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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래디컬 신노동당?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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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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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파동에도 지지율 앞서는 영국 노동당… 개혁보다는 친기업정책에 열올린다는 비판도

사진/ 영국 노동당 선거운동 포스터. 보수당이 집권하면 다시 경제난이 온다는 내용으로 보수당의 지도부가 ‘영화’를 홍보하는 것처럼 만들었다.
광우병에 이어 영국 전역을 강타한 구제역 사태로 축산업은 물론이고 관광산업이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와중에 영국 총선이 오는 6월7일 치러진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집권당의 재집권에 의문을 제기할 만한데, 많은 영국인들은 노동당의 재집권이 유력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언론들이 수시로 내고 있는 각 정당의 인기도 조사는 일관되게 집권 노동당이 제1야당인 보수당을 평균 20여% 차이로, 많게는 25%까지 차이를 보이며 리드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구제역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3, 4월에도 이러한 차이는 줄어들지 않았다. 왜일까?

경제호황 지속이 지지율 상승 불러

사진/ 영국 노동당의 선거운동 포스터, 보수당 집권시 은행이자율이 15%나 됐었다는 내용을 영화 포스터처럼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경제상황이 좋다는 이유를 든다. 즉, 아무리 정치적인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경기가 좋으면 사람들은 만족한다는 것이다. 아직 완전히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의외로 광우병과 구제역 파동이 경기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는 농업이 실제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해져버렸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야당인 보수당의 인기가 바닥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보수당에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총리를 능가할 만큼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농촌 출신의 런던시민 크리스 히치콕(30)은 “보수당을 이끌고 있는 윌리엄 헤이그는 40대 초반의 젊은 정치인이지만 젊은 층의 인기를 전혀 모아내지 못하고 있다”며 노동당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보수당이 너무 형편없어서 노동당이 상대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치경제학을 전공한다는 앤드루 아에리아(40)는 “노동당 집권 이전 대처 총리에서 메이저 총리로 이어지는 18년간의 보수당 집권 동안에 영국사회가 정치, 경제적으로 오른쪽으로 너무 가버린 데 대한 반발작용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고 해석한다.

TV 선거광고를 보자. 우선 보수당은 아무런 멘트도 없이 긴장감 도는 음악을 배경으로 현 정부가 범죄인을 무분별하게 방면해 치안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며 출소자들이 재범을 일으킨다는 스토리와 함께 기름값이 너무 올라 나들이를 하지 못하는 연금생활자들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보수당에 힘을 실어달라는 문구로 마감한다. 노동당의 광고는 통계수치를 중심으로, 물가가 목표치인 2.5%를 밑도는 2% 내외로 지난 수십년 만에 최저로 안정돼 있고 실업률 역시 사상 최저라며 지속적인 경제호황을 중점적으로 부각시킨다.

1979년 이래로 최근 노동당 정부하에서 빈부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졌다는 통계가 발표되자 야당의원들은 수입에 대한 직접세를 내린 대신 간접세가 증가돼 나타난 당연한 현상이라며 공격했다. 이에 대해 집권당의 대변인은 이 수치의 조사기간에 의문을 제기하며 최저임금제도의 도입으로 빈민층의 복지가 뚜렷이 좋아졌다고 응수했다. 인기도 조사에서 크게 뒤지는 보수당의 헤이그 당수는 지난 99년 유럽연합선거 때도 노동당이 30%나 앞서는 것으로 나왔지만 결과는 보수당의 승리했다는 점과 최근의 지방보궐선거에서도 보수당이 앞섰다는 점 등을 들며 사람들이 노동당의 재집권을 바란다는 증거가 어디 있냐고 인기도 조사를 애써 외면한다. 지방선거에서 이기면 총선에서도 승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한편 매번 수도 런던에서 발표하는 관례를 깨고 지방도시인 버밍엄에서 향후 10년을 목표로 하는 선거공약을 발표한 현 총리 토니 블레어의 목소리는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에 힘입은 듯 자신감에 차 있다. 세금 대폭감면을 내세운 보수당의 선거공약이 허구적인 것이라고 일축하며 한술 더 떠 차차기 집권을 염두에 둔 정책을 제시한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발생한 해프닝을 두고 언론에서는 노동당의 자신감이 지나치다고 꼬집는다. 북웨일스로 선거지원을 나간 부총리 존 프레스콧이 노동당의 농업정책에 항의하며 계란을 던진 청년에게 주먹을 날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심드렁하게 선거정치를 지켜보다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며 연일 이야깃거리로 삼고 있다.

영국의 ‘큰형님’은 미국?

