급 정책을 실시해왔다. 최근 중국 교육부와 국가언어위원회가 지난 5년간 전국 31개 성·시·자치구 주민 47만여 명을 대상으로 공동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중국인 13억 명 중 53%만이 표준어인 푸퉁화를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이들도 실제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중국 정부의 강력한 표준어 보급 방침에 따라 중국 대부분 도시의 교육기관과 공공기관에서는 푸퉁화를 사용하지만, 주민끼리는 일상 대화에서 해당 지역의 방언을 사용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안게임이라는 국제 행사를 앞두고 지방정부가 인위적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광둥 지역의 언어와 문화를 둘러싸고 광둥성 정부 간부와 광둥인 사이에 존재하는 인식의 간극을 들 수 있다. 광둥성 정부의 대다수 간부는 광둥성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광둥 문화에 대한 이해심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뒤 공업건설이나 행정관리 인원이 필요해서 많은 사람들이 광둥으로 들어오고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 많은 지도층이 유입됐기 때문에 정부 간부를 비롯한 고위층은 광둥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한 면이 있다. 정권에 따라 위상이 달라지는 대만 민난어 이들에 비해 본래 광둥인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광둥의 독특한 문화유산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언어적 측면에서도 만주어·몽골어 등 북방 방언이 혼합된 푸퉁화보다 오히려 광둥어가 정통성 있는 순수한 언어라고 여긴다. 여기에 마치 푸퉁화를 구사하는 것이 문화적으로 성숙하고 유식해 보인다는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의 사회·문화적 분위기에도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광둥인만이 광둥어와 광둥 문화를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 거리로 나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천 년간 이어져온 언어·사회 문화의 전통이 정부의 정책적 노력으로 재편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이미 국공 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갔던 국민당 정부에서 그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민난어를 사용하던 대만인은 중국의 정통성을 부르짖는 국민당 정부 때문에 자신들의 언어를 자유롭게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대만 출신의 천수이볜 총통의 민진당 정권이 출범하면서 대만은 민난어의 부활을 맞이한다. 그러나 국민당의 정권 회복으로 다시 상대적으로 민난어의 사용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인위적 조절은 해당 민족의 특성을 말살하는 우매한 행위다. 언어와 문화는 역사와 전통의 산물이다. 통치나 사회적 통합에 일정한 규범은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한 작업이 본연의 전통을 훼손하는 일이라면 시도하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더구나 그것이 어느 일방의 상대적 우월감에서 나온다면 이는 역사에 대한 도전이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를 거스른 정권이 번창하는 경우는 없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