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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국전쟁의 열매를 따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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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2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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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도·필리핀·타이·터키, 아시아 참전국가들에게 한국전쟁은 어떤 의미를 남겼나

아시아의 한국전쟁?

50년이 지나는 동안 한국전쟁이 아시아의 시각으로 또는 아시아의 관점으로 다루어진 경우가 참 없었던 모양이다.

전통주의적 해석이건 수정주의적 해석이건 모두 냉전을 축으로 한국전쟁을 읽던 시절을 거쳐 80년대 들어 내부적 요인에 해석의 초점을 맞추던 시절에도, 그리고 소련의 붕괴로 동구권의 자료 접근이 가능해진 90년대를 지나면서도 여전히 아시아의 한국전쟁은 거들떠보는 이가 별로 없다.

지나치게 미국 중심의 연구와 소련과 중국관계로만 한국전쟁을 읽었던 태도는 그동안 “방아쇠를 누가 먼저 당겼느냐?”는 의문에만 골똘하게 만들었고, 그런 냉전적 접근법의 한계로 대신 주변부를 잃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에서 비롯된 한국인에 대한 ‘편견’

한국전쟁에서 아시아는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 한국전쟁에서 아시아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한국전쟁으로 아시아는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가장 단순하면서도 중대한 이런 의문에 답하기 힘들다는 건 우리가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기능할 수 있겠는가라는 불길한 의문으로 연결된다.

한국경제의 사활이 걸린 무역의 반 이상 또 해외투자의 반 이상이 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건 말건, 지정학적 조건과 그 위기성을 남이야 소리치건 말건, 세계의 중심이 아시아로 옮겨오고 국제사회가 아시아로 눈을 돌리건 말건 우리는 여전히 아시아 보기를 돌같이 여기고 있다.

그러면 도대체 한국전쟁에서 아시아가 뭐 그리 중요한 역할을 했고 뭐 그리 중대한 연관이 있느냐고 타박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좀 따져보자. 무엇보다 ‘기분파’로 소문난 한국인들에게는 그 기분이 가장 중요할 터인데, 아시아를 다녀본 이들은 내남없이 현지인들의 선입견에 억울한 심정을 한두번쯤 느꼈을 것이다.

‘호전적이고 과격하고 예의없고 성질급한 한국인.’ 아시아가 지닌 한국인에 대한 이런 일반적인 인상- 우린 이걸 편견이라 부르고 싶지만- 의 출발도 모두 한국전쟁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지금도 축구 잘하는 나라, 싸움- 이걸 민주화과정으로 여겨주는 귀한 인물들은 쉽게 만나기 힘들고- 잘하는 사람들 정도로만 알고 있으니, 한국전쟁 이전에는 한국이 어디쯤 붙어 있는지조차 아는 이가 드물었을 것이 뻔하다.

이런 아시아가 한국을 알게 된 것은 불행하게도 ‘형제끼리’ 싸워 폐허가 된 한국전쟁을 통해서였고, 지금도 아시아의 교과서에는 부모잃고 우는 전쟁고아들의 사진이나 병사들의 함성이 담긴 사진이 서울 소개용으로 올라 있을 정도니.

좀 구체적으로 들어가보면, 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이 직간접적으로 한국전쟁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한국전쟁이 일본에게는 전후복구(2차대전)와 경제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선물의 전쟁’이었다면, 중국에게는 러시아와 맞먹을 수 있는 존재가치를 국제사회에 부각시킨 ‘선전의 전쟁’이었고, 남아시아의 대국 인도에게는 제3세계 비동맹노선의 맹주 자리를 수여한 ‘기회의 전쟁’이었다. 타이에게는 2차대전의 적이었던 미국에 충성심을 확인시킨 대가로 인도차이나반도의 중심으로 인정받는 ‘서약의 전쟁’이었고, 필리핀에게는 경제원조를 폭발적으로 확대시킨 ‘생존의 전쟁’이었다. 멀리 떨어진 터키에게는 갈망했던 유럽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멤버십 전쟁’이기도 했다.

‘선물의 전쟁’에서 ‘멤버십 전쟁’까지

비록 아시아에서 한국전쟁에 전투병을 파견한 나라는 타이와 필리핀, 터키뿐이었고 인도가 의료지원단을 보낸 정도로 외견상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실상을 뒤집어보면 이렇게 1950년대 아시아 각국은 저마다 가장 절실한 부분에서 한국전쟁과 깊은 인연을 맺어 오늘날까지도 그 사회 운용의 핵심축으로 활용하고 있음이 잘 드러난다. 그만큼 한국전쟁은 아시아에 중요한 의미를 남겼다는 뜻이다.

따라서 한국전쟁의 상징적인 개전일이 걸린 이번주 아시아네트워크는, 5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작도 끝도 희미한 한국전쟁의 본질과 성격을 올바르게 규정하고 이해하는 일이 아시아와 친구가 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믿음으로 아시아의 한국전쟁을 소개해올린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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