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독립정신이 스며든 발랑기가교회 종… 반환 합의에도 왜 돌려주지 않는가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은 1998년 독립 100주년을 맞아 미국 와이오밍주의 월느공군기지에 걸려 있는 발랑기가교회의 종들을 반환하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했고, 같은 무렵 미국 연방정부와 와이오밍주 사이에는 승강이가 벌어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필리핀-미국전쟁이 절정에 달했던 20세기 초 미군사령관이 비사야섬의 사마르를 ‘폐허’로 만들어버리라고 명령한 사실은 필리핀 역사책에 기록돼 있고, 또 많은 시민들이 알고 있다. 그러나 사마르 발랑기가읍에서 벌어졌던 필리핀 혁명군의 혈투와 당시 미국의 전리품으로 사라져버린 종 이야기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사마르를 잿더미로 만들어라”
1901년 9월28일, 신부와 마을지도자가 암암리에 조직한 450명의 무장혁명군은 발랑기가 교회의 종소리를 신호삼아 미군부대를 공격했다. 기습당한 미군은 세명의 장교와 70명의 병사를 잃었고 살아남은 28명은 혼이 빠져라 도주함으로써 필리핀 독립투쟁사에 빛나는 기록을 진상했다. 혁명군의 기습공격을 당한 비사야의 미군사령관 휴즈는 격노했고 즉각 휘하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모조리 쓸어 사마르를 앞으로 10년 동안 폐허로 만들어버려라.” 미군은 이 보복공격에서 ‘자유의 소리’를 울렸던 발랑기가교회 종들을 저주하며 훔쳐갔다. 그뒤 필리핀과 미국 연방정부 사이에는 이 종들을 놓고 지난한 협상이 벌어졌다. 결국 1997년 필리핀과 와이오밍주가 각각 하나씩의 종을 소유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러나 돌처럼 단단한 와이오밍주 의회와 재향군인회는 이 합의를 인정하지 않은 채, 아직도 필리핀의 ‘독립정신’을 감금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인들은 이 필리핀의 종을 반환하지 않는가.
미국인 스스로가 야만적인 침략전쟁을 기억하면서 향수에 젖고자 하는 것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필리핀 시민들은 몹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분노하고 있다는 말이다. 종뿐만 아니다. 수많은 필리핀의 문화재들은 아직도 식민지를 그리워하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에 볼모로 잡혀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필리핀 자신임을 숨길 수 없다. 문화재의 반환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 가치를 주장해본 적도 없다. 발랑기가의 종만 해도 사마르의 뜻있는 시민이 개인적으로 불을 붙이고자 애썼을 뿐, 캠페인이 벌어졌을 때 사회가 폭약을 제공한 적이 없었고 그 불길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추측건대 과연 어디서부터 유물 반환작업을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한 ‘느낌’을 지닌 이들이 우리 필리핀 시민 가운데 없다는 점이다. 어디부터 출발해서, 어떤 유물들을 대상으로, 또 어떻게 반환을 요구할 것인지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아직까지 필리핀의 많은 시민들은 자신들의 역사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선사시대는 물론이고 스페인에 지배당했던 600년도, 일본이 침략한 그 몇년간도, 또 40년 웃돌았던 미국의 식민통치기간에 대한 역사도 모두 어둠에 가려 있을 뿐이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유물 반환을 요구하겠는가. 국가나 국민의 정체성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데 누구에게 역사 반환을 요구하겠는가.
정신의 빈곤이 낳은 필리핀의 가난
이러니 역대 정부가 모두 역사에 두손을 들었고, 그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필리핀 역사책은 결핍상태고 그럴듯한 국립박물관 하나 지니지 못한 게 솔직한 현실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 타이, 말레이시아가 자신들의 고대문명 발달사를 가지런히 장식해놓고 외국인들에게 자랑하고 있는 동안 필리핀 시민들은 질투의 이빨을 갈고 있을 뿐이다. 이런 가운데 필리핀의 유물들은 썩어 문드러졌고 값나가는 유물들은 자본을 따라 모조리 해외로 팔려 나가고 말았다. 지금까지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탓이다.
정부도 교육기관도 시민단체도 개인도 진정으로 누가 필리핀 사람이며, 어떻게 파괴된 역사와 문화를 복구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말하는 이가 없다. 누구는 이것도 가난이 문제란다. “먹고살기도 어려운 판에 문화보존이니 역사복구 같은 사치스런 말을 하다니….”
내가 바라보는 필리핀의 가난은 정신의 빈곤에서부터 출발했다.
마리테스 시손(Marites Sison) 전 <마닐라타임스> 기자·칼럼니스트

1901년 9월28일, 신부와 마을지도자가 암암리에 조직한 450명의 무장혁명군은 발랑기가 교회의 종소리를 신호삼아 미군부대를 공격했다. 기습당한 미군은 세명의 장교와 70명의 병사를 잃었고 살아남은 28명은 혼이 빠져라 도주함으로써 필리핀 독립투쟁사에 빛나는 기록을 진상했다. 혁명군의 기습공격을 당한 비사야의 미군사령관 휴즈는 격노했고 즉각 휘하의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모조리 쓸어 사마르를 앞으로 10년 동안 폐허로 만들어버려라.” 미군은 이 보복공격에서 ‘자유의 소리’를 울렸던 발랑기가교회 종들을 저주하며 훔쳐갔다. 그뒤 필리핀과 미국 연방정부 사이에는 이 종들을 놓고 지난한 협상이 벌어졌다. 결국 1997년 필리핀과 와이오밍주가 각각 하나씩의 종을 소유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러나 돌처럼 단단한 와이오밍주 의회와 재향군인회는 이 합의를 인정하지 않은 채, 아직도 필리핀의 ‘독립정신’을 감금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미국인들은 이 필리핀의 종을 반환하지 않는가.

사진/ 1901년 발랑기가교회의 종소리를 신호삼아 미군을 공격하는 필리핀 독립군들. 필리핀 독립투쟁사의 빛나는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