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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전화로 해도 될 회담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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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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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변화없이 미국 입장만 되풀이한 브뤼셀 나토정상회담… 차이만 확인하려면 뭐하러 대서양 건넜나

사진/ 브뤼셀 주재 미대사관 앞의 시위자들. “부시는 돌아가라” “수배, 부시”등의 피켓을 들고 있다.(SYGMA)
부시 미국 대통령이 유럽을 순방하기 수주 전부터 벨기에의 대학가와 거리에는 흥미로운 포스터가 나붙기 시작했다. “반인류, 반지구 범죄를 저지른 조지 부시를 지명수배함. 상기 인물과 마주칠 때 각별한 유의 요망! 상기 인물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미합중국 대통령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자임. 지금 핵무장하고 있으며 위험인물이니 접근 금지. 발견시 책임있는 행동이 요망되며 인근 경찰서로 연락바람.”

방문국 선정부터 고심

미사일방어(MD)계획, 교토의정서, 유럽산 철강에 대한 미국의 보호주의 조치, 사형제 존속 등 안보, 환경, 무역, 인권의 제반분야에 걸쳐 유럽연합국가들과 이견을 조율하고 협력을 모색하기 위한 부시의 유럽순방이 험로가 되리라는 전조였다. 스페인에 이어 두 번째 방문국인 벨기에에서의 공식일정을 시작하기 하루 전인 6월12일 브뤼셀 주재 미대사관 앞에서는 20여개 비정부기구 소속 2천명 시위자들이 ‘우리 대통령은 정신박약자’란 구호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다음날 19개 나토회원국 정상들과의 회담이 진행된 나토본부 정문에도 아탁, 그린피스, 옥스팜 등 비정부기구 소속 시위자 300여명이 결집하여 MD강행, 교토의정서 비준거부를 성토했다. 삼엄한 경계가 펼쳐진 나토본부에는 시위자들의 접근이 차단되었으나 한 시위자가 동력 행글라이더에 ‘스타워즈를 중단하라’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매달고 나토본부 상공에서 기습시위을 벌이다 체포되기도 했다.


부시의 유럽순방은 방문일정에서부터 상당한 논란거리로 대두됐다. 순방일정에 전통적 동맹국이자 유럽연합의 삼두마차인 독일, 프랑스, 영국을 제외하고 스페인을 첫 방문국으로 선택한 배경에 대해 갖가지 추측과 해석이 난무했다. 스페인, 벨기에, 스웨덴, 폴란드, 슬로베니아 등 순방국가들 중 벨기에에는 나토본부가 있고 스웨덴은 올해 6월 말까지 유럽연합의 의장국을 맡고 있으며 슬로베니아는 블라디미르 푸틴과의 회담을 고려한 선택이다. 한편 스페인과 폴란드의 공통점은 MD계획에 지지를 표명한 나라들이라는 것이다. 부시가 스페인을 선택한 것은 유럽연합 15개 회원국들 중 중도좌파가 집권하고 있는 국가가 11개국에 이르는 현실에서 중도우파의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총리가 집권하고 있는 스페인에 이념적 동질감을 느낀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또한 미군기지가 주둔하고 있다는 점이 스페인을 첫 방문국으로 낙점하게 된 배경으로 작용했을 거라는 해석도 있고 미국 내 히스패닉계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정치적 목소리가 커져가는 추세에서 2004년의 대선을 염두에 둔 장기적인 포석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부시가 스페인어로 “스페인을 방문하게 된 것을 무한한 기쁨으로 여긴다”라고 인사하며 미국 내에서 점증하는 스페인문화의 영향을 강조하는 등 유독 스페인과의 동질성을 부각시킨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스나르 총리도 MD에 대해서 지지의사를 표명했으나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반대입장을 분명히했다. 톨레도 근처의 킨토스 데 모라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스나르 총리는 교토의정서 비준을 지지하며 사형제 존속과 대쿠바 무역제재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국제사회 비난해도 국내 입지 노린다

