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빈곤, 소수지배층의 호화생활… 경제제재는 부의 독점만을 부른다
걸프전 종전 10년, 경제제재 11년. ‘이라크인들의 생존권 수호’를 내세운 미국과 영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경제제재완화안을 제출했다. 이 제재완화안은 유엔이 정한 군사관련 품목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물품 수입을 허용하고 출발지에서 검사를 받는 한 이라크에 대한 상업 및 화물비행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대해 후세인 정권은 완전한 해제가 아니라면 기만일 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1년 동안 경제제재의 사슬에 묶여 있던 이라크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먼지만 쌓여가는 상점들
이라크 국경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다양한 표정의 후세인 대통령 사진과 초상화, 동상들은 이곳이 통제된 사회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바그다드에는 뉴스(news)가 없다. 다만 가공된 낡은 소식들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파될 뿐이다. 국민들의 알 권리보다 정권 안보가 더 중요시된다. 경제제재완화안에 대한 뉴스가 잠깐 등장했다가 이내 언론 통제로 인해 삭제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유로운 취재는 원래부터 허용되지 않는다. 모든 공식적인 취재는 사전에 바그다드의 프레스센터를 통해 신청과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때부터 공보부 직원인 보안요원을 반드시 대동해야 한다. 원천적으로 취재가 통제되고 가공되는 것이다. 물론 반미의식이 고무되는 현장은 그래도 자유로운 ‘단골 취재거리’로 제공된다. 예를 들면 미국의 민간인 폭격현장이라든지 고통받는 어린이, 병원 등의 취재는 그래도 자유로운 편이다.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정부와 권력층, 사회의 치부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이런 이유로 공식적인 취재 경로로 이라크인들의 솔직한 민심을 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까지 한국언론의 접근은 여러 면에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 이라크 관련 뉴스들은 천편일률적인 것이었다.
굶주림의 도시, 경제제재로 인한 고통과 아픔이 가득 배어 있는 거리….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바그다드를 만났다. 시내 한복판을 굽이굽이 흘러가는 티그리스강과 드넓은 평지 위에 펼쳐지는 도시 바그다드. 어찌된 일인지 당연히 거리에 넘쳐나야 할 헐벗은 사람들과 구걸하는 아이들은 잘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곳곳에서 다시 생동감이 넘쳐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선 날품을 팔기 위해 줄지어 있는 청·장년들의 모습들과 상가 주변지역 지게꾼과 수레꾼들,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분주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그다드 중앙역 주변의 종합터미널 무잠마 안나스르는 깔끔하게 단장되었고, 건너편 옛 터미널에는 확장공사를 위한 바쁜 삽질이 이어진다. 거리에 넘쳐나는 차량과 사람들 속엔 오랜 경제제재 때문인지 20년이 넘은 고물 자동차들이 간혹 보이기도 한다. 또한 겉만 화려한 중국제 2층버스 FAW와 한국의 기아 베스타와 현대 그레이스 상표를 달고 있는 미니버스들, 미제 GMC 차량들이 뒤엉켜 있었다.
이라크는 1991년 걸프전 종전 이후 유엔의 경제제재조치 때문에 경제가 바닥에 떨어지는 고통을 겪었고 사회·문화적으로도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가혹한 경제제재조치 여파로 이라크의 가정과 사회적 기반은 송두리째 흔들리며 무너져가고 있다. 석유 외에는 모두 수입하다시피 했던 이라크에 유엔의 무역금지조처는 생명줄을 끊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경제제재조처가 내려진 뒤 생활수준이 크게 떨어지고 통신 등의 주요 사회기반이 파괴되는 등 이라크인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낡은 설비에 공급이 달리는 전기와 수도는 하루에 서너 시간씩 끊기곤 한다. 통신사정은 더욱 열악하여 전화 한통 하려면 극도의 인내심이 필요할 정도다. 병원이나 도로시설 투자도 끊긴 상태이다. 한주 동안 머물렀던 특급호텔 알만수르의 초라하고 볼품없는 호텔음식과 시설물은 투숙객의 짜증을 불러일으킨다. 경제제재 전에는 다양하고 풍성한 외제상품들이 즐비했던 정부 소유의 백화점들도 매장이 텅 빈 채로 개점 휴업중이거나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상가건물은 입주자가 없어서 먼지가 쌓여가고, 관광객과 내국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칸엘칼릴리 주변의 금은방 거리나 카펫 시장들에는 문을 닫은 지 오래된 상점들로 가득했다. “알라 덕분에 살아갑니다. 그런대로 살 만해요.” 포목점을 하고 있는 아부 왈리드는 연신 파리를 날리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최근 먹는 문제는 해결되었으나…
