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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HIV 감염된 인도 어린이 2년6개월 만에 2천% 증가?

2006년 2253명에서 5만2973명으로… 진단시설 늘면서 감춰졌던 현실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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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8-05 10:25 수정 : 2009-08-0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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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의 원인균인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인도다. 최근 감염률이 떨어지고 있다곤 하지만, 인도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이지리아에 이어 지구촌에서 세 번째로 HIV 감염 인구가 많은 나라다.

지난 1980년대 중반까지 전세계적으로 AIDS 감염인이 2만 명을 넘어섰지만, 인도에선 단 1건의 HIV 감염 사례도 보고되지 않았다. 정말 없었을까? 인도 의학협회는 1986년 1월치 <협회보>에서 “선진국과 달리 인도에는 AIDS 관련 연구시설도, 장비도, 전문인력도 없다”며 “성 문제와 관련한 논의를 터부시하는 문화와 보건 당국의 미미한 역할, 만성적인 빈곤과 영양결핍, 혈액관리 부실 등으로 인해 AIDS가 창궐해도 막을 능력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성인 감염률은 최근 꺾이는 추세

‘세계 AIDS의 날’을 맞은 지난해 12월1일 인도 북서부 구자라트주 최대 도시 아마다바드에서 열린 예방 캠페인에 참석한 어린이들이 ‘감염인을 사랑으로 보살피자’고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REUTERS/ AMIT DAVE

기우가 아니었다. 그해 말, 남동부 타밀나두의 주도이자 무역 중심지인 첸나이(마드라스)에서 사상 첫 HIV 양성반응 사례가 나타났다. 외국인을 상대로 한 성매매 여성들이 집단으로 HIV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된 게다. 인도 정부는 그제야 전국 단위의 AIDS 통제 프로그램을 가동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1987년 말까지 인도 정부는 모두 5만2천여 명을 대상으로 검사를 벌였고, 이 가운데 135명이 HIV 양성반응을 보였다. 14명은 이미 뚜렷한 AIDS 증세를 보이고 있던 터다.

1990년대 들어서도 HIV 감염률은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급기야 2000년 들어 HIV 감염 인구가 100만 명을 넘어섰다. 최초 감염인이 보고된 지 불과 14년여 만의 일이다. 지난 2002년 미 중앙정보국(CIA)이 정세 판단 보고서에서 “2010년까지 인도에서 HIV 감염 인구는 2천만 명에서 2500만 명에 이를 것”이란 끔찍한 전망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최악의 비관론은 현실화하지 않았다.

2002년 전체 인구 대비 0.45%에 이르렀던 HIV 감염인 비율은 2007년 말 현재 0.34%까지 떨어진 상태다. 타밀나두와 카르나타카, 마하라슈트라 등 HIV 감염자가 많았던 남부 일대 지역 상당수에서 감염률이 떨어지고 있다고 인도 당국은 전했다. 2006년 인도의 HIV 감염 인구가 무려 560만 명으로 세계 최대 규모란 추정치를 내놨던 유엔 에이즈 전담기구(UNAIDS)도 이듬해 통계 수치를 수정했다. 2007년 인도 정부가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지원을 받아 전국 단위 조사를 벌여 “HIV 감염 인구는 200만~310만 명 규모”라고 밝힌 것을 받아들인 게다. UNAIDS는 <2008년 국가별 보고서>에서도 인도의 HIV 감염 인구를 약 240만 명(전체 인구의 약 0.3%)으로 집계한 바 있다.


상황은 나아지고 있는 건가? 인도 현지 보건·의료 활동가들은 정부의 장밋빛 발표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가로저어왔다. “알려지지 않은 감염인이 여전히 많고, 도움을 호소하는 신규 감염인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게다. 에이즈 예방과 감염인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는 나즈재단의 안잘리 고팔란 활동가는 외신과 인터뷰에서 “에이즈 문제와 관련해 (인도 정부는) 그저 모래 속에 머리를 박고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 하고 있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정부가 모래 속에 머리 박고 있다”

“인도에서 HIV에 감염된 어린이가 천문학적 수로 늘고 있다.” 인터넷 매체 <원월드>는 7월30일 이렇게 전했다. 지난 2006년 11월 조사에서 2253명에 불과했던 HIV 감염 어린이가 올 5월 조사에선 무려 5만2973명으로 폭증했다는 게다. 30개월 만에 HIV에 감염된 어린이가 무려 2천%나 늘었다는 얘기다. 이유가 뭘까? <원월드>는 “HIV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진단시설이 늘어나면서 그동안 검사를 받지 않았던 어린이들의 감염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 인도 보건 당국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HIV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통합상담검사센터’(ICTC)가 최근 3년여 새 1476개소에서 5155개소로 대폭 늘었단다. UNAIDS는 지난해 국가별 보고서에서 인도의 ‘14살 이하 어린이 HIV 감염 인구’ 항목에 “자료가 없다”고 적어놓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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