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대전’과 ‘대량학살’이란 끔찍한 말이 생겨난 건 20세기다. 인류 역사에서 유례가 없었던 폭력과 광기의 세기였다. 그 세기가 끝나기 전에 학살과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단죄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결실을 봤다. 1998년 7월 맺어진 로마협약을 통해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존립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2002년 4월 로마협약에 서명한 국가 가운데 60개국이 자국 의회 비준 절차를 마무리했고, 그해 7월 협약은 공식 발효했다. 이듬해인 2003년 2월엔 가입국 대표단이 투표를 통해 18명의 첫 재판부를 선출했고, 3월엔 이들이 취임식을 하면서 재판소의 꼴을 갖췄다.
 유엔 회원국 3분의 2 ‘바시르 지지’ 난관
 21세기에도 지난 세기의 참극은 재연됐다. 아프리카 수단 서쪽 다르푸르 지역에서 6년째 이어지고 있는 대량학살의 참극은 이번 세기 첫 ‘인종청소’로 불린다. 지구촌의 눈길은 자연스레 ICC로 향했다. 수단이 협약 가입국이 아닌 탓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나서야 했다. 지난 2005년 3월 말 안보리는 “다르푸르 사태가 국제 평화와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결의안 제1593호를 통과시켰다. 이내 ICC가 다르푸르 사태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그리고 로마협약 체결 10주년을 맞은 지난해 7월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ICC 수석검사는 다르푸르에서 학살을 주도한 혐의로 마샬 오마르 하산 아마드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공식 기소하는 한편, 예심 재판부에 그의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이 나오기까지 8개월여가 흘렀다. 학살의 만행은 그동안에도 계속됐다. 지난 3월4일 ICC 예심 재판부가 마침내 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재판부는 바시르 대통령이 다르푸르에서 폭력을 조장하고 인도적 재난을 가중시킨 혐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2003년 초 중앙정부의 차별정책에 맞서 반군단체 수단해방군(SLA)이 활동을 시작한 이후 다르푸르에선 유혈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수단 정부는 정규군은 물론 꼭두각시 격인 잔자위드 민병대를 동원해 다르푸르 일대에서 약탈·방화·강간·살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폭력사태나 이로 인한 굶주림으로 현재까지 다르푸르에서 숨진 민간인은 약 30만 명에 이른다는 게 유엔의 추산이다. 유혈을 피해 떠돌고 있는 난민만도 줄잡아 270만 명을 헤아린다. 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세계 각국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온 이유다. 문제는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진 직후 바시르 대통령은 발빠르게 ‘보복 대응’에 나섰다. 옥스팸, 머시코어, 국경 없는 의사회 등 다르푸르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13개 국제 인도지원 단체에 추방령이 내려졌다. 이들 단체는 다르푸르 난민들에게 물과 식량, 의약품을 지원하는 등 일종의 ‘생명유지 장치’ 노릇을 해왔다. 체포영장 발부로 되레 다르푸르의 인도적 상황이 더욱 나빠지게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바시르 대통령이 체포돼 법정에 서게 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현실’도 영장 발부를 비판하는 근거가 된다. 현직 국가원수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면 체포할 수 있다는 ‘으름장 효과’ 외에 실익이 없다는 게다. 실제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바시르 대통령이 수단을 떠나 로마협약 가입국을 방문해야 한다. 둘째, 방문국 당국이 나서 바시르 대통령을 체포해 ICC에 신병을 인도해야 한다.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다. 아프리카연맹은 물론 아랍국가연합, 이슬람회의기구, 비동맹운동기구 등이 바시르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192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다.
