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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5월이여, 아시아의 십자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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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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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광주에서 98년의 자카르타까지, 왜 대표적인 시민항쟁은 모두 5월인가

한국인들에게는 ‘5월’이라는 단어가 주는 아주 특별한 어감이 있다. 마찬가지로 아시아 시민사회에서도 이 5월은 자주 심상찮은 뜻으로 쓰인다. 아시아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5월이라는 말은 대개 계절이라는 의미보다 사회학적 용어로 흔히 통용되고 있다. 주로 민주화투쟁이니 노동운동이니 혁명과 같은 역동적인 뜻으로. 이건 바꾸어 말하면, 5월이 한국에만 있는 특별한 의미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회학적 용어처럼 통용되는 ‘5월’

1980년 5월이 광주의 것이라면, 1984년 5월은 필리핀의 몫으로, 1990년 5월은 랑군의 몫으로, 1992년 5월은 방콕의 몫으로 그리고 1998년 5월은 자카르타의 몫인 것처럼.


비록 시간과 공간이 달랐지만, 이 아시아의 5월은 모두 같은 심장과 같은 얼굴을 지닌 탓으로 아시아 시민들 사이에는 자연스레 하나의 5월로 불리기 시작했다. 지난날 식민통치의 경험과 군사독재정권의 출현이라는 공통적인 아시아적 정치현실 속에서 경제성장에 볼모로 잡혔던 시민들이 스스로 주인임을 선언한 것이 아시아의 5월이었다면, 그 주인들이 고용한 적도 없는 군사독재자들의 총부리 앞에 죽임을 당했던 것이 또 아시아의 5월이었다.

아시아의 5월에는 피를 먹고 핀 꽃들이 여기저기 만발했고, 그 5월의 꽃들이 아시아 시민들의 품속에서 소중하게 자라나기까지는 ‘광주’의 모진 시련이 길잡이 노릇을 했음을 아시아의 시민사회는 부정하지 않는다. 5월은 그렇게 항쟁을 명령했고, 아시아의 민주화운동을 주도해온 한국, 필리핀, 버마, 타이, 인도네시아는 모두 그 5월을 기꺼이 혁명의 계절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뜨거웠던 5월 아시아의 함성은 이제 시민항쟁사의 한 도도한 장으로 넘어갔다. 주인을 능욕했던 5월의 학살자이자 저격수, 전두환도 마르코스도 수하르토도 수친다도 모두 추악한 군인독재자로 기록되면서.

이제 다시 5월이 찾아왔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은 아시아의 5월은 저마다 새로운 5월을 재촉하고 있는 모양이다. 광주가 끝났다고 믿는 이들이 아무도 없듯이, 필리핀은 지난 1월 부패한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피플파워2’의 힘으로 몰아낸 뒤 빈혈증세를 보이고,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축출 이후에도 계속되는 정치적 혼란과 기득권층의 반역으로 심장마비 상태다. 타이는 정치의 외형적 민주화와 달리 봉건적인 사회문화가 말기 암처럼 번져 있으며, 버마는 10년이 넘도록 시민들을 가둬버려 사회 전체가 질식상태에 빠져 있는 꼴이다보니, 그 5월은 다시 또 5월을 부르고 있다.

그런가 하면, 5월을 지녀 보지 못한 아시아사회는 또 나름대로 5월을 열망하고 있다. “지쳤다. 바뀌어야 할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 말레이시아 건축가 아흐메드의 말이다. “부끄럽다. 변혁의 기운이 없는 허무한 사회에서 산다는 것이….” 일본 기자 요시노리의 말이다. “동남아시아처럼 전면적인 민주화투쟁이 절실한 상태다.” 파키스탄 공무원 자히드의 말처럼 아시아는 모두 5월에 대한 동경을 숨기지 않았다. 이게 바로 2001년 아시아 5월의 자화상이다.

‘5월’을 기다리는 나라들

이번주 아시아 네트워크는 5월을 맞아, 아시아의 민중항쟁과 민주화운동은 어디쯤 와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광주에 외롭게 떠넘겨놓은 5월의 숙제를 다시 끄집어내고자 한다. “또 광주인가?” 아시아 네트워크의 5월을 진부한 화두라 나무라는 이들도 있겠지만, 광주를 보고 5월을 꿈꾸었고 광주를 보면서 5월을 풀어나가는 아시아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담고 싶었다.

끝으로 아시아 네트워크는 이번 기획을 통해 ‘5월학’을 뜻있는 독자들의 몫으로 넘기면서, 아시아 연대의 출발점을 5월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왜, 아시아의 대표적인 시민항쟁이 모두 5월이었던가?”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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