질병과 영양부족으로 여전히 죽어가는 아이들이 있다. 이라크 보건부의 통계에 따른다면 지금도 수많은 어린이가 경제제재가 야기한 질병과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다. 5살 이하 영·유아사망률은 1천명당 131명으로 10년 전 56명의 배가 넘고, 2.5kg 이하의 저체중 출산율이 제재 전 4.5%에서 지난해는 24.32%로 올랐다. 외화벌이를 위해 연일 1만여명 가까운 청·장년들이 요르단국경에 들어서고 있다. 이들은 서민들의 생활수준에 비춰보면 거액인 40만디나르의 여권발급비를 내야 이라크를 떠날 수 있다. 이도 저도 안 되는 이들은 최근 경기가 나아지면서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부녀자들은 날품팔이로, 아이들은 연필 대신 구두통을 메거나 거리로 나가 구걸을 한다. 2만3천여명의 의사, 교수, 고급기술인력 등 전문인력이 해외로 떠나 사회발전의 잠재력이 고갈되었다. 사회기능은 마비돼가고 있다. 범죄율이 그리 높지 않았던 이라크인에서 강도, 절도사건이 증가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10달러만 환전해도 250디나르 지폐 75장이다. 금세 부자가 된 느낌이다. 90년, 이라크 화폐 1디나르는 미화 3.5달러였던 것이 지금은 공식환율로 1달러가 1880이라크디나르. 화폐가치로만 말한다면 5400분의 1 정도로 떨어진 셈이다. 경제제재 전 350달러 정도였던 100디나르 지폐 한장으로 지금은 계란 1개밖에 사지 못한다. 경제제재의 실상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의 생활상을 직접 보면 일반적인 인식과 다른 점도 찾아볼 수 있다. 이라크인들의 임금수준은 일반 기업체 근로자의 월급이 2만5천디나르, 날품팔이 막노동꾼의 하루 일당이 6천디나르이다. 생필품의 가격을 보면 야채와 과일 1kg 기준 100∼300디나르, 고기 1kg에 600디나르 정도, 먹는 샘물 500디나르, 자동차 기름이 리터당 20디나르, 일반 가정의 전기료나 수도세가 월 1천디나르 안팎이다. 물론 대부분의 가정이나 사무실에는 에어컨이 가동중이다. 임금은 적지만 생필품의 가격이 비싸지 않아 그럭저럭 생계는 유지할 만하다. 특히 기름값은 터무니없이 싸다.
“정부의 배급량이 많이 늘었다. 이제 먹는 문제는 해결되었다.” 바그다드 시민 자베르 아르라할은 현재 이라크경제에서 생존의 문제보다 삶의 질의 문제가 떠오르고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취재진이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닌 듯했다. 사실 빈부에 차등없이 정부가 배급해주는 쌀과 밀가루, 식용유와 우유, 파술리에(이라크인들이 즐겨먹는 야채의 하나)와 비누 등의 양은 이전과 달리 넉넉한 모양이다. 공무원들은 직급에 따라 차등은 있지만 자녀교육비나 의료비, 자동차 연료비, 전기세와 수도세 등에 각종 면세혜택이 주어지고 있다.
향락문화는 상류층의 독점물
또한 현행 화폐는 경제제재하에서 만들어진 임시화폐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적지 않은 이라크인들은 제재 전 사용하던 화폐를 잘 보관하고 있다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이라크 국민들의 삶을 짚어본다면 풍성하고 질 좋은 삶을 누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극심한 궁핍에 찌들린다고 말할 수도 없는 모습이다. 유엔이 지난 96년 12월 인도주의 차원에서 식량과 의약품 구입을 위한 제한된 석유수출을 허용한 이후 민생은 점차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빈부격차이다. 1996년 말부터 시행된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 양해각서’(MOU) 이후 화려한 네온사인과 고급 승용차 불빛이 가득한 지역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티그리스강변의 호화 주택이나 신시가지의 세련된 분위기는 경제제재하의 새로운 풍속도를 보여준다. 10% 정도의 기득권을 향유하는 권력층과 상류층은 과연 이들이 경제제재 해제를 바라는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경제제재조치 전 50%를 차지했던 중산층은 10% 정도로 줄고 나머지는 극빈층으로 전락했으나 상류층과 권력층은 호화주택에서 살고 있다. 