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할퀴어놓은 중동 아랍유적… 팔레스타인 고고학자들의 발굴작업조차 금지돼
1948년 여름, 베들레헴에서 조그마한 신발 수선가게를 운영하던 한나 칸도라는 사나이에게 타마레 유목민이 양피지로 만든 가죽신발을 팔겠다고 찾아왔다. 팔레스타인 기독교인인 칸도는 즉각 그 양피지에 쓰인 글들이 심상찮은 것임을 알아채고, 양치기에게 그게 어디서 났는지를 알려주면 신발 두 켤레를 사겠다고 말했다. “동굴로 들어간 양을 몰아내려고 돌멩이를 던졌더니 뭔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궁금해서 직접 동굴로 들어가 봤더니, 큰 도자기가 깨져 있었고 그 속에서 이 양피지가 나왔다.”
양피지로 최고갑부가 된 신발수선공
양치기의 말을 들은 수선공 칸도는, 그 유명한 이사이아 양피지를 포함한 4장의 양피지를 예루살렘의 시리아인 대주교 안타나쉬스 사무엘에게 건네주고 대신 250달러를 받았다. 대주교는 그날로 길을 재촉해 런던 브리티시박물관의 전문가를 찾아갔고, 이게 1948년부터 67년 사이에 발굴되면서 단일품으로는 20세기 최대의 고고학 발견으로 꼽는 사해의 양피지책, 그 출발점이 되었다.
사해의 양피지에는 기원전 250년경부터 존재해온 가장 오래된 성경구절들이 적혀 있었다. 이 신발수선공은 그날부터 고대 유물들을 발굴해서 세상의 최고입찰자들을 찾아가는 ‘씩씩한’ 사업가로 변신했고 또 최고의 갑부가 되었다. 이런 유명세 탓으로, 1967년 베들레헴을 침략한 이스라엘군이 그의 집과 보물창고를 우선 공격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당시 탐욕스러운 고고학자였던 이스라엘의 국방장관 모세 다얀은 칸도를 수사하면서 사해의 양피지들이 새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그가 지닌 유물들을 모조리 압수해갔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박물관을 접수했고 그곳의 유물들을 모두 록펠러 박물관으로 옮겨가는 만행도 저질렀다. 그로부터 팔레스타인 고고학자들의 팔레스타인 유적지 발굴은 금지당했고, 동예루살렘을 비롯한 모든 점령지역의 유적 발굴을 이스라엘이 독점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인근의 팔레스타인유적지를 발굴하면서 새롭게 드러나는 아랍계 역사는 다시 파묻어버리고, 대신 역사적 가치가 희박한 유대의 물건들은 모조리 값진 발견으로 침소봉대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점령지역 내의 원주민 유물과 유적을 훼손하거나 반출할 수 없다는 국제법을 유린한 이스라엘이 유네스코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아온 지점이다.
팔레스타인자치기구가 창설되기 이전인 1990년대까지는 팔레스타인 고고학자들의 발굴과 연구 자체가 인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하는 알쿠드스대학 이슬람고고학과 마르완 아부 카라프 박사는 현재 팔레스타인 고고학과의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가장 중요한 목표는 도굴꾼들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부터 팔레스타인 유물들의 출혈을 막는 일이다.” 아부 카라프 박사는 현실적으로 유출 방지에 1차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며 유물반환문제는 2차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불법 반출되었거나 강탈된 유물들의 반환 요구는 팔레스타인의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진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현재 조사작업도 부실한데다 유물들이 반환되어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가장 심각했던 시기는 오스만제국 때
이쯤에서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팔레스타인과 아랍 유물의 겁탈이 가장 심각했던 시기는 현대 이스라엘의 침략보다는 오히려 오스만제국 최후의 날이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다.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중동은 수세기 동안 서양 제국주의자들에게 극단적으로 도굴을 당해왔는데, 특히 400년 동안 중동을 지배했던 터키가 물러나던 시기 유럽의 자본가들이 몰려들어 모든 유물들을 싹쓸이해갔다.
