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덕(武德)함양 단체에서 정반대인 평화교육 단체로 변모했음에도…
“준비돼 있어라!”“예, 준비돼 있습니다!”
위와 같은 대화는 필자가 10살부터 5년간 거의 매일 해야 했던 것이다. 그 당시 소련에서는, 그 나이의 거의 모든 청소년들은 ‘비오네르’(영어의 pioneer, ‘개척자’에서 따온 말)라는 전국적인 훈육조직의 멤버가 돼야만 했다. ‘비오네르’의 멤버라면, 단위부대의 부대장에게 “늘 준비하고 있다”는 다짐을 매일 할 뿐만 아니라, 매주 몇번씩 대열행군과 자동소총 분해·조립을 연습해야 했고, 한 학기에 몇번씩 합숙야영과 전쟁훈련게임까지 빠지지 말아야 했다.
내 어린 날의 악몽, 비오네르
‘비오네르’의 기본목적은, 권위주의 국가의 청소년 훈육단체답게 “애국정신과 당성교육, 국방훈련”이었다. 거수경례와 함께 그 다짐을 녹음기처럼 반복해야 했던 필자는, 악몽과 같은 훈육조직과 ‘다짐의 말씀’이 다 소련 공산당의 창작물이거니 하고 믿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필자의 순진한 오판이었다. 소련의 ‘비오네르’는(그리고 1946년에 발족된 북한의 소년단도) 결과적으로 서방세계의 스카우트(scout)단체의 모방에 불과했던 것이다. “준비하고 있어라”라는 표어는 대표적으로 스카우트의 “Be Ready”의 단순한 직역이었다. 모방의 과정에서 바뀐 것이라곤, 스카우트의 “하느님에 대한 의무”와 “국가·사회에 대한 충성”을 “애당(愛黨)·국방정신”으로 바꾸고 의무적 가입을 실시한 정도이었다. 어린 날의 악몽이었던 훈육조직이 세계적 스카우트운동의 한 일그러진 갈래라는 사실을 알고나서 필자는 “과연 스칸디나비아에서도 비슷한 훈육단체들이 있는가”라는 큰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얼마 뒤, 스칸디나비아 훈육단체의 활발한 활동을 접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국과의 관계가 밀접했던 스칸디나비아 각국에서는, 영국 보이스카우트 단체가 1907년에 최초로 발족된 직후 스카우트 그룹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서 대대적인 호응을 얻었다. 맨 먼저 1908년에 스웨덴의 스카우트운동이 발족되고, 그 다음에 덴마크에서 1909년, 그 당시에 러시아의 식민지였던 핀란드에서 1910년에 각각 스카우트 조직이 설립됐다. 상대적 주변부였던 노르웨이에서는, 10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스카우트운동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스카우트 선언문’을 채택한 스카우트의 제3차 세계총회가 다른 곳이 아닌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1924년에 열렸던 사실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현재 같으면, 스칸디나비아 각국에서 청소년의 약 15∼20%가 남녀 스카우트의 멤버가 되거나 그 활동에 간헐적으로 참가한다. 노르웨이에서는 스카우트 조직이 없는 동네를 거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스카우트운동이 매우 보편적이고, 여러 스카우트 단체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1천개를 넘을 정도다. 물론 스칸디나비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노르웨이 등의 스카우트들의 목적과 일상은, 옛 소련 시절의 ‘비오네르’들의 자동총 다루기·대열행군과는 다르다. 현재 스카우트교육은 주요목표로 가장 ‘정치적으로 합당한’ 부분들, 인종적·문화적 다양성 이해의 배양, 환경의식 함양 등을 삼고 있다. 아울러 민주적인 리더십(부담이 되거나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잘 이끌어나가는 기술), 단체생활에의 동등한 참여를 익히는 것을 사회민주주의국가 시민의 좋은 ‘준비과정’으로 여겨도 무방하다 하겠다. 이와 함께 어릴 때부터 “상황이 어떻든, 폭력·폭언은 무조건 안 되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도 ‘조용한’ 준법사회를 만드는 핵심적인 부분이 된다. 스카우트의 리더인 어른들(보통 대학생이나 30∼40대의 직장인)이 돈 한푼 받지 않고 스카우트단체에 자원봉사한다는 사실도 매우 교육적인 내용이다. 창립자 ‘베이든 포웰’의 광기와 야만
