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연이은 사제들의 성추행 스캔들을 복음주의 강화로 돌파하려 한다. 5월12일 포르투갈 리스본을 방문한 베네딕토 16세. REUTERS/ STEFANO RELLANDINI
지난 6월24일 벨기에 경찰은 브뤼셀-메켈렌 교구의 본부 건물과 주교좌 성당, 올 초 은퇴한 고트프리트 다닐스 전 대주교의 집무실과 자택, 심지어 이미 세상을 떠난 전 주교들의 묘소까지 전격 압수수색했다. 마침 주교단 회의 중이던 현직 주교 9명은 몇시간 동안 현장에서 억류된 채 침묵을 강요받았고, 컴퓨터와 휴대전화, 교구 회계장부 등이 압수됐다. 바티칸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치욕과 충격이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사흘 뒤 벨기에 주교단에 친서를 보내 “(경찰의 행태가) 놀랍고 개탄스럽다”며 “이 비통한 순간에 나의 친밀감과 연대감을 전한다”고 위로했다. 그 전날에는 바티칸 국무성 장관이 바티칸 주재 벨기에 대사를 불러 “옛 공산 정권에서조차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강력히 항의했다. 그러나 벨기에 법무장관은 즉각 “압수수색은 적법한 절차였고 주교들도 전적으로 정상적인 예우를 받았다”고 반박했다. 벨기에에선 지난 4월 한 주교가 과거 남자아이를 상당 기간 성추행한 사실을 시인하고 사임하는가 하면, 콩고 출신의 한 신부가 본국의 부인과 자녀들까지 불러들여 이중생활을 하다가 탄로나 파문이 일었다. 벨기에뿐 아니다. 독일·아일랜드·오스트리아·스위스·이탈리아 등 유럽의 여러 나라, 그리고 미국과 브라질 등 미주에서까지 주렁주렁 줄기감자처럼 잇따라 가톨릭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 폭로가 터져나왔다. 미국 대법원은 6월28일 사제의 아동 성추행 소송 사건과 관련해 바티칸의 면책특권 요청을 거부했다. 해당 소송의 원고는 10대 청소년 시절인 1965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한 신부에게 여러 차례 성추행을 당했으나 교황청이 그 신부의 성직을 박탈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전출시키기만 한 책임이 있다며, 베네딕토 16세가 신앙교리성 장관이던 2002년 교황청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소송을 맡은 하급 연방법원들이 성추행 사제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자 교황청은 주권국가 바티칸으로서 면책특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중단해달라고 대법원에 항소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기각한 것이다. 앞서 6월11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가톨릭 성직자의 해’ 종료 기념미사에서 “하느님과 (성추행) 피해자들에게 절실하게 용서를 구하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일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상황만 놓고 보면, 바티칸 지도부가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닦아내지 않은 채 앞으로 엎지르지 않겠다는 다짐만으로 사태가 수습될 수준을 넘어섰다. 교황의 해법은 복음주의 강화?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복음주의 강화에서 해법을 찾고 있는 것 같다. 교황은 지난 6월30일 교세가 급속히 기울고 있는 유럽과 북미 등 서구권 국가의 세속화와 싸우고 가톨릭 신앙 부흥을 전담하는 ‘새로운 전도 촉진을 위한 주교위원회’ 신설을 뼈대로 한 바티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세상에는 가톨릭이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은 선교 영토가 있는 반면, 유럽 같은 다른 지역에선 수세기 동안 진행된 세속화가 크리스천의 신심과 교회의 역할에 대한 심각한 위기감을 낳고 있다”고 지적한 지 이틀 만이다. 바티칸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도 “서구의 재복음화가 교황의 주된 관심사”라고 확인했다. 2000년 전 제1대 교황인 사도 베드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힌 뒤 박해를 피해 로마를 빠져나오다 갑자기 예수가 나타나자 당혹해하면서 “쿠오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다. “네가 나의 어린 양들을 버렸으니,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간다”는 답변을 들은 베드로는 그 길로 발길을 되돌렸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헨리크 시엔키에비치의 소설 <쿠오바디스: 네로 시대의 서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금 전세계 가톨릭 신자와 시민들로부터 “쿠오바디스, 파파”라는 심각하고 본질적인 물음을 받고 있다. 소설이 아니라 엄혹한 현실이다. 양떼들을 지혜롭게 인도하는 ‘은총’(베네딕투스)이 노 교황에게 허락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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