당시 독일, 프랑스, 영국과 같은 나라들은 예루살렘의 영사관 내에 중동 유물들을 구입하는 특수부서를 둘 정도였고, 터키의 지배자들은 공식적으로 이들에게 유물을 팔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 모든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자행된 제국주의자들의 도굴과 불법거래는 특히, 고고학적 유적과 유물이 풍부한 요르단을 크게 할퀴어놓았다. 요르단의 유적들은 지금도 피를 흘리고 있다. 공무원들의 무관심한 태도와 ‘급속현금’을 꿈꾸는 시민들의 환상 속에서. 요르단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고대 유적지는 현재 2만여개지만 실제로는 10만개가 넘는 지역들이 아직 조사도 등록도 되지 않은 상태라고 요르단 유물국의 파이살 알쿠다 부총장은 밝혔다. “요르단 어디든 땅만 파면 유물들이 쏟아져나온다.” 이러니 도굴꾼들한테 황금의 땅으로 불릴 수밖에.
1976년 요르단 당국이 유물 반출을 법으로 금지시켰으나 세월을 타고 놀았던 노련한 꾼들에게는 오히려 암시장의 주가만 높여놓았을 뿐 아무런 실효도 거두지 못한 상태다. 국제적으로도 요르단은 중동 불법유물거래의 중계지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남부 이라크에서 도굴된 유물들이 모두 요르단을 중계지로 삼아 유럽으로 팔려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요르단 도굴품의 30%는 이라크로부터 온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말할 정도다. 게다가 도굴꾼들이나 불법거래자들에게 사형을 내리는 이집트나 시리아의 장물아비들은 안전하고 교통좋은 요르단을 낙원처럼 여겨왔다. 지난해 12월 이라크의 카락고 대박물관을 튼 일당들이 요르단에서 체포당해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는데, 사실은 그만한 일은 그저 매일 있는 사건에 지나지 않을 정도다.
2000년 한해 요르단 당국이 도굴꾼들로부터 압수해서 이라크에 넘겨준 유물만 해도 1800건이나 된다. 10월에는 이라크 조각품 하나를 22만달러에 팔려던 상인을 체포한 적도 있고, 그 한달 전에는 2500년 묵은 미라를 팔려는 조직들을 체포하기도 했다.
핵심을 말하자면, 요르단의 이 도굴이나 국제적인 불법거래가 전문꾼들의 일만이 아니라는 데 사태의 심각함이 숨어 있다. “관광객과 외교관들을 포함해 도둑들도 가지가지다.” 고대건축연구가 암마르 캄마쉬는 분개했다. “요르단의 고대 동전이나 도자기들이 관광객들의 바지춤에 숨겨져 나간다면, 그보다 값진 보물들은 통관이 자유로운 외교루트를 통해 유럽으로 팔려나가고 있다.” 게다가 “도시 변두리의 요르단인 67%가 직·간접적으로 도굴과 불법판매에 관여한 적이 있다”는 암마르의 조사 발표는 가히 충격적이라 할 만하다. 사태가 이 정도니 “고대유적 발굴지의 경비원들이나 공공장비들이 도굴에 동원되고 있다”는 유의 조사보고서는 별로 대수롭지도 않게 보인다. 더구나 유물들이 런던과 유럽으로 팔려나가고 있다는 사실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 불법거래의 규모는 파악된 적도 없고 파악해보겠다고 노력하는 이도 없는 실정이다.
잘만 건지면 수백만달러를 버는데…
“도굴범과 불법 유물거래자들의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요르단정부가 지난해 공식적으로 밝힌 이 내용도 별로 설득력이 없다. 도굴하다 잡혀도 3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몇백달러 벌금만 물면 빠져나 올 수 있는 요르단의 ‘아마츄어’ 법이 이미 도굴꾼들의 조롱거리가 되어 온 상태에서, 정부의 발표는 다른 해와 비교해서 도굴꾼들을 못 잡았거나 덜 잡았다는 정도로만 들린다.
잘만 건지면 한 건에도 수백만달러가 돌아가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법의 대응력을 기대하겠는가? 몇년형, 몇백달러, 가소로운 일 아니겠는가? 이렇게 요르단의 보물들은 오늘밤에도 유럽 자본가들의 손을 거쳐 호사가들의 침실을 장식해 나가고 있다.
요르단에 해가 지는 숫자만큼 도굴의 숫자도 늘어가고 있다.
다오우드 쿠탑(Daoud Kuttab)/ 전 <알쿠드스신문> 기자·칼럼니스트


사진/ 기원전 250년경의 성경구절이 적여있는 사해의 양피지.(SYGMA)

사진/ 양피지를 해독하는 모습.(SYGMA)

사진/ 이스라엘의 교회건축 유적. 이스라엘은 점령지역 내의 모든 유물 발굴을 독점하고 있다.(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