사진/ 나토정상회담에 참석한 부시 미대통령과 파월 국무장관.(SYGMA)
벨기에 브뤼셀에서 나토회원국 정상들과 가진 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1972년 구소련과 체결된 탄도탄요격미사일(ABM)감축협정은 과거 냉전시대의 유물이며 변화하는 안보상황에 대처하고 세계의 평화애호민들을 테러리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MD계획을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역설했다. ‘평화애호민’, ‘테러리즘’이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미국의 입장만을 되풀이한 회담이 끝난 뒤 부시는 MD계획에 대한 동맹국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려는 노력이 진일보했다고 자평했다. 유럽연합국가들이 MD계획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다. 중도우파가 집권하고 있는 스페인, 이태리와 동구의 폴란드, 헝가리, 체코공화국 정부가 지지의사를 표명했고 영국과 터키도 지지입장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양대축인 독일과 프랑스 양국 정상은 브뤼셀의 나토정상회담 직전 스트라스부르에서 회동하여 MD계획은 신군비경쟁을 촉발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미사일감축 노력이 MD체제 구축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ABM감축협정은 전략적 균형유지에 중추 역할을 해왔다고 밝히며 대량살상무기의 확산금지 노력, 핵억제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의지를 분명히했다. 교토의정서의 비준거부와 관련, 부시는 지구온난화가 온실가스 배출에 기인하는지 여부는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토의정서는 비현실적이라는 견해를 되풀이함으로써 유럽연합과의 입장차이를 뚜렷하게 노정시켰다. 환경운동가, 반세계화운동가들이 ‘유독성 텍사스인’(Toxic Texan)이라는 구호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진행된 유럽연합 15개국 지도자들과 회담이 끝난 뒤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교토의정서에 대해서 의견을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이며 이에 대처할 협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식을 함께했다”고 밝혔다. 교토의정서 비준에 대한 반대의사를 재확인한 것이나 다름없는 발언이다. 한편 유럽연합의장국인 스웨덴의 페르손 총리는 미국의 비준거부와 상관없이 유럽연합은 일본과 러시아를 포함시켜 의정서 비준과 이행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문제에 관한 한 미국의 고립주의적 경향이 두드러진 예테보리회담에서 그나마 유일한 성과는 미국이 다음달 독일의 본에서 열리는 환경회담에 참석하기로 약속한 것뿐이다. 그러나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5%를 차지하는 미국이 배제된 채 교토의정서가 비준, 이행된다 하더라도 지구온난화방지 노력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시 행정부가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하는 것은 현재 미국경제가 뚜렷한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교토의정서를 비준, 이행하게 되면 결국 에너지비용 상승으로 경제회복의 돌파구 마련이 힘들다는 현실인식 때문일 거라는 관측이다. 외교정책에서 성공하고도 국내경제정책에 실패하면 결국 자신의 입지가 약화되고 이는 향후 연임 가능성이 불투명해지는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적으로 부시의 주요 지지자들이 온실가스를 대량배출하는 기업주들이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유럽연합과 미국 내 환경운동가를 한축으로, 화석연료를 주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기업들을 다른 한축으로 하여 전개되고 있는 싸움에서 진퇴양난에 빠져 있다.

유럽연합 확대에 왜 미국이?

사진/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는 한 시위자.(SYGMA)
부시는 나토의 동진확대정책과 동유럽국가들의 유럽연합 가입에도 강한 지지입장을 표명했으나 유럽연합 일부에서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나토의 동진확대정책에 앞서 러시아의 불안과 우려를 불식시켜야 하는 난제가 놓여 있고 동유럽의 유럽연합 가입문제는 유럽연합의 고유 정책결정사항이다. 미국이 유럽연합의 회원국도 아닌 상황에서 유럽연합의 확대 운운하는 것은 유럽연합의 정책결정이 미국의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인상을 심을 수도 있다. 동유럽국가들의 유럽연합 가입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농업보조금 삭감, 노동력 유입으로 인한 노동시장 불안해소 등 기존 회원국간의 첨예한 이해관계 해소가 관건이고 이는 유럽연합의 고유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부시가 근본적인 입장 변화없이 정치적 수사만으로 유럽과의 공통적 가치와 전통을 강조하며 이견 조율을 시도한 유럽순방은 결국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엄존하는 차이만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또한 냉전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의 패권주의적 오만이 외교정책에서 일방주의(unilateralism)로 표출되고 있고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실질세력이 유럽연합임을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동맹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ABM제한협정을 폐기하고 MD를 추진하며 교토의정서 비준거부를 고집할 경우 유럽연합이 취할 수 있는 실질적 대응조치가 무엇이 될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브뤼셀=양철준 통신원 YANG.chuljoon@wanad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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