사진/ 영국 중북부 뉴캐슬의 한 작은마을 노동당 사무소에 걸려 있는 선거홍보 플래카드.
한편, 노동당이 그동안 너무 ‘우향후’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영국 노동당은 100여년 전인 1900년에 노동조합의 권익을 보호하고 노동계급의 정치적 목소리를 담아낸다는 목적으로 출발했다. 1차세계대전 직후 제1야당으로 부상했지만 번번이 정권획득에 실패하여 지난 100년 동안 간헐적으로 22년밖에 집권하지 못한 이 만년 야당은 보수당이 18년 장기집권으로 기력을 다하고 대중의 인기가 땅에 떨어진 97년에 총선에서 승리했다. 옥스퍼드대 학생회장 출신인 40대 초반의 젊은 기수 토니 블레어를 당의 전면에 내세워 세대교체를 이루면서 좌파에서 중도좌파로 정치적 컬러를 바꾼 전략이 성공한 것이다. 또한 50여년 만에 최대 의석을 확보하며 집권에 성공한 배경에는 노동과 자본의 중간지점에 서는 이른바 ‘제3의 길’ 노선에 대한 대중적인 인기도 작용했다. 이후 북아일랜드 평화협상,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의 분권화, 최저임금제도의 도입 등 나름의 정치적 성과를 내고 있지만 영국이 ‘제3의 길’을 걷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국에 조금만 있다보면 느껴지는 것은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 외교,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영국은 미국을 큰형님으로 모시는 ‘부하’ 같다는 점이다. 미국의 천박한 할리우드와 햄버거문화를 경원시하는 유럽문화의 자존심을 영국에서는 별로 느끼기 어렵다. 지난해 헤이그에서 결렬된 유엔 기후회의에서도 영국대표는 미국의 입장을 두둔하는 발언으로 유럽연합을 대표한 프랑스 환경장관 부아네로부터 두고두고 욕을 얻어먹었다. 부시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느닷없이 이라크를 한방 먹일 때도 영국은 빠지지 않았고, 적지 않은 수의 노동당 의원들이 반대하고 있는 미사일방어(MD)체제에도 영국 정부는 앞장서서 지지를 표명했다. 노동조합들은 노동당 집권으로 이전에 비해 나은 대접을 받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돌아오는 성과는 별로 없다고 느낀다.

반면 노동당은 기업을 주요파트너로 만들려고 부산하게 움직여왔다. 토니 블레어는 그동안 기업 세금을 감면해주는 등 ‘토리당(보수당의 애칭)만이 기업가의 편에 선 당’이라는 대중의 인식을 바꾸려는 전략을 꾸준히 실천해왔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로 전통적으로 보수당을 지지해온 많은 기업인들이 노동당 지지로 돌아서 대규모 정치헌금을 하고 있다. 총선시기 발표 직후 공개된, 재정장관(경제부 총리급으로 챈슬러라 부름) 골든 브라운이 주도해 유력기업가들이 서명했다며 발표한 노동당 기업후원서약서에는 “97년 이후 노동당이 안정적 경제성장을 성공적으로 주도해왔고 영국민으로 하여금 기업에 대한 새로운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었다”고 적고 있다. 다만 환경친화원료 사용으로 유명한 화장품회사 보디숍의 설립자이자 여성기업가인 아니타 회장이 97년 총선 때는 노동당을 지지했으나 이후 무역과 환경정책에 실망하여 지지를 철회한 예가 눈에 띌 뿐이다. 이에 대해 보수당은 “노동당은 결코 기업가의 당이 될 수 없다”며 중소기업들이 새 정부 들어 보이지 않는 세금과 통제에 고통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지지세력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유로단일통화권 진입은 어떻게 되나

사진/ 런던에서 가장 붐비는 곳 중 하나인 캠든지역의 노동당 국회의원사무소 모습. 선거운동기간이지만 홍보물로 특별히 치장되지는 않았다.
아직 몇몇 기업들이 노동당 지지를 망설이는 것은 노동당의 노동정책 때문이 아니라 영국이 유로단일통화권으로 편입될 경우 입게 될 손실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노동당은 유럽연합을 지지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실제 이번 영국 총선의 주요한 쟁점 중 하나가 영국의 유로단일통화권 진입여부이다. 영국인 60%가 반대를 표명하는 가운데 노동당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2년 내에 경제상황이 좋은 시기를 택하여 국민투표를 통해 가입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물론 보수당과 그외 많은 야당들은 유로 가입에 반대한다. 유럽단일화의 고삐를 쥐고 있는 영국의 유로통화 가입여부는 영국 노동당의 총선 승리와 향후 경제상황이 계속 좋아야 한다는 두 가지 정치경제적 조건에 달려 있는 셈이다.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이 사실은 ‘자본의 길’이 아니냐는 비판에, 토니 블레어는 이번 총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하면 중도노선을 분명히 하면서 좀더 개혁적인 정치를 펼치겠다고 답했다. 그가 말하는 ‘래디컬 신노동당’이 얼마나 래디컬한 길을 걸을지 지켜볼 일이다.

런던=글·사진 최예용 통신원 choiyeyong@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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