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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엎친 데 덮친’ 아프간 정국

내전 참화속 카르자이 대통령 당선 번복돼 재선거 결정… 정치적 타협설 도는 가운데 민심은 냉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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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28 14:35 수정 : 2009-10-29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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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대통령 선거가 ‘다시’ 치러지게 됐다. 지난 8월20일 치러진 대선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올린 후보가 없다는 공식 발표가 꼭 두 달 만인 지난 10월19일 나온 탓이다. 2차 결선 투표는 11월7일 치러진다. 공식 발표된 1차 선거의 유효 투표는 약 430만 표, 전체 1500만 유권자의 3분의 1에 불과한 규모다. 결선 투표에선 투표율이 더욱 낮아질 게 뻔하다. 누가 당선되든 ‘정통성’ 시비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오른쪽)이 10월20일 결선 투표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밝히기 위한 기자회견에 앞서 존 케리 미 상원 외교위원장과 귀엣말을 나누고 있다. REUTERS/ AHMAD MASOOD

카르자이 득표율 55%→49.8%로 조정

애초 지난 9월 발표된 1차 선거 결과는 싱거웠다. 하미드 카르자이 현 대통령이 55%의 득표율로, 28%를 얻는 데 그친 압둘라 압둘라 전 외교장관을 따돌리고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는 게다. 하지만 아프간 선관위의 ‘공식 발표’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인 이들은 많지 않았다. 당장 유럽연합에서 온 선거감시단 쪽에서 ‘파울’을 외치고 나왔다. 많게는 4표 가운데 1표꼴로 부정선거가 자행됐다는 게다.

카르자이 대통령 쪽의 강력한 반발 속에 유엔은 서둘러 ‘선거불만위원회’(ECC)를 꾸리고 조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ECC가 내놓은 최종 선거 결과는 ‘절묘’했다. 최대한 ‘체면’을 차리는 선에서 결선 투표의 길을 열어놓으려는 것이었을까? 카르자이 대통령의 득표율은 49.8%로 발표됐다. 압둘라 전 장관의 지지율은 32%로 높아져 있었다.

카르자이 대통령도 결국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결선 투표는 절대 없을 것”이라던 기존의 주장을 거두고 10월20일 기자회견을 열어 “(1차 투표의) 승자가 누군지는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선언한 게다. 이유는 자명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두 달 동안 “아프간에 합법적인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병력 증파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해왔다. 10월19일엔 카불로 날아간 존 케리 미 상원 외교위원장이 카르자이 대통령과 2시간가량 ‘집중 면담’을 했다. 다른 선택은 있을 수 없었던 게다.


그럼에도 “결선 투표가 치러지기 전 정치적 타협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을 거두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다. 카르자이 대통령과 압둘라 전 장관이 모종의 협상을 통해 연립정부 구성을 꾀하고 있다는 게다. 실제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20일 인터넷판에서 “권력 배분을 놓고 두 진영이 협상을 벌였으며, 압둘라 전 장관 쪽에선 (26개 중앙부처 가운데) 치안을 맡는 내무부를 비롯해 12개 부처 장관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며 “하지만 협상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중단된 상태”라고 전했다.

선거까지 불과 보름여, 물리적으로 투표 준비를 해내기도 버거운 기간이다. 지난 대선 때도 탈레반의 공격으로 아프간 선관위 요원 15명이 숨지고, 20명이 다쳤다. 아프간의 치안 상황은 이후 더욱 나빠졌다. 전국 각지의 투표소로 선거 관련 용품을 재배치하는 것만도 쉽지 않은 과제다. 여기에 선거 부정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선관위 요원들도 들어내야 한다. 유엔은 “전체 680곳 선거구 가운데 적어도 200곳에서 부정선거가 이뤄졌다”고 밝힌 바 있다.

선거 부정 없을 것이라 누가 장담하겠나

무엇보다 선거 자체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이 팽배해 있다. 슈크리아 바라크자이 아프간 의회 의원은 21일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목숨을 걸고 투표에 참여했지만, 선거 부정으로 무효가 됐다”며 “이번 선거에선 부정이 없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인터넷 대안매체 ‘전쟁과 평화보도 연구소’(IWPR)가 10월21일 전한 카불의 어느 택시기사의 푸념은 결선 투표를 앞둔 아프간 민심의 전형으로 읽힌다.

“대체 외국인들이 우리한테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 선거? 자유? 민주주의? 외국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왔다. 아무도 카르자이가 누군지 몰랐지만, 우루즈간의 산자락에 그를 내려놓고는 대통령으로 삼았다. 그러더니 이젠 다른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다. 그저 연속극쯤으로 여기는 건가? 그들은 우리의 고통을 즐기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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