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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뭘 도난당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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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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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자들이 빼돌리고, 왕족들이 팔아먹고… 요즘은 도굴꾼들이 싹쓸이중

인도를 이 세상에서 문화·예술품이 가장 풍부한 ‘진열장’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그 진열품들의 도굴과 약탈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기원 전 2세기의 하랍파문명 유물에서부터 페르시아, 터키, 중앙아시아, 아프가니스탄, 티베트, 중국과 영향을 주고받은 예술품들을 비롯해서 다양한 원주민들의 유산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약탈당해 왔는데도 말이다. 인도문화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을 <한겨레21> 독자들이 놀랄지 모를 일이지만, 그 인도의 유물들은 인도에 없다.

‘코히눌다이아몬드’… 유럽의 박물관으로

더욱 부끄러운 일은 무엇을 도난당했는지도 인도는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믿기 어렵다면, 저명한 역사가이자 공예박물관 책임자인 지오틴드라 자인 박사의 말을 들어보자.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유물들은 거의 도굴당해 인도를 떠난 지 오래다.” 조상, 조각, 그림, 직물, 도자기 같이 운반이 가능한 것들은 모조리 사라졌다는 뜻이다.


이 인도의 문화재들은 중세 몽골의 침략자들이나 근대 영국의 식민통치자들 손에 샅샅이 파헤쳐졌고 강탈당했다. 특히 19세기 영국제국주의자들의 인도 유물 강탈은 ‘합법’을 가장한 조직적인 도둑질이었다. 실제로 영국은 유명한 ‘공작관’과 무굴제국의 ‘코히눌다이아몬드’ 같은 가장 빼어난 예술품들을 약탈해 가서 일부는 자신들의 왕실에, 일부는 유럽 각국의 박물관으로 뿌렸다.

얼마나 많은 유물들이 약탈당했고 그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짐작할 만한 자료도 없다. 이쯤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정보도 자료도 없는 그 침략기의 유물 강탈만 나무랄 일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도의 예술사가들은 1947년 인도가 독립하고 난 뒤에 오히려 더 많은 문화재들이 도굴당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인도의 아그라섬 유적. 성벽에 박혀 있던 다이아몬드는 영국식민지 시절 모두 도난당했다.(이정용 기자)
유물들의 불법 반출 상황을 스와미(K.R.N. Swamy)의 <무굴제국, 마하라자스 그리고 마하트마>라는 책을 통해 어림잡아 볼 수 있는데, 그는 지난 50년 동안 인도의 전 왕족과 왕자가 국외로 밀반출한 유물들만 약 2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기록해 놓았다. 이 어마어마한 액수도 조사된 부분만을 따진 ‘빙산의 일각’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이 유물들은 왕족들이 개인소유라고 속이거나 가격을 ‘똥값’으로 매겨 해외로 빼돌렸다.

이 왕족들이 팔아먹은 유물 가운데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자수품으로 꼽히다가 1948년 몬테카를로로 밀반출된 ‘진주카펫’도 포함되어 있다. 스위스의 비밀은행에 보관되어 있는 이 카펫은 1994년 바레인의 한 경매에서 3천만달러가 매겨졌다고 한다.

도굴과 불법거래 그리고 밀반출의 도도한 전통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는 게 바로 인도역사의 저속함이고 인도 시민들의 부끄러움이다. 오늘도 인도 전역에는 도굴꾼들, 지역뚜쟁이들, 국제장사꾼들이 조직적으로 현장을 돌아다니며 저인망식 유물 싹쓸이를 하고 있는 중이다.

‘기원전 2세기경 붓다 출생지의 테라코타 조각’, ‘북서부지역의 5세기 철제인형’, ‘남부지방의 12세기 동상’, ‘서부지역의 17세기 무굴양식 그림’. 이게 최근 적발된 한 조직이 훔친 유물들이다. 유럽꾼들은 이걸 점당 300만달러에 구입하려다 발목이 잡혔다.

관리들의 무관심과 냉담

문제는 정부다. 인도 정부는 문화재의 보호도 복구에도 모두 실패했다. 인도고고학조사국(ASI)의 1년 예산은 겨우 1천만달러다. 조사와 복구는 뒷전이고 5천명의 전문인력을 먹여살리기도 힘든 액수다. 장난이거나 장식이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다.

관리들의 무관심과 냉담함이 예산부족의 원인이고 부패는 공모자다. 사회적인 압박에 떠밀려 1972년 정부는 ‘골동품과 예술품법’을 제정했지만 가혹한 처벌만 명시했을 뿐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법은 100년 이상된 것들은 종류에 상관없이 무조건 등록하라는데, 이런 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시민들은 별로 없다. 그래서 지금 인도에 필요한 건 시민단체들이 문화운동을 일으켜 정부를 닦달하는 일이다. 더불어 시민과 정부가 함께 문화재 복구와 유물보존사업을 벌여나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문화재를 정부에만 맡겨 두기에는 참으로 위험한 일이고, 문화재를 정부에만 맡겨 두기에는 너무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전 <타임 오브 인도> 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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