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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카잔루크, 장미에 취한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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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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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수확 시작되는 6월이면 성대한 축제… 역사의 현장을 꽃향기로 증언하다

사진/ 이른 아침 장미를 거둬들이는 카잔루크 마을사람들.
매년 6월 초가 되면 불가리아의 작은 소도시인 카잔루크 주변의 마을 주민들은 때아닌 수확기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이들이 거둬들이는 것은 열매가 아니라 다름 아닌 장미다. 20일에서 25일 정도의 수확기를 거치면 계곡을 가득 메웠던 장미꽃은 사라지고 앙상한 가지들만 남는다. 장미의 계곡이라 불리우는 이곳의 장미꽃들은 향수의 원료가 되는 장미기름이 되어 세계 곳곳으로 수출되는데 그 생산량은 유럽 최대이며 품질 또한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해마다 6월로 들어서는 문턱이 되면, 장미의 계곡을 붉게 물들이는 장미꽃들. 이 향기로운 꽃들은 이곳 사람들의 역사를 대신 말해주고 있다.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시련 맞기도

최초로 장미가 이곳에 전해진 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병사들이 원정에 나섰다 돌아오면서 장미를 가져왔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벨기에의 역사책에는 1210년 십자군 병사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광활한 장미꽃지역을 봤다는 기록이 있다. 원래 카잔루크는 오스만튀르크가 정복하면서 1420년에 세운 소도시인데 기후조건이 원산지보다 장미재배에 유리하다는 것이 판명되면서 이 일대가 모두 장미재배지로 장려되었다. 18세기 말경에는 장미에서 기름을 추출하는 특별한 기술과 기기가 개발되어, 전보다 더 많은 기름이 생산되었다. 이로 인해 장미는 당시 서유럽과 중부유럽에서 한창 인기를 누리던 향수와 화장품산업계로부터 엄청난 호응을 얻게 된다. 이후 1820년 최초의 무역회사가 세워지고 1840년에는 장미기름을 생산하는 회사가 들어서게 된다. 서유럽의 향수회사에서는 매년 같은 양의 장미기름을 수입하면서 특별한 포장과 특별한 상표 등 외장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전해진다. 20세기 초에는 새로운 증류기계가 개발되어 장미기름을 대량생산하는 길이 열렸고 몇개의 증류공장이 들어선다.


사진/ 6월 장미축제에서 장미로 치장한 소녀들.
그러나 시련도 많았다. 1차대전이 시작되면서 이 계곡에 장미 대신 식량이 재배되어 장미기름의 생산량과 수출은 엄청나게 줄어든다. 1929년의 대공황은 장미의 계곡에서 생산된 기름 가격을 엄청나게 떨어뜨렸고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는 상황까지 치달았다. 1차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장미 대신 식량을 생산하도록 강요받았던 2차 세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장미의 계곡에서 장미기름의 생산량과 수출은 바닥을 헤매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동구 공산권의 한 부분으로 편입되면서 장미기름을 서유럽과 다른 세계로 수출하는 길은 사실상 제한되어왔다.

올해 들어서면서 장미기름의 생산량과 수출량은 지난해에 비해 25%가량 늘어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1kg의 장미기름을 추출하기 위해서는 약 20만장의 장미꽃잎이 필요하며 2천 가지나 되는 장미꽃 중에서 단지 세 가지의 장미꽃만이 장미기름을 위해 사용된다고 한다.

6월 첫쨋주 일요일, 그곳에 가면…

장미의 계곡이 위치한 카잔루크에서는 1903년 최초로 장미축제가 시작된 이래 매년 6월 첫쨋주 일요일날 축제가 열린다. 이때가 되면 카잔루크지역에서 장미생산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장미로 장식된 옷을 입고 행진을 시작한다. 그리고 방문객을 위해 각종 장미들이 전시된 전시회와 장미의 계곡을 담은 엽서전시회가 열리고, 쉽카수도원까지 장미를 감상하는 나들이가 조직된다. 매년 장미축제가 열리는 날이면 불가리아 전역과 세계 방방곡곡에서 장미를 보러 모이는 관광객으로 카잔루크는 초만원을 이룬다. 특히 올해의 장미축제는 불가리아가 4년 전의 경제위기를 벗어난 시점에서 열리는 것으로 어느 때보다 관광객으로 북적댔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인간과 가깝게 지내온 꽃 중 하나인 장미꽃은 특히 이곳 카잔루크에서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의 역사뿐만 아니라 불가리아민족의 역사까지도 그 은은한 향기로 대신 전해주고 있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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