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에게 시리아는 또다른 모습의 이스라엘… 기독교도들이 가장 선봉에 서다
“신이여, 레바논 기독교도를 보살펴주소서.”
올 들어 동베이루트 한 성소의 성모마리아상에서 기름이 흘러나온다는 말이 나돌면서 기독교도들은 흥분의 기도를 올리고 있다. 레바논 기독교도- 특히 마론파교도(주로 레바논에 분포하며 동방의식을 따르는 로마-가톨릭의 한 종파)- 는 16년 동안 계속된 레바논전쟁 기간 내내 최악의 고통을 겪은데다, 1991년 전쟁이 끝나고도 여전히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는 서러움이 북받쳐오른 탓이다.
기독교와 회교도의 비례제 정치구조
레바논 기독교도들의 이런 감정은 주로, 동부 베카아계곡에 주둔한 2만5천여명의 병력을 통해 사실상 레바논의 정치상황을 지배해온 시리아에 대한 반발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는 “시리아군의 레바논 철수는 중동의 항구적인 평화와 레바논 국내상황의 안전이 보장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고 선언해 시리아군의 철수를 오랫동안 기대해왔던 레바논 시민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해 여름 대통령이 된 뒤부터 아사드는 줄기차게 다음을 강조해왔다. “최종적인 철군 결정은 시리아와 레바논 두 정부가 동시에 인정하는 안전의 조건들이 성숙할 때 가능하다.” 게다가 중동분쟁의 핵인 이스라엘에 강경파 아리엘 샤론 정부가 들어섰고, 이에 따라 고조된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의 긴장이 레바논으로 옮겨붙을 가능성을 놓고 많은 이들이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정치분석가들은 레바논 기독교도들의 시리아군 철수 요구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리아군 철수 요구는 상황논리가 아니다.” 전 워싱턴 주재 레바논 대사이자 시리아철군에 가장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 온 시몬 카람은 “시리아의 새 대통령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레바논에게는 또다른 모습의 이스라엘 총리일 뿐”이라고 직격탄을 쏘아올렸다. 정치평론가 미카엘 영은 “기독교도들의 시리아군 철수 요구는 현재 이스라엘-시리아의 긴장 고조로 일정 부분 위축되고 있지만, 추후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194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레바논은 기독교와 회교도 사이에 비례제를 통해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모든 직책을 분배하는 정치구조를 출범시켰다. 1931년의 인구조사보고서에 따라 가장 큰 공동체로 인정된 기독교 마론파가 대통령과 육군총장직을, 그리고 총리는 회교도 수니파가, 국회의장은 회교도 시아파가 각각 나눠가지는 형태로. 이 비례제에 따라 의회에서도 주류를 형성한 기독교도는 전통적으로 가난했던 회교 시아파가 1943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급성장하는 동안에도 기득권에만 집착하고 있었는데, 결국 16년 전쟁이 끝난 1991년 시아파가 욱일승천해 레바논 정치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면서 의회 내의 각 종파간 비율도 50:50으로 외형상 균형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시아파는 1990년대 레바논 남부에 주둔하고 있던 이스라엘군에 무장투쟁으로 맞섰다. 결국 지난해 이스라엘군 철수에 빛나는 공을 세운 친이란계 ‘히즈불라’와 국회의장 나비 벨리가 이끄는 ‘아말’ 이라는 두개의 주축 세력을 통해 정치적 주도권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말하자면 16년 전쟁이 끝나면서 기독교와 회교도의 입지가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셈이다. 전쟁이 끝난 뒤, 수니파는 억만장자 사업가 라픽 하리리를 지도자로 선출해 정계에 활발히 진출했고, 드루즈교(레바논 산중에 분포한 회교에 기독교를 섞은 종파)는 민병대지도자 와리드 줌브라트를 중심으로 장관과 의원을 배출하며 정치적 약진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 군사지도자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기독교 민병대 레바논군 지도자 사미르 게아게아는 감방으로 갔고, 1989년 시리아군에 대한 공격을 주도했던 기독교군 사령관 미카엘 아오운은 프랑스로 망명을 떠났다. 추기경의 철군요구, 뜨거운 쟁점 부상
이 과정에서 기독교도들은 자신들의 불행을 시리아군의 지배 탓이라고 여겨왔다. 돌이켜보면, 시리아군의 레바논 진주는 내전중이던 1976년, 공교롭게도 기독교 마론교파 대통령 술레이만 프란지에가 좌익과 연대한 팔레스타인 무장투쟁그룹들로부터 기독교도들의 보호를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뒤 1989년 레바논내전 종식을 위한 타이프협정에 따라 시리아는 3만명의 병력을 레바논에 계속 주둔시킬 수 있다는 확약을 받았고 이를 통해 실질적인 레바논 지배를 시작했다. 그러나 타이프협정이 요구한 “1991년 시리아군을 베카아계곡에서 이동 배치시킨다”는 조항은 결코 실행되지 않았고, 12년이 지난 현재 오히려 시리아군의 레바논 장악은 전에 없이 강화되고 있다.