그렇다면 스칸디나비아의 스카우트들을 ‘비오네르’의 악몽과 전혀 무관한 ‘민주시민 준비과정’으로 볼 수 있을까? 물론 현재의 노르웨이 스카우트 어린이들은 리더로부터 “준비하고 있어라!”는 명령을 듣지 않는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의 스카우트들이 지금도 입고 다니는 제복- 같은 색깔과 모양의 조끼와 스카프- 을 보거나, 노르웨이 스카우트 잡지에서 ‘우리 국기 게양 규칙’과 같은 자료를 읽으면, 정도의 차이가 있다 해도 스카우트과 ‘비오네르’가 똑같이 단체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는 놀라움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다같이 소리를 내어 외워야 하는 스카우트 선서에서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는 조항이 지금도 들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스카우트조직의 ‘메뉴’에 민주주의·인권 등의 ‘반찬’과 함께 국가의식이라는 ‘밥’이 ‘기본’으로 고스란히 올라와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스카우트와 같은 단체가 이토록 활발하지 않았다면, 노르웨이의 주요 국경일인 ‘헌법의 날’ 5월17일에 국기를 흔들면서 왕궁 앞에 진열하는 대중이 그처럼 많을 리가 있었을까?(필자는 노르웨이의 ‘헌법의 날’에, 일렬로 행진하는 각 학교 학생과 군중을 보고 충격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문명적’ 국가의식의 주입에 흐뭇해하는 노르웨이의 스카우트 지도자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실은, 초기 서구의 스카우트 운동이 오히려 체제옹호적인 국방정신 위주의 ‘비오네르’와 훨씬 더 가까웠다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영국 스카우트 조직을 창립한 베이든 포웰(Robert Baden-Powell, 1857∼1941)은, 베추아(Bechua), 아산티(Ashanti) 등의 아프리카 종족에 대한 전승인 학살과 남아프리카 침략전쟁(1899∼1902)에서의 ‘업적’으로 명성과 장군의 계급장을 얻은 영국 제국주의·침략주의의 ‘베테랑’이었다. 철저한 인종주의자이자 제국주의자, 군국주의자이었던 그가 스카우트 운동을 발족시킨 직접적 동기도, 징병제가 아직 없었던 1900년대의 영국에서 “백인다운 씩씩하고 멋진 군인·식민지 개척자를 어릴 때부터 길러 나중에 대영제국의 일꾼으로 삼자”는 것이었다.
1920년대에 ‘백인인종’과 기독교 신앙을 소련국가와 레닌사상으로 대체해 ‘비오네르’의 이름 아래에서 스카우트를 수입한 소련이 ‘비오네르’(‘개척자’)란 이름을 채택한 배경으로, 스카우트 창립자의 저서에 식민지 개척 ‘일꾼’의 ‘준비’를 중점에 뒀다는 사실이 있다. ‘개척자’(pioneer)란 단어가 그 저서 곳곳에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군국주의의 전성기였던 1920∼30년대에 스칸디나비아를 포함한 서방국가와 소련, 일본 등이 스카우트를 수입·장려한 배경에, 제1차 세계대전 때 군사훈련을 철저히 받았던 스카우트 출신 병사들이 전과(戰果)를 가장 잘 올렸다는 사실도 깔려 있었다. 원래부터 ‘제국의 기사(騎士)’란 별명을 가진 만큼 군사훈련에 중점을 두었던 스카우트들이 이 부분을 시민사회의 문화와 사상으로 대체시킨 시기는 대개 1950∼70년대부터이다. 서방의 스카우트들이 평화와 인권운동의 물결에 부딪혀서 그 모습을 바꾸었을 때, 세계의 경향에 둔했던 소련의 스카우트 즉, 필자의 악몽이었던 ‘비오네르’들은 1920년대의 군국주의적 ‘원형’에 계속 충실(?)했다. 그러나 정확하게 ‘정탐꾼’, ‘밀정’을 의미하는 군국주의적 냄새가 짙은 ‘스카우트’(scout)라는 이름(1920년대의 일본과 식민지 조선에서 ‘척후단’(斥候團)으로 번역되었음)은 현재까지도 바뀌지 않고 있다.