유엔 회원국 3분의 2 ‘바시르 지지’ 난관
 21세기에도 지난 세기의 참극은 재연됐다. 아프리카 수단 서쪽 다르푸르 지역에서 6년째 이어지고 있는 대량학살의 참극은 이번 세기 첫 ‘인종청소’로 불린다. 지구촌의 눈길은 자연스레 ICC로 향했다. 수단이 협약 가입국이 아닌 탓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나서야 했다. 지난 2005년 3월 말 안보리는 “다르푸르 사태가 국제 평화와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결의안 제1593호를 통과시켰다. 이내 ICC가 다르푸르 사태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 그리고 로마협약 체결 10주년을 맞은 지난해 7월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ICC 수석검사는 다르푸르에서 학살을 주도한 혐의로 마샬 오마르 하산 아마드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공식 기소하는 한편, 예심 재판부에 그의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이 나오기까지 8개월여가 흘렀다. 학살의 만행은 그동안에도 계속됐다. 지난 3월4일 ICC 예심 재판부가 마침내 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재판부는 바시르 대통령이 다르푸르에서 폭력을 조장하고 인도적 재난을 가중시킨 혐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2003년 초 중앙정부의 차별정책에 맞서 반군단체 수단해방군(SLA)이 활동을 시작한 이후 다르푸르에선 유혈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수단 정부는 정규군은 물론 꼭두각시 격인 잔자위드 민병대를 동원해 다르푸르 일대에서 약탈·방화·강간·살상을 멈추지 않고 있다. 폭력사태나 이로 인한 굶주림으로 현재까지 다르푸르에서 숨진 민간인은 약 30만 명에 이른다는 게 유엔의 추산이다. 유혈을 피해 떠돌고 있는 난민만도 줄잡아 270만 명을 헤아린다. 바시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세계 각국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온 이유다. 문제는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영장 발부 소식이 전해진 직후 바시르 대통령은 발빠르게 ‘보복 대응’에 나섰다. 옥스팸, 머시코어, 국경 없는 의사회 등 다르푸르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13개 국제 인도지원 단체에 추방령이 내려졌다. 이들 단체는 다르푸르 난민들에게 물과 식량, 의약품을 지원하는 등 일종의 ‘생명유지 장치’ 노릇을 해왔다. 체포영장 발부로 되레 다르푸르의 인도적 상황이 더욱 나빠지게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바시르 대통령이 체포돼 법정에 서게 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현실’도 영장 발부를 비판하는 근거가 된다. 현직 국가원수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면 체포할 수 있다는 ‘으름장 효과’ 외에 실익이 없다는 게다. 실제 체포영장을 집행하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바시르 대통령이 수단을 떠나 로마협약 가입국을 방문해야 한다. 둘째, 방문국 당국이 나서 바시르 대통령을 체포해 ICC에 신병을 인도해야 한다.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다. 아프리카연맹은 물론 아랍국가연합, 이슬람회의기구, 비동맹운동기구 등이 바시르 정권을 지지하고 있다. 192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3분의 2가 넘는다.
 
아프리카 집중, 미국 범죄엔 침묵? 물론 체포영장 발부의 ‘상징성’에 무게를 두는 시각도 있다. 프랑스 파리에 망명 중인 수단해방군 창설자 압델 하메드 알누르는 3월6일 <로이터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면서 수단 정부군과 잔자위드 민병대 모두 난민을 공격하면 누구든 처벌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다르푸르 사태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구호요원들이 다르푸르를 떠나게 된 것은 다르푸르 주민들에겐 재난이나 마찬가지”라며 “하지만 체포영장이 발부되지 않았다면 수단 정부군과 잔자위드 민병대의 공세가 더욱 강력해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로선 ICC가 발부한 체포영장이 ‘실효’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애초 기소 절차를 촉발한 유엔 안보리가 다시 나서야 한다. 수단 쪽에 ICC에 협력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내고, 이를 거부할 경우 제재조치를 강구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휘두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수단에서 대규모 유전 개발에 한창인 중국은 바시르 정권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도맡아왔다. 오캄포 수석검사가 공개적으로 체포영장을 청구할 게 아니라 비밀영장을 발부받았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시르 대통령이 영장 발부 사실을 모른 채 국외 방문길에 올랐을 때, 운 좋게 붙잡아들일 가능성을 그나마 높일 수 있었다는 게다. ICC 재판부가 지금까지 체포영장을 발부한 ‘전범’은 모두 13명이다. 