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르토의 망령에 짓밟혀지는 98년 5월정신이 다시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해 5월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5월2일 ‘교육의 날’ 동부 자카르타의 사범대학(IKIP) 학생들은 수하르토의 부정과 부패를 규탄하며 국민협의회(MPR)를 향해 교외 진출을 시도했고, 폭동진압경찰은 공포탄을 쏘아대며 저지했다. 두명의 중상자 발생.
5월11일 자카르타 서부의 트리삭티대학, 인도네시아 학생운동사에 정치무풍지대로 기록되었던 트리삭티에서 최초로 수하르토 규탄 집회. 폭동진압군의 발포로 학생 6명 사망.
5월12일 자카르타 전역 무법천지로. 상가 불타고 사망자 속출. 도심에 탱크 진주. 특전사 코파수스 폭동진압 훈련 개시.
5월13일 인도네시아 전역 혼란의 도가니로. 전국적으로 사망자 발생. 화교여성들에 대한 조직적인 성폭행 자행.
5월15일 전략예비사령부에서 정치·군부 비밀회담 개최.
5월16일 5만여명의 대학생들 국민협의회 점거 시위 돌입. 인도네시아 전역 혼란상태로. 일찌감치 5월은 ‘혁명의 계절’ 마침내 5월21일, 수하르토는 하비비 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고 32년 독재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렇게 해서 1998년의 5월은 끝이 났다. 따져보면,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일찌감치 5월은 ‘운동성’이 충만한 혁명의 계절로 여겨져 왔다. 네덜란드 식민통치 아래서 민족교육을 주창했던 인도네시아 교육의 아버지 키 하자르 데완타라의 생일인 5월2일이 ‘교육의 날’로 정해지면서부터 5월은 늘 학생운동의 계절처럼 여겨져 왔고, 자바의 7개 학교 학생들이 저항운동단체 보에디오에토모를 조직해 네덜란드 식민통치에 본격적인 항쟁을 시작한 5월20일이 ‘국민각성의 날’로 자리잡으면서 또 5월은 저항의 기운을 북돋워왔다. 그래서 해마다 5월이 오면 위기설이 퍼졌고, 시민들은 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혔던 것이 인도네시아 5월의 현대사였다. 결국 수하르토 철권독재 32년 만인 1998년, 5월은 현실로 대답했다.
시민들은 오랫동안 농축되어왔던 5월의 정신이 1998년 5월의 반독재투쟁으로 승화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독재자 수하르토를 몰아냈던 1998년의 그 성스러운 5월은 학살과 약탈과 강간이 함께 몰려온 치욕적인 계절이었음을 시민들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해 인도네시아의 5월은 다른 아시아의 5월과 달리 영광과 능욕이 어우러진, 천국과 지옥이 뒤섞인, 환희의 눈물과 학살의 피가 혼합된 말 그대로 잡탕의 현대사였다. 그로부터 만 3년이 지난 2001년 5월, 민주화투쟁의 장엄한 희생도 달콤한 열매도 아직 인도네시아 시민들의 몫이 아님을 우리는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군부는 여전히 정치판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으며, 32년간 기승을 부렸던 음모와 부패와 족벌주의 전통은 지금도 완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추악한 냄새만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군부가 조종하는 정체불명의 사병조직들이 회교주의를 내세우며 활개치고, 협애한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한편의 무리들은 공산주의 박멸을 외치며 진보적인 출판물들을 불태우며 난리들이다. 와히드는 발가벗겨질 것인가 반공을 외치며 서점을 휩쓸고 다니는 이 5월의 괴상한 인물들이 수하르토의 향수병에 걸린 군부의 지원을 받으며 와히드 대통령을 발가벗기겠다고 거리로 나섰다. 5월, 이대로 쓰러져버릴 것인가? 난동질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5월의 희망은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진짜 5월을 사랑해왔던 인물들은 가짜 5월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다시 하나로 뭉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다시 5월 정신의 부활이다. 약탈과 학살과 강간과 반공의 5월이 아닌, 영웅들의 희생으로 얻은 혁명의 5월은 인도네시아 시민들에게 명령하고 있다. 음모와 부패와 족벌주의로부터 떨쳐일어나 진보적인 역사를 향해 길을 재촉할 것을.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사진/ 5월의 희망은 살아날 것인가. 98년 5월 경찰에 맞서 ‘민주주의’를 절규하는 자카르타의 한 시민.(SYGMA)
5월2일 ‘교육의 날’ 동부 자카르타의 사범대학(IKIP) 학생들은 수하르토의 부정과 부패를 규탄하며 국민협의회(MPR)를 향해 교외 진출을 시도했고, 폭동진압경찰은 공포탄을 쏘아대며 저지했다. 두명의 중상자 발생.
