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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두번의 5월, 그 천국과 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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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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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파워1·2’의 자존심, 2001년 5월 ‘에스트라다 지지 폭동’으로 상처받다

사진/ “그들은 괴물이야!”84년 선거거부운동 당시 민중운동세력이 마르코스 대통령 부부의 타락성을 풍자해 그린 선전포스터.
대개 필리핀 시민들에게 5월의 꽃은 여름이 끝나고 곧 다가올 고민스런 장마철을 연상케 한다. 종교적으로 말하자면, 5월의 꽃들이 성모 마리아에 대한 축성으로 바쳐지는 계절이다. 마오쩌둥식으로 말하라면 “5월의 필리핀 열대기후는 수백종의 다양한 꽃들을 만발하게 했다”쯤 될까? 그러나 적어도 가난과 불평등으로 치여온 이들에게는 5월이 축제도 화려한 꽃의 계절도 아님이 분명하다.

선거거부운동과 야당의 분열

필리핀의 5월, 그 5월은 아시아의 5월처럼 필리핀 시민항쟁에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필리핀은 1984년 5월을 기억하고 있다. 그해 그 뜨거웠던 ‘선거거부운동’은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에게 빼앗긴 자유를 되찾기 위한 시민들의 투쟁을 선도했고, 결국 1986년 2월혁명의 탄탄한 디딤판이 되었다.


당시 마르코스 대통령은 야당 지도자 베니그노 아키노 암살(1983년 8월21일)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거센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자 국가의 안정을 내걸고 ‘국민의회’ 선거 실시를 선언했고, 분노한 시민, 사업가, 전문가집단, 종교인을 포함한 반마르코스 진영은 ‘선거거부’로 맞받아쳤다. 아키노의 미망인 코라손 아키노도 가담했다. 국민의회 선거가 마르코스의 위기돌파용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시민들은 마르코스가 선거 사기극을 벌일 것이라는 사실도 뻔히 꿰뚫어보고 있었다.

반마르코스 운동가들은 온건의 상징으로 노란색 옷을, 급진적인 좌익진영은 붉은색 옷을 걸치고 함께 선거거부를 외쳤다. 코라손 아키노는 살해된 민주주의 추모의 상징으로 검정색 드레스를 휘날렸다. 마르코스는 선거거부운동이 처참한 실패로 끝날 것이라 조롱했으나, 수만명의 시민들이 선거에 불참했고, 그 일은 결국 머지않은 뒷날 찾아올 승리를 예감케 하는 획기적인 사건이 되었다.

그 뜨거웠던 1984년 5월의 선거거부운동은 필리핀 시민투쟁에서 처음으로 정치가와 사업가 그리고 전문직 종사자들이 노동자, 농민, 학생, 신부, 수녀들과 손을 맞잡고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는 중요한 역사성을 지녔다. 그리고 바로 그날의 시민연대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민주화투쟁의 꺼지지 않는 생명력임을 필리핀은 잘 알고 있다.

돌이켜보면, 두번에 걸친 ‘피플파워’는 자발적인 대규모 시민 저항이 원천이었고, 각 항쟁단체들의 조직적인 역량이 물길을 잘 인도한 결과라는 데 별 이론이 없다. 반마르코스 투쟁은 베니그노 아키노를 저격한 반역의 총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에도 수천명의 시민들이 목숨을 바쳐 일궈낸 역사였다. 여기에 바로 필리핀 5월의 진정한 가치가 담겨 있다는 뜻이다.

5월 선거거부운동의 성과는 이어지는 대통령선거에서 훼손을 당하기도 했다. 대통령선거가 발표되자 야당은 분열되었다. 온건파들이 대통령 후보로 코라손 아키노를 내걸자 좌익쪽에서 다시 한번 선거거부운동을 선언하고 나왔던 탓이다. 이렇게 ‘5월’이 곡절을 겪는 동안, 민주화의 성지가 된 에드사(EDSA)에 운집한 수백만 시민들의 기운에 질린 마르코스는 1986년 2월25일 결국 21년간의 독재를 마감하고 사라졌다. 당시 시민들은 대규모 부정선거에 대한 규탄과 마르코스에게 등을 돌린 군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여들었고, 이 평화적인 반란은 이른바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굳어진 ‘피플파워’로 거룩한 필리핀의 정신이 되었다.

