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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할리우드 영화같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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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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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공통적인 고민 ‘부시는 누구인가’… 프랑스 언론과 국민들이 본 부시의 모습

사진/ 브뤼셀 나토정상회담 전경. 부시 대통령은 교토의정서 등 현안에 대한 입장을 전혀 수정하지 않았다.(GAMMA)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취임 뒤 처음으로 5일간의 유럽 방문길에 나섰다. ‘유럽이 과연 누구를 맞이하는가’라는 문제는 이 시점에서 유럽의 각국들이 던져보는 의문이다. 부시 대통령의 미국이 유럽에서 어떻게 이미지화되고 있는지, 프랑스의 예를 들어 한번 훑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할리우드식 대통령

지난해 말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36일간의 ‘표 재집계’ 게릴라전을 벌일 때, 프랑스인들의 식탁에도 화젯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자, 자유민주국의 대표라고 자칭하는 나라가 자기 대통령도 제때 선출해내지 못하니…, 원….” 이렇게 미식가들이 식탁에서 정치잡담으로 씹기에 딱 알맞은 화제였다.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취임식장에서 리키 마틴의 음악에 맞추어 춤추기를 마다하지 않는 장면은 그날 내내 프랑스의 TV 곳곳에 전파됐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한때 파티와 술에 젖어 살다가 성공한 사업가의 길을 거쳐, 급기야 대통령이 된 이 ‘미심쩍은’ 제43대 미국 대통령은 왠지 할리우드영화를 연상케 한다고 느낀 프랑스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의 정치경력을 설명하기는 어쩐지 멋쩍다. 레이건처럼 관념론자도 아니고, 아마도 그의 아버지보다는 좀더 보수주의자라고 할까. 그렇다고 이념론자도 아니다. 그는 지식인들에 대해 심각한 불신을 가지며, 그보다는 가족, 스포츠, 친구 등 단순한 즐거움을 선호한다. 그렇다고 아메리카에 대한 대단한 비전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지도 않으며, 단지 한정된 정부, 강력한 처벌력을 가지는 사법, 그리고 효과적인 교육 등의 몇 가지 원칙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대통령당선 당시 프랑스의 일간지 <리베라시옹> 2000년 12월14일치는 ‘우연히 정계에 뛰어든 부시, 큰 계획없다’라는 부제의 기사를 쓰고 있다. 하지만 문자 그대로 미국 역사상 가장 잘못 선출된 부시 대통령이 정말로 잘못 선출된 게 아니길 바랐던 이유는 세계 속에서의 미국의 위치를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나부터’라는 철학

지난 4월22일, 파리에서는 환경보호주의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자 위에 지구의를 얹어들고 파리주재 미국대사관으로 향했다. 그즈음 교토의정서에 거부의사를 표시한 미국의 처사와 그들이 보유한 사형제를 비유, 이는 곧 지구를 전기의자에 앉혀 사형시키는 행동에 다름 아님을 암시하는 행렬이었다. 그들은 미국대사관 앞에서, 교토의정서 내용을 큰소리로 낭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5월1일, 부시 대통령은 새로운 미사일방어(MD)정책을 발표했다. 이 MD정책이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지역과 근동지역뿐 아니라 나토 가맹국간에 냉기를 불어넣는 것을 보면서 프랑스 언론들은 애석함과 분노를 표했고, “국가와 국민을 내세우지만 국제문제에는 문외한인 미국 대통령이니 당연하다”고 따끔한 토를 달았다. 그래서 이번 방문국인 슬로베니아를 슬로바키아와 혼동했다는 후문을 들은 언론들은 오히려 부시답다는 느낌을 전했다.

부시의 유럽방문 하루 전인 6월11일, 미국에서 실행된 테러범 티모시 멕베이의 사형은 프랑스 일간지들의 일면을 장식했다. 그리고 12일 ‘1976년 이후 716번째의 사형’을 실행한 나라의 대통령 부시가 유럽에 첫발을 디뎠을 때, <르몽드>는 ‘부시의 미네이션’(Me-nation)이라는 기사로 그를 냉담하게 환영하고 있다. “전후세대의 아메리칸, 베이비부머스(Baby-boomers)는 미국식으로 칭하면 미-제너레이션(me-generation)식으로 길러졌다. 다시 말해 그들은 ‘우선 나부터’라는 일상철학에 기반한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미-제너레이션은 탄탄한 이기주의와 파생적인 개인주의, 그리고 즉각적인 만족을 갈구한다고 비판된다. 이번주에 유럽을 방문하는 베이비부머 조지 부시는 대외정책에 이러한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5일간 부시 대통령이 만나는 유럽은 물론 만장일치의 유럽은 아니다. 필요에 의해 이끌고 이끌려가는 경제의 유럽이 있는가 하면, 까다로운 입법의 유럽이 있고, 관례적으로 앵글로색슨의 영국을 배제해야 하는 군사적 유럽도 있다. 하지만 자국의 이익으로 갈라진 유럽일지라도 지구환경문제에 관한 한 함께 미국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

어쨌든 실패한 축제도 끝나게 마련이다. 6월15일 오전 현재, “기후문제와 관련, 의견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은 계속 좋은 친구로 남기로 했다”라고 EU-미국 정상회담 직후 소식을, 〈AFP통신〉은 정치·외교적인 어투를 빌려 전하고 있다.

파리=이선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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