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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날만은 민중에게 권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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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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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의 여름을 달구는 ‘푸슈킨 카니발’… 카니발 정부가 고위관료 압송해 마음껏 조롱하다

사진/ 5월27일 상트페테르부르크시에서 열린 예비 카니발 행사. 배경에 보이는 초상이 도시 창건자인 피터 1세.
본격적인 백야의 계절임을 알리기 시작한 지난 6월3일 ‘북국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남방으로 20여km 지점에 위치한 전원도시 푸슈킨. 황제의 여름별장 예카테리나 궁전이 자리잡고 있어 ‘황제의 촌락’이라 불리는 이 도시에서 대규모 카니발 행사가 개최됐다.

소련 이념 털고 민중 카니발 준비

올해로 7번째를 맞는 ‘푸슈킨 2001 카니발’은 규모와 내용면에서 유럽 여느 도시의 카니발보다 더욱 성대한 것으로 평가되어 행사참가자들은 물론 내외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특히 이번 축제는 푸슈킨시를 유럽 카니발위원회가 올해의 유럽 카니발 수도로 선정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 걸맞게 행사는 대폭 확대되어 푸슈킨보다 ‘큰형님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이미 일주일 전에 푸슈킨의 본 카니발을 준비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카니발이 기획, 개최된 바 있다. 그러다보니 카니발을 즐기는 군중들은 거의 10여일간 축제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또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카니발이 시작된 5월27일부터 이번 푸슈킨 카니발에 발맞춰 개최되는 제21회 유럽카니발위원회 총회에 유럽각국 대표단 및 행사 참가자들이 입국하기 시작해 성대한 축제를 예견했다.


사진/ 카니발의 황제가 된 레닌. 권력에 대한 조롱을 상징하는 황제모가 씌워져 있다.
러시아에서 카니발의 역사는 1718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창건자인 피터 대제가 축제령을 포고한 데서 유래할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과거의 화려함과 제정 때의 풍속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최신의 유행을 가미한 현대판 카니발의 등장은 지난 1994년 ‘황촌 카니발 문화발전재단’이 연방차원에서 구성되면서부터이다. 재단 초대 이사장으로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는 이고르 가브류쉬킨은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민족적 장점의 하나인 축제 즐기는 습관을 그간 잃어왔는데 소련 시절의 이데올로기적인 축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축제를 마련하기 위해 모든 관계자가 골몰한 끝에 새로운 민중적인 카니발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카니발의 가장 주요한 볼거리는 오전부터 시내중심가를 따라 이어지는 각종 가장행렬 행사이다. 행사 참가자들은 이 가장행렬에서 축제 의상, 축제 우산 등을 뽐낸다. 일반 군중들이 이를 관람하고 즐기는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가장 카니발적인 의상과 우산을 선보인 팀을 선정해 시상하게 된다.

너의 넥타이를 잘라주마!

춤과 노래, 그리고 술로 이루어지는 카니발의 숨은 의미는 “이날만큼은 모든 것을 민중이 원하는 대로 한다”는 원칙에 있다. 때문에 가장행렬에 이어 각종 경연대회가 개최된 카니발 중앙무대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및 푸슈킨시의 고위관료들을 강제로 압송(?)해 권력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넥타이를 자르고 권력을 조롱하는 의미에서 머리에 광대모자를 씌우는 행사가 벌어져 시민들의 각광을 받았다. 어느 한 고위관리는 “3년 전부터 이 행사에 불려오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날은 꼭 공교롭게 비싼 넥타이를 하게 돼 손해를 톡톡히 봤다”며, “올해 잘린 넥타이도 스페인산 160불짜리”라고 웃으면서 푸념했다. 정권의 민중이양을 상징하는 넥타이 절단식에 이어 새로 권력을 움켜쥔 카니발 정부는 투표 대신 참가 민중들의 박수와 함성으로 카니발 황제와 황후를 선출했는데 이날 경쟁률은 예심을 포함 무려 300 대 1이었다. 카니발 황제가 칙령에 의해 맘껏 먹고 마시고 즐길 것을 선포하자 행사는 절정에 달했다.

올해 행사준비위는 이번 카니발이 2003년에 도시 창건 300주년을 맞게 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시 카니발의 예행연습차원의 행사라고 한다. 이 추세라면 2년 뒤 이곳의 백야가 시작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시의 여름은 타 지역보다 서늘한 기온에도 불구하고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박현봉 통신원 parkhb_spb@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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