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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식민지 유물탈취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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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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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영해 487곳에 쳐진 유럽자본의 보물 덫, 아직도 소유권이 그들에게 있다니…

“1945년엔 사이렌으로 하루가 시작되고 또 저물었다. 아시아의 ‘맏형’이라 우겼던 일본놈들은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케후’(적이다)를 외쳐대며 우리를 방공호로 몰아넣었다.”

할머니는 내게 일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큰 즐거움으로 여기셨다. “하루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나 싶어 방공호를 살짝 나가 봤더니, 일본놈들이 문고리며 프라이팬 같은 쇠라는 쇠는 모조리 훔쳐가고 있더라.” 이렇게 제국주의자들은 인도네시아를 송두리째 훔쳐갔다. 무기 만들겠다고 쇳조각을 훔쳐간 판에 문화재나 유물을 굳이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35억달러어치 유물에 보상금은 40만달러


네덜란드가 350년 동안 휩쓸고 간 자리에 일본이 또 도둑질을 해갔다. 한마디로 말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에 인도네시아의 문화재는 없다. 인도네시아의 문화재는 미국, 유럽, 일본에 가면 볼 수 있다. 불행히도 그들에게 형식적인 식민통치는 막을 내렸는지 몰라도, 아직 인도네시아 같은 제3세계는 여전히 수탈당하고 있다. 그 증거가 바로 유물 탈취다.

유물 도둑질은 옛날 식민통치 시절의 향수가 깃든 전설이던가? 아니다. 현실이다. 가까이 1980년대부터 미친 듯이 끓어오른 바다 밑 보물이야기를 해보자. 유럽 자본들은 해저유물 사냥터로 지목한 인도네시아에 모두 487군데 덫을 놓았다. 해양수산 탐사부의 자료에 따르면, 말라해협에 37개, 리아우에 17개, 펠라부한 라투와 자바 서부에 134개, 파푸아에 88개 그리고 말루쿠에 36개 지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의 전 영해에서 보물선 탐사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덫을 친 곳마다 평균 125백만달러어치의 보물이 묻혀 있다니, 과연 눈이 돌 만한 일이긴 하다. 그런데 이게 인도네시아와 상관없는 돈이고 상관없는 유물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바다에서 벌어진 일인데도.

사진/ 유럽자본의 유물 도적질은 식민통치 시절이 아닌 지금도 인도네시아 영해에서 이뤄지고 있다.(GAMMA)
‘프롤 드 라 말’이라는 포르투갈 배를 리아우와 사방섬 부근에서 인양한 경우를 보자. 총 35억달러어치 해저유물을 건져놓고 인도네시아에 돌아온 건 40만달러였으니. 이게 말레카왕국(현 말레이시아)의 보물을 실어가던- 사실은 훔쳐가던- 서양 무역선이었는데, 언제적 얘기인가? 아직도 ‘소유권’이 유럽에 있고 아시아에는 ‘보상금’이란다.

또 보자. 지난해 11월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나이걸 비드센터에서는 수천점의 유물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시민들은 놀랐고, 인도네시아 정부는 반환을 요구했다. 그 유물들은 1822년 인도네시아 영해에서 침몰한 중국배 텍싱에서 건진 것이었다.

이렇게 몇 군데에 덫을 놓았건 유물의 가치가 얼마나 되었건, 허탈감을 빼고 나면 인도네시아에 돌아온 건 아무것도 없었다. 국제법이 엄연히 ‘영해권’을 인정하고 있는 판에 왜 인도네시아의 바다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져 왔는가. 여기서 숨길 수 없는 사실 하나. 돈줄을 휘두르는 제국주의자들만 탓할 것도 없이 정부를 잘못 잡은 시민들의 운명적인 박탈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보자. 미카엘 햇첨과 같은 영국의 ‘사냥꾼’은 인도네시아 군부나 수하르토 패밀리와 짜고 해저 유물들을 훔쳐갔다. 물론 수백만달러로 추정되는 그 밀약금은 인도네시아의 부패에 크게 기여했다. 이렇게 간단한 인도네시아 스스로의 책임을 빼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최근 인도네시아 당국은 데니스 오스틴이라는 미국인 범법자를 필리핀으로 송환했다. 이 범인은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으로부터 유물 반출의 허가증까지 얻었던 인물이다. 그래도 이웃 필리핀은 도굴꾼들을 잡아넣긴 하는 모양이다.

그들을 바라만 보고 있을 것인가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아시아의 연대다. 아시아의 유물반환연대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인도네시아 혼자의 힘만으로는 유럽, 미국, 일본 같은 거대한 도둑들을 상대할 수 없다. 아시아 전체가 최대의 피해자였다면 아시아 전체가 함께 나서자는 뜻이다. 아시아국가들이 공동협정 같은 것이라도 맺어 도둑질을 막고, 잃어버린 물건들을 돌려달라고 소리라도 쳐보자는 말이다. 언제까지 식민주의자들의 등쌀에 오금을 펴지 못하고 살아갈 것인가. 유물이든 보물이든, 아직도 아시아를 동네 똥개 다루듯 하는 식민주의자들을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독립만세! 1945년 인도네시아 헌법 전문에 선연히 박혀 있는 “제국주의를 몰아내자”는 구절이 왜 이리도 부끄럽게만 느껴지는지!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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