유엔감시단의 감시망을 유유히 피해 버젓이 고급 승용차와 고가 외제품들이 요르단, 아랍에미리트 등을 통해 반입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간간이 나귀가 끄는 수레가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반면, 벤츠나 BMW 등이 번화가 거리를 헤집고 다니기도 한다. ‘공화국 거리’ 주변의 상가지역은 한국의 동대문, 남대문 시장을 모아놓은 듯했고, 이전에 미치지 못하지만 다시금 활기를 찾아가고 있다. 사둔 거리와 만수르, 라카라다 등의 전자상가에는 LG, 대우, 삼성 등의 한국산 전자제품을 비롯해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대리점들이 늘어가고 있다. 티그리스강변과 아르사트지역에 늘어가는 고급 식당가는 밤 깊은 줄 모르고 불을 밝히고, 찾는 사람들로 거리가 혼잡하다.
“짝 없이 출입을 금지한다. 무대 위에서 남자 혼자 몸을 흔들어대는 것을 금지한다.” 한 특급호텔에 적혀 있는 나이트클럽 안내문이다. 5년 전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지시로 진행중인 이른바 ‘종교개혁’으로 공공장소에서의 음주가 전면 금지됐고 일부 특급호텔 예닐곱곳을 제외한 모든 나이트클럽이 폐쇄됐다. 초·중·고교의 종교교육도 크게 강화됐고, 바그다드 한복판의 국내선 전용공항 자리에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사원 건립공사가 한창이다. “가진 놈들 주변에서는 여전히 성적 놀음이 이뤄지지만 없는 놈들은….” 바그다드 시민 자분은 빈부격차 얘기를 꺼내며 흥분하고 말았다. 그 요란한 종교개혁도 술과 향락문화를 상류층의 독점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후세인의 장남 우다이가 주요 나이트클럽의 실소유주라는 세간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최근 들어 시행되고 있다는 개악된 임대차법은 세입자의 권리를 최우선적으로 보장하던 입장에서 후퇴해 집 주인의 임의로 임대료 인상을 요구하거나 쫓아낼 수 있게 되었다.
부의 독점을 가져온 경제제재?
이라크의 빈부격차문제를 얘기할 때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현재의 ‘석유-식량 교환 프로그램’은 석유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이 식료품이나 의약품 등을 위해서만 사용된다는 보장 아래서 판매를 허용함으로써 이라크 국민을 돕기 위해 제안된 것이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후세인 주변 권력층에 의해 변질돼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들은 지속적으로 터키, 요르단, 이란 등지에 석유를 밀수출해왔다. 이 돈은 유엔의 인도주의 프로그램으로 가는 대신 곧바로 사담과 그의 수하들의 손에 들어가고 있다. <중동경제서베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 석유의 국경밀매는 하루 40만배럴 이상에 달하고 있다. 시리아 송유관을 통해서만 배럴당 15달러의 싼 가격에 하루 20만배럴, 약 300만달러의 석유 밀수출을 하고 있다. 이라크는 이같은 밀수를 통해 연간 10억달러 이상의 금액을 빼돌린다. 경제제재는 오히려 이들의 부의 축적과 권력독점을 제공해주는 호기가 되는 셈이다.
빈곤 속에서도 넘쳐나는 풍요. 이라크 민중의 탄식은 언제 멈춰질 것인가. 미국 주도로 진행중인 이라크 경제제재조치는 현실에 역행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도 실제적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미국이 보호하겠노라고 호언하는 일반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미제(美帝)는 싫지만 미제(美製)가 좋은 것은 사실 아닌가? 미 행정부가 나쁜 놈들이지 미국인을 미워하지는 않는다.” 35살의 가장 아마르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금도 걸프전 당시 유명해져버린 바그다드의 특급호텔 아르라시드 현관 입구에 타일로 새겨진 부시 전 대통령의 얼굴은 세인들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
바그다드=글·사진 김동문 통신원 yahiya@hanimail.com

사진/ 국영 쇼핑센터는 닫혀 있고 좌판을 벌여놓은 노점상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러나 지배층은 외제품의 홍수 속에 빠져 산다고 빈정대는 이들이 많다.

사진/ 불야성을 이루는 바그다드 아르사트 거리의 밤풍경.

사진/ 바그다드상공회의소 앞에서 만난 사람들. 이라크인들은 경제제재란 이름으로 미래를 제재당했다.

사진/ 비공식 루트를 통해 반입돼 들어온 외제상품들과 모조품들.

사진/ 반미구호를 외치는 이라크인들. 사담 후세인을 향한 충성과 반미의 목소리는 여전하지만 서서히 현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