극빈자들이 에스트라다의 방패가 되다니…

사진/ 2001년 5월 에스트라다 석방을 요구하는 빈민들의 촛불시위. 그들은 에스트라다가 써먹은 ‘선동정치’의 진실을 보지 못했다.(AP연합)
그러나 불행하게도- 필리핀 시민들은 이렇게 여기고 있다- 1980년대의 그 빛났던 ‘5월’은 아무도 원치 않는 2000년대의 ‘5월’을 다시 불러냈다. 썩어문드러진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축출을 위해 1980년대의 5월을 추동했던 그 이름, 이름들은 다시 거리로 쏟아져나왔고, 이들은 지난 1월 말 다시 한번 ‘피플파워2’로 존재를 입증했다. 하지만 지금 아름다웠던 5월, 그 5월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고 있다.

“노동절 대혼란.” “5월의 포위공격.” “5월1일 대공세.” 이런 고상한 인간적인 제목들이 모두 마약에 중독된 깡패들이 에스트라다의 석방을 외치며 에드사와 말라카냥 대통령궁 앞에서 벌인 시위를 뜻하는 말이 되고 말았으니…. 5월의 정신, ‘피플파워1’과 ‘피플파워2’는 이렇게 참담하게 짓밟힌 것이다. 에스트라다의 후임자 아로요 대통령은 이 사태를 ‘선동자들의 꾀임’이라며 에스트라다에 빌붙어 권력의 맛을 본 이들이 5월의 정신을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5월을 뒤엎어버린 이 시위에는 극빈자들이 동원되었고 이들은 친에스트라다 정치꾼들의 ‘인간방패’ 노릇을 하고 말았다.

사태가 이쯤되자, 아로요는 즉각, 경고없이 혼란사태를 지원한 친에스트라다 인맥들을 체포할 수 있는 폭동사태를 선언했다. 체포된 이들은 대개 마르코스 축출 때부터 최근의 아로요에 이르기까지 이미 여러 차례 군사쿠데타를 통해 역사를 뒤엎겠다는 열망을 지녀온 인물들이었다. 말하자면, 5월의 시대정신에 극도로 짜증을 부리는 인물들이라고나 할까.

이런 상황 속에서, 찬란했던 그 5월은 지금 비극적인 현실을 맞고 있다.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이 용감하게 실행했던 민주적인 제도도 후임 라모스 대통령이 쌓았던 투자자본의 신임도도 무너지면서 필리핀은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최근 필리핀의 5월을 대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는 이들은 진정으로 가난한 이들의 눈물을 외면한 채, 에스트라다가 재주껏 이용했던 ‘가난한 이들의 대변자’라는 상징을 통해 에스트라다의 석방만을 외치고 있다.

사진/ 노란색은 ‘피플파워’의 전통을 상징한다. 지난 5월12일 ‘피플파워연합’의 총선유세에 참석한 아로요 대통령(가운데)과 아키노, 라모스 전 대통령.(AFT연합)
가난에 찌들려온 이들이 에스트라다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까닭은 자신들의 ‘꿈’에 대한 열망을 버릴 수 없었던 탓이다. 에스트라다가 주연한 영화를 통해 그를 ‘가난의 희생자’로 봐왔던 현실 속의 가난한 이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들었고, 결국 에스트라다가 쫓겨나고 구속되는 과정이 에스트라다가 아닌 자신들이라는 환영을 지니게 되었다. 이들이 자신들의 투표가 부유한 엘리트들에 의해 무효가 되어버렸다고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국 에스트라다가 가난한 이들에게 약속했던 고급교육, 고용안정, 의료혜택, 안전한 주택 같은 이른바 ‘말쑥한 삶’이 실현된 적도 없었을뿐더러, 에스트라다가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일에만 급급했음에도 여전히 가난한 이들은 그의 원상회복을 바라고 있다.

진정한 5월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

가난한 이들은 에스트라다가 써먹은 ‘선동정치’의 진실을 보지 못했고, 이 지점에 바로 후임 아로요 대통령의 도전과 성패가 걸렸다. 다시말해, 아로요는 평화와 질서를 회복하는 일 못지 않게 에스트라다가 퍼트린 각종 ‘수사’들에 대한 정확한 현실을 제공해야 한다는 이중의 부담을 안고 출발한 셈이다. 아로요의 도전이 바로 경제성장으로부터 소외당하고 불평등한 대접을 받아온 사람들, 7천6백만 전체 인구 가운데 40% 이상이 빈곤에 허덕이는 필리핀사회에 진정한 의미의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펼치는 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만발하는 열대 필리핀 5월의 꽃들은 여전히 가난한 이들의 눈물너머 아스라한 아지랑이로 피어오르고 있다. 진정한 5월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은 멀기만 한데.

마리테스 시손(Marites Sison)/ 전 <마닐라타임스> 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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