‘기독교로의 인도’ 버젓이 들어있어
위와 같은 역사적인 배경을 고려하면, 스칸디나비아의 스카우트운동을 역사적 ‘신진대사’라는 매우 흥미로운 경우로 여겨봄직도 하다. 무덕(武德)함양 단체에서 정반대인 평화교육 단체로의 스칸디나비아 스카우트의 변모는, 세계사적으로 보기드문 경우라 하겠다. 그러나 과연 “흑인의 무리를 이길 만한 씩씩한 백인”을 키우겠다는 베이든 포웰의 광기와 야만의 혼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 있을까? 그 ‘신진대사’를 완벽한 것으로 볼 수 없게 하는 것은, 노르웨이 스카우트의 목적 중에서, 남의 신앙에 대해 ‘기독교 신앙으로의 인도, 신앙의 계발’의 항목이 버젓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즉 남과의 평화, 남에 대한 존중을 교육목표로 삼으면서도, ‘우리 국가’의 국교(國敎)인 루터교를 ‘정체성 교육’의 핵심으로 설정한 셈이다. 타(他)신앙을 가진 ‘남’과 기독교 신앙·가치를 가진 ‘우리’ 노르웨이 사람들의 구별을 어릴 때부터 가르친다는 것 자체는, ‘정치적 합당성’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 가난과 불안 속의 ‘복지의 섬’ 유럽에서 제3세계의 이민자와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제3세계 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날로 심화해가는 현 상황에서, 스칸디나비아 스카우트식 ‘기독교적·국가적 정체성 교육’은 우익적 정서의 씨를 어린이들의 마음속 깊이 뿌려주는 측면이 많다. 비록 괄목할 만한 ‘신진대사’가 됐다 하더라도, 폭력적 단체주의의 상징이었던 베이든 포웰이 지은 악인(惡因)은, 언제라도 역사적 상황에 따라 큰 악과(惡果)를 불러올 씨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사진/ 보이·걸 스카우트 대원들의 행사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국기.(GAMMA)
‘비오네르’의 기본목적은, 권위주의 국가의 청소년 훈육단체답게 “애국정신과 당성교육, 국방훈련”이었다. 거수경례와 함께 그 다짐을 녹음기처럼 반복해야 했던 필자는, 악몽과 같은 훈육조직과 ‘다짐의 말씀’이 다 소련 공산당의 창작물이거니 하고 믿었다. 그러나 알고보니 필자의 순진한 오판이었다. 소련의 ‘비오네르’는(그리고 1946년에 발족된 북한의 소년단도) 결과적으로 서방세계의 스카우트(scout)단체의 모방에 불과했던 것이다. “준비하고 있어라”라는 표어는 대표적으로 스카우트의 “Be Ready”의 단순한 직역이었다. 모방의 과정에서 바뀐 것이라곤, 스카우트의 “하느님에 대한 의무”와 “국가·사회에 대한 충성”을 “애당(愛黨)·국방정신”으로 바꾸고 의무적 가입을 실시한 정도이었다. 어린 날의 악몽이었던 훈육조직이 세계적 스카우트운동의 한 일그러진 갈래라는 사실을 알고나서 필자는 “과연 스칸디나비아에서도 비슷한 훈육단체들이 있는가”라는 큰 궁금증이 생겼다. 그리고 얼마 뒤, 스칸디나비아 훈육단체의 활발한 활동을 접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영국과의 관계가 밀접했던 스칸디나비아 각국에서는, 영국 보이스카우트 단체가 1907년에 최초로 발족된 직후 스카우트 그룹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서 대대적인 호응을 얻었다. 맨 먼저 1908년에 스웨덴의 스카우트운동이 발족되고, 그 다음에 덴마크에서 1909년, 그 당시에 러시아의 식민지였던 핀란드에서 1910년에 각각 스카우트 조직이 설립됐다. 상대적 주변부였던 노르웨이에서는, 10년이 더 지나고 나서야 스카우트운동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스카우트 선언문’을 채택한 스카우트의 제3차 세계총회가 다른 곳이 아닌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1924년에 열렸던 사실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현재 같으면, 스칸디나비아 각국에서 청소년의 약 15∼20%가 남녀 스카우트의 멤버가 되거나 그 활동에 간헐적으로 참가한다. 노르웨이에서는 스카우트 조직이 없는 동네를 거의 찾기 어려울 정도로 스카우트운동이 매우 보편적이고, 여러 스카우트 단체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1천개를 넘을 정도다. 물론 스칸디나비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노르웨이 등의 스카우트들의 목적과 일상은, 옛 소련 시절의 ‘비오네르’들의 자동총 다루기·대열행군과는 다르다. 현재 스카우트교육은 주요목표로 가장 ‘정치적으로 합당한’ 부분들, 인종적·문화적 다양성 이해의 배양, 환경의식 함양 등을 삼고 있다. 아울러 민주적인 리더십(부담이 되거나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잘 이끌어나가는 기술), 단체생활에의 동등한 참여를 익히는 것을 사회민주주의국가 시민의 좋은 ‘준비과정’으로 여겨도 무방하다 하겠다. 이와 함께 어릴 때부터 “상황이 어떻든, 폭력·폭언은 무조건 안 되는 것”을 가르쳐주는 것도 ‘조용한’ 준법사회를 만드는 핵심적인 부분이 된다. 스카우트의 리더인 어른들(보통 대학생이나 30∼40대의 직장인)이 돈 한푼 받지 않고 스카우트단체에 자원봉사한다는 사실도 매우 교육적인 내용이다. 창립자 ‘베이든 포웰’의 광기와 야만

사진/ 주요 국경일인 ‘헌법의 날’5월17일 왕궁 앞을 행진하는 노르줴이 국민들도 국기를 흔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