이 가운데 실제 신병을 확보한 것은 4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도망 중이거나, 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시르 대통령을 뺀 나머지는 모두 우간다·콩고민주공화국·중앙아프리카공화국 출신들이다. ICC의 활동이 아프리카 국가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일부에선 “ICC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의 전쟁범죄에 대해선 눈감은 채 만만한 국가를 상대로 사법권을 휘두르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전형적인 ‘이중 잣대’란 게다. “바시르 대통령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을 계기로 ICC가 다시 한번 기로에 서게 됐다.” 인터넷 대안매체는 3월9일 이렇게 평했다. 지금까지 로마협약을 비준한 나라는 모두 108개국이다. 이 가운데 아프리카 국가가 30개국에 이른다. 이번 체포영장 발부로 아프리카 국가들이 집단 반발에 나설 경우, ICC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의 지적처럼 “지금까지 ICC의 위상을 가장 크게 흔들어온 것은 단연 로마협약 가입과 비준을 모두 거부한 미국”이다. 미국이 ICC에 가입하지 않았어도, 범법행위가 벌어진 경우 기소 절차를 시작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를테면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미 중앙정보국(CIA)이 폴란드에서 비밀 고문시설을 운영했다는 사실이 지난해 6월22일치 <뉴욕타임스> 보도를 통해 밝혀졌다. 고문은 반인도적 범죄이며, 폴란드는 로마협약 가입국이다. 폴란드 땅에서 벌어진 반인도적 범죄행위는 ICC의 재판 관할권 아래 놓이게 된다. ICC는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다.
 ICC가 사상 최초로 현직 국가수반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집행 가능성을 떠나, 분명 역사에 기록될 쾌거다. 다만 ‘선별적 침묵’이 그 빛을 가리고 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지 사흘 만인 지난 3월7일 전통 복장을 차려입은 바시르 수단 대통령이 수도 하르툼에서 열린 지지 집회에서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사진 EPA/ PHILIP DHIL
아프리카 집중, 미국 범죄엔 침묵? 물론 체포영장 발부의 ‘상징성’에 무게를 두는 시각도 있다. 프랑스 파리에 망명 중인 수단해방군 창설자 압델 하메드 알누르는 3월6일 <로이터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되면서 수단 정부군과 잔자위드 민병대 모두 난민을 공격하면 누구든 처벌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게 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다르푸르 사태 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구호요원들이 다르푸르를 떠나게 된 것은 다르푸르 주민들에겐 재난이나 마찬가지”라며 “하지만 체포영장이 발부되지 않았다면 수단 정부군과 잔자위드 민병대의 공세가 더욱 강력해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로선 ICC가 발부한 체포영장이 ‘실효’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애초 기소 절차를 촉발한 유엔 안보리가 다시 나서야 한다. 수단 쪽에 ICC에 협력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내고, 이를 거부할 경우 제재조치를 강구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휘두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수단에서 대규모 유전 개발에 한창인 중국은 바시르 정권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도맡아왔다. 오캄포 수석검사가 공개적으로 체포영장을 청구할 게 아니라 비밀영장을 발부받았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시르 대통령이 영장 발부 사실을 모른 채 국외 방문길에 올랐을 때, 운 좋게 붙잡아들일 가능성을 그나마 높일 수 있었다는 게다. ICC 재판부가 지금까지 체포영장을 발부한 ‘전범’은 모두 13명이다. 이 가운데 실제 신병을 확보한 것은 4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도망 중이거나, 숨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바시르 대통령을 뺀 나머지는 모두 우간다·콩고민주공화국·중앙아프리카공화국 출신들이다. ICC의 활동이 아프리카 국가에만 집중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일부에선 “ICC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의 전쟁범죄에 대해선 눈감은 채 만만한 국가를 상대로 사법권을 휘두르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전형적인 ‘이중 잣대’란 게다. “바시르 대통령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을 계기로 ICC가 다시 한번 기로에 서게 됐다.” 인터넷 대안매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