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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라크 민간인 학살, 그 빙산의 일각

무차별 총격으로 민간인 17명 숨지게 한 사설경호업체 ‘블랙워터’,
요원 5명 기소되자 거대 로펌 내세워 변호 총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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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05 10:56 수정 : 2009-08-0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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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3월20일 이라크 전쟁은 시작됐다. 미 국방부가 내놓은 공식 통계자료를 보면, 2009년 7월29일 현재까지 6년4개월여 동안 이라크전에 투입돼 목숨을 잃은 미군은 모두 4332명에 이른다. 이 밖에 영국군 179명이 전사했고, 이탈리아(33명)·우크라이나(18명)·폴란드(21명)·불가리아(13명)·스페인(11명) 등이 두 자릿수 전사자를 기록했다. 민간인 사망자 규모는 어떨까? 미국의 침공 이후 이라크 민간인의 인명피해 실상을 추적해온 ‘이라크보디카운트’(IBC)는 지난 7월14일까지 적게는 9만2519명에서 많게는 10만1006명이 각종 유혈사태로 목숨을 잃었다고 전한다. 참혹하달밖에.

2007년 9월 바그다드에서 총격을 가해 무고한 민간인 17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미국 법정에 기소된 사설경호업체 ‘블랙워터’ 요원과 변호인이 연방법원에 출두하고 있다(왼쪽). 당시 총격으로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 사진 왼쪽부터 REUTERS/ CHRIS DETRICK· REUTERS/ ATEF HASSAN

이라크 정부도 격분한 ‘니수르 광장 사건’

그 죽음의 기록 가운데 2007년 9월16일치를 들춰보자. IBC의 자료를 보면, 이날 하루에만 이라크 전역에서 모두 18건의 크고 작은 유혈사건이 터져 60여 명이 숨졌고, 바그다드 외곽에선 사망 시점이 불분명한 총상을 입은 주검 12구가 발견됐다. 2007년 한 해에만 2만4522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하루 평균 67명이 목숨을 잃은 셈이니, 이날의 통계가 도드라질 이유는 없다. 이날 숨진 이들 상당수는 이름조차 공개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이날 낮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번화가인 만수르 지역 니수르 광장에서 벌어진 사건만이 지금껏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고 있다. IBC가 사건번호 ‘k7471’로 분류해놓은 그날의 참상을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 쪽은 사건 당일 작성한 ‘현장 보고서’에서 이렇게 전했다.

“오전 11시53분께 니수르 광장 주변 금융가 쪽에서 차량폭탄이 터졌다. 현장 주변에 있던 미 당국자들은 사설경호업체 ‘블랙워터’ 요원들의 보호 속에 서둘러 안전지대(그린존)로 귀환했다. 블랙워터 쪽은 사건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두 번째 경호팀을 파견했다. 그런데 이들이 사건 현장 부근에서 기습공격을 받았고, 이어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에 업체 쪽에선 안전지대로 귀환한 첫 번째 경호팀에게 즉각 재출동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광장 부근에 도착한 이들은 사건 현장을 빠져나오는 차량 행렬과 뒤엉키면서 도로 한복판에 멈춰서게 됐다. 이어 이라크 군경이 현장으로 달려와 이들과 대치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미군 신속대응팀이 급파돼 이들을 구출하고 상황을 정리했다.”

요약하자면, 첫 번째 경호팀은 교전 상황에 연루된 바 없으며 두 번째 경호팀은 공격에 맞서 방어를 했다는 얘기다. 그런가? 〈BBC방송〉은 그해 10월8일 인터넷판에서 이라크인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전혀 다른 내용을 전했다. “이라크인 목격자들은 블랙워터 경호팀이 니수르 광장 부근에서 차량 흐름을 차단시키려 했으며, 이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차량에 발포를 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일부 목격자들은 블랙워터 경호요원들이 로켓포 공격을 퍼부어 피해 차량이 화염에 휩싸였다고도 주장했다. …이어 경호원들이 주변 지역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퍼부으면서 이를 피해 달아나는 인파로 현장 일대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 언론들도 군 당국자의 말을 따 “무차별 총격이 계속되자 현장에 있던 블랙워터 요원 1명이 동료들에게 총구를 들이대며 ‘사격을 멈추라’고 외쳤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앞서 〈CNN방송〉은 그해 10월2일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라크 경찰 고위 간부의 말을 따 “니수르 광장에 방치된 피해 차량에 남겨진 총격의 흔적으로 미뤄 기총 사격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며 “블랙워터 쪽이 보유하고 있던 헬리콥터를 동원해 기총 사격을 가했다는 목격자의 증언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다시 IBC의 자료로 돌아가보자. ‘k7471’ 사건의 희생자를 IBC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아메드 하이셈 아메드, 20살 남성. 모하심 카딤과 아메드의 어머니인 46살 메하신 무신 카둠. 모하메드 압둘 라자크의 아들 알리와 10살 소년 모하메드 하피즈. 알리 칼릴, 54살 남성. 오사마 파딜 아바스, 40살 남성. 모하메드 후세인의 동생, 성인 남성… 아이와 함께 있던 성인 여성. 그 여성의 아들, 10살 소년. 하삼 압둘레만의 사촌, 성인 남성.”