5월11일 자카르타 서부의 트리삭티대학, 인도네시아 학생운동사에 정치무풍지대로 기록되었던 트리삭티에서 최초로 수하르토 규탄 집회. 폭동진압군의 발포로 학생 6명 사망.
5월12일 자카르타 전역 무법천지로. 상가 불타고 사망자 속출. 도심에 탱크 진주. 특전사 코파수스 폭동진압 훈련 개시.
5월13일 인도네시아 전역 혼란의 도가니로. 전국적으로 사망자 발생. 화교여성들에 대한 조직적인 성폭행 자행.
5월15일 전략예비사령부에서 정치·군부 비밀회담 개최.
5월16일 5만여명의 대학생들 국민협의회 점거 시위 돌입. 인도네시아 전역 혼란상태로. 일찌감치 5월은 ‘혁명의 계절’ 마침내 5월21일, 수하르토는 하비비 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물려주고 32년 독재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렇게 해서 1998년의 5월은 끝이 났다. 따져보면, 인도네시아 역사에서 일찌감치 5월은 ‘운동성’이 충만한 혁명의 계절로 여겨져 왔다. 네덜란드 식민통치 아래서 민족교육을 주창했던 인도네시아 교육의 아버지 키 하자르 데완타라의 생일인 5월2일이 ‘교육의 날’로 정해지면서부터 5월은 늘 학생운동의 계절처럼 여겨져 왔고, 자바의 7개 학교 학생들이 저항운동단체 보에디오에토모를 조직해 네덜란드 식민통치에 본격적인 항쟁을 시작한 5월20일이 ‘국민각성의 날’로 자리잡으면서 또 5월은 저항의 기운을 북돋워왔다. 그래서 해마다 5월이 오면 위기설이 퍼졌고, 시민들은 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혔던 것이 인도네시아 5월의 현대사였다. 결국 수하르토 철권독재 32년 만인 1998년, 5월은 현실로 대답했다.
시민들은 오랫동안 농축되어왔던 5월의 정신이 1998년 5월의 반독재투쟁으로 승화되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독재자 수하르토를 몰아냈던 1998년의 그 성스러운 5월은 학살과 약탈과 강간이 함께 몰려온 치욕적인 계절이었음을 시민들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해 인도네시아의 5월은 다른 아시아의 5월과 달리 영광과 능욕이 어우러진, 천국과 지옥이 뒤섞인, 환희의 눈물과 학살의 피가 혼합된 말 그대로 잡탕의 현대사였다. 그로부터 만 3년이 지난 2001년 5월, 민주화투쟁의 장엄한 희생도 달콤한 열매도 아직 인도네시아 시민들의 몫이 아님을 우리는 서글픈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군부는 여전히 정치판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으며, 32년간 기승을 부렸던 음모와 부패와 족벌주의 전통은 지금도 완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추악한 냄새만 진동하고 있는 것이다. 정체불명의 군부가 조종하는 정체불명의 사병조직들이 회교주의를 내세우며 활개치고, 협애한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한편의 무리들은 공산주의 박멸을 외치며 진보적인 출판물들을 불태우며 난리들이다. 와히드는 발가벗겨질 것인가 반공을 외치며 서점을 휩쓸고 다니는 이 5월의 괴상한 인물들이 수하르토의 향수병에 걸린 군부의 지원을 받으며 와히드 대통령을 발가벗기겠다고 거리로 나섰다. 5월, 이대로 쓰러져버릴 것인가? 난동질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5월의 희망은 서서히 살아나고 있다. 진짜 5월을 사랑해왔던 인물들은 가짜 5월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다시 하나로 뭉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다시 5월 정신의 부활이다. 약탈과 학살과 강간과 반공의 5월이 아닌, 영웅들의 희생으로 얻은 혁명의 5월은 인도네시아 시민들에게 명령하고 있다. 음모와 부패와 족벌주의로부터 떨쳐일어나 진보적인 역사를 향해 길을 재촉할 것을.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