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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너무나 씁쓸한 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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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6-0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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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노동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어린이들. 이들이 노예신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연대가 필요하다.(SYGMA)
초콜릿은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기호품 중 하나이다. 구미인들의 미각을 충족시켜온 초콜릿의 원료가 코코아인데 코코아의 주요생산국은 코트디부아르, 가나, 인도네시아, 나이지리아로 이들 국가 중 서부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와 가나가 전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코트디부아르의 경우 연간 120만t의 코코아를 생산함으로써 전세계 생산량의 45%를 차지한다. 코코아는 코트디부아르의 주요 외화가득원 구실을 하며 코코아의 국제시세 등락에 따라서 국가경제도 부침을 거듭할 정도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코코아는 수확하여 껍질을 벗기고 발효, 선별, 건조, 볶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예전에는 코코아 수확기에 인근국가들로부터 유입되는 계절적 노동자들에 의존해왔으나 근년 들어서 임금착취와 강제노동에 취약한 어린이들을 동원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코코아농장은 인권의 사각지대로 떠올랐다. 최근 어린이 노예들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나이지리아국적의 선박이 가봉과 카메룬으로부터 입항이 거부된 사건을 계기로 코트디부아르의 코코아농장에서 강제동원되어 혹사당하고 있는 베닌, 말리, 토고, 부르키나파소 등 서부아프리카 최빈국 출신 어린이들의 참상이 알려지고 있다. 코코아농장에서 강제사역을 당하고 있는 어린이들은 납치되어 농장주들에게 팔린 경우이거나 학교와 일자리를 마련해준다는 약속에 부모들이 2만∼3만원 정도를 받고 팔아넘긴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운명처럼 지워진 가난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좀더 나은 삶을 시작하기 위한 호기로 알고 팔려나가지만 결국 현대판 노예시장에 등장할 뿐이다. 중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임금도 받지 못한 채, 가혹한 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하다 붙잡혀 감금된 뒤 잔인하게 구타당한 사례도 보고되곤 한다. 코트디부아르 정부와 생산업자들은 다국적회사들이 어린이강제노동이 계속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채 오로지 이윤추구에만 급급할 뿐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의 공정한 가격지불에는 인색하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코코아의 국제시세를 회복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해 7월 서부아프리카 역내 4개국인 코트디부아르, 가나, 나이지리아, 카메룬 코코아 생산업자들은 25만t의 코코아를 수거하여 폐기처분했으나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초콜릿제조회사들은 카카오의 국제시세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 결정되는 것이라는 원칙적인 입장만을 반복하고 있다.

유럽에 코코아가 처음 소개된 것은 스페인인들이 중미의 마야사회로부터 도입한 16세기 말이었다. 대규모로 재배되기 이전에 코코아는 “갈색의 황금”으로 불릴 정도로 귀해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대륙을 방문하기 이전까지 중미지역에서는 화폐로 통용될 정도로 그 가치가 높았다. 노예 한명당 말린 코코아열매 100개와 등가교환했을 정도이다. 오늘날 초콜릿은 사랑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밸런타인데이, 크리스마스, 부활절에 선물로 많이 주고받는다. 코트디부아르 코코아농장의 어린이 노예노동은 21세기의 왜곡된 구조가 빚어낸 상황으로, 16세기 말의 상황보다 한 걸음 후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을 전하는 초콜릿이 아니라 사람잡는 초콜릿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국제적 연대가 절실하다.

헨트=양철준 통신원 YANG.chuljoon@wanad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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