이날 총격사건으로 숨진 이들은 모두 17명에 이른다. 친미 성향의 누리 알말리키 총리 정부마저 당시 니수르 광장 총격사건에 대해 “천인공노할 만행이자, 의도적인 살육”이라고 격분한 것도 당연했다. 이 사건으로 이라크와 미국의 관계마저 서먹해지면서, 미 국방부는 산하 ‘이라크 재건 특별감사국’을 동원해 현지에 진출한 사설경비 용역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대폭 강화하기에 이르렀다. 한때 1천여 명을 헤아리던 블랙워터 소속 용병들은 이라크 정부가 이 업체의 사업면허를 취소하면서 그해 말 이라크에서 영구 퇴출됐다. 앞서 블랙워터는 2006년 말까지 이라크에서만 줄잡아 10억달러 이상의 각종 경비용역 계약을 따낸 터였다. 이라크는, 블랙워터에 그야말로 ‘노다지’였다.

사건 발생 1년10개월여, 억울한 죽음의 책임을 묻는 작업은 지금껏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미 법무부는 지난해 말에야 사건에 연루된 블랙워터 경호요원 5명에 대한 기소 절차에 들어갔고, 이들에 대한 재판은 아직 기일조차 잡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난해 ‘지(Xe) 서비스’로 이름을 바꾼 블랙워터 쪽은 재판에 앞서 기민한 몸놀림을 보이고 있다. 사건이 미 버지니아주 동부 지방법원에 배당되자마자 피해자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온갖 법적 수단을 동원하고 나선 게다.

“거대 로펌인 ‘마이어 브라운’을 소송대리인으로 세운 블랙워터가 7월20일 (민사소송) 원고인 희생자 가족과 변호인단에게 사건 관련 내용을 일절 외부에 발설하지 못하게 ‘금언령’을 내려줄 것은 요청하는 재정신청을 재판부에 냈다.”

미 시사주간지 <네이션>은 최근 인터넷판에서 이렇게 전했다. ‘마이어 브라운’은 미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미 100대 대기업 가운데 89개 업체와 미 50대 은행 가운데 35곳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막강한 로펌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블랙워터 쪽이 재정신청서에서 “원고와 그 변호인단이 언론과 접촉할 수 없도록 해달라”고 적시했다는 점이다. 사건 관련 언론보도가 “향후 재판 때 배심원단의 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어, 공정한 재판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다. 아울러 블랙워터 쪽은 사건 관련 공식 문서도 기밀로 취급해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국가 안보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네이션>은 “이를테면 미 국무부와 맺은 경비용역 계약서 내용 중 ‘전술기본작전절차’ 등이 공개되면, 사설경비업체의 경호를 받는 외교관과 정부 당국자들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게 업체 쪽의 주장”이라고 전했다.

재판부에 피해자-언론 접촉금지 명령 요청

그런가? 지난해 12월 초 미 법무부가 니수르 광장 사건에 연루된 블랙워터 요원 5명에게 기소를 앞두고 출두명령을 내렸을 때, 이 업체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건 관련 내부 문서를 특정 언론을 통해 교묘히 흘려준 바 있다. 당시 〈AP통신〉 등은 이를 토대로 “니수르 광장 사건이 정당한 방어권 행사였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부 문서를 입수했다”고 떠들썩하게 보도했다. 미 검찰 쪽에서 “잠재적 배심원단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술책”이라고 열을 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재판부는 블랙워터 쪽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일지에 대한 공청회를 8월7일 열 예정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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