현재 시리아는 레바논 시민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시장마다 시리아물건과 농산품들이 넘쳐나고, 100만명이 넘는 시리아 노동자들이 레바논으로 밀려온 탓에 가난한 시아파 시민들은 일자리를 찾기조차 힘든 지경이다. 정치적으로도 기독교도들의 불만은 고조되고 있다. 친시리아파 회교도가 압도하는 의회에 자신들의 대표자를 진출시키기 힘들다고 믿기 때문이다. “선거구의 규정이 기독교도들에게 원천적으로 불리하도록 짜여 있다.” 베이루트 아메리칸대학 정치학과 파리드 카젠 교수는 지난해 의회 선거에서 기독교도의 선거구를 이웃 회교도지역과 겹치도록 확대해버려 결국 기독교도들의 표를 희석시킨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기독교도들의 또다른 불만은 인위적인 인구조절 정책이다. 1994년 외국인의 레바논 귀화문제가 불거졌는데, 당시 외국인 약 30만명에게 레바논 시민권을 부여하면서 시리아인과 팔레스타인인 그리고 아랍 유목민을 비롯한 회교도에게 80% 이상을 집중시키면서 기독교도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사건이다. 기독교도와 회교도 사이의 인구균형을 인위적으로 조정한 이 사건으로 기독교도들은 스스로 ‘소수’라는 감정을 지니게 되었다. 어쨌든, 그동안 레바논 시민들 대다수는 이스라엘이 남부 레바논으로부터 철군하면 시리아군도 마땅히 레바논에서 철수하리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시민들의 이런 자연스러운 기대와 희망은 실현되지 않았고, 이 시리아군 주둔이 현재 레바논사회의 기본모순으로 떠올라 있다.
지난 3월23일, 아랍계 신문을 대표하는 <안나할>의 발행인 지부란 투에이니(기독교도)는 용감한 발길을 내디뎠다. 그는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아사드에게 공개편지를 띄웠다. “많은 시민들이 레바논을 장악한 시리아의 정책과 시리아군의 주둔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신은 인정해야 한다.” 그는 덧붙였다. “이런 시민들이 이스라엘의 공모자도 레바논의 배신자도 아니다. 시민들은 레바논의 자주와 독립에 대한 열망을 지녔을 뿐이다.” 시민들의 숨통을 열어주었던 그의 공개편지는 지금껏 아무런 대답도 얻지 못한 상태다.
따지고보면, 이미 지난해 9월 마론파의 원로 추기경 나스랄라 보우드로스가 공개적으로 시리아군의 철수를 주장할 때부터 레바논에서는 ‘철군’이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한 셈이다. “이스라엘군이 철수했다. 이제 시리아군도 타이프협약에 따라 레바논으로부터 완전한 철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과 국방부를 비롯한 주요 정부기관 주변에 몽둥이를 들고 장벽을 친 시리아군이 진정으로 필요하다는 말인가?” 추기경은 덧붙여 시리아가 레바논의 경제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동등한 관계를 원한다”
당시 레바논의 정치가들은 추기경과 시리아 정부 사이에 즉각 개입했다. 일부 정치가들은 추기경을 꾸짖었고, 또다른 일부는 외교적 채널을 통해 추기경의 뜻이 ‘적개심’이 아니라 두 나라 사이의 진정한 우호관계를 위한 대화 요구였다고 둘러대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수문은 이미 열렸다. 두달 뒤에는 드루즈교의 지도자 와리드 줌브라트가 의회에서 다시 노골적으로 시리아의 레바논 정치 개입을 비난했다. 이에 대해 시리아 당국은 “줌브라트가 레바논 정부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은 인물”이라며 인신공격으로 맞받아쳐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어 11월22일 레바논 독립기념일, 5천여명의 기독교계 학생들이 시리아군의 철수를 요구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 사회적 정서를 대변했다. 남부와 북부의 농민들이 시리아산 수입 농산물에 대해 노골적으로 반발하며 거부운동을 벌인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는 확고하다. “시리아군은 레바논 정부로부터 안전 확보를 위해 주둔 요청을 받고 있다.” 이게 시리아 정부의 입장이고, “만약 시리아군이 철수하면 까탈스런 레바논 시민들 사이에 다시 내전이 발생할 것”이라는 게 시리아 정부의 주장이다.
물론, 레바논의 시민들은 이런 근거없는 시리아의 표현을 불쾌하게 여기고 있다. 카젠 교수의 말이 일반적인 시민들의 정서를 잘 대변해 준다. “기독교도는 이웃 시리아와 관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두 나라 사이의 동등한 관계다.” 카젠은 덧붙였다. “시리아군이 철수한다고 기독교도가 옛날처럼 기득권을 다시 강화한다는 뜻도 아니다.”
현재 레바논의 기독교계 시민들은 이제 기독교도의 인구비율이 다른 종파와 동등한 수준이 되었고, 이런 가운데 자신들이 레바논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시리아군이 사라진 완전한 독립국 레바논에서.
림 핫다드(Reem Haddad)/ <더 데일리 스타> 기자

사진/ 시리아군 철수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레바논 기독교도들.(Reem Haddad)
레바논 기독교도들의 이런 감정은 주로, 동부 베카아계곡에 주둔한 2만5천여명의 병력을 통해 사실상 레바논의 정치상황을 지배해온 시리아에 대한 반발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 아사드는 “시리아군의 레바논 철수는 중동의 항구적인 평화와 레바논 국내상황의 안전이 보장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고 선언해 시리아군의 철수를 오랫동안 기대해왔던 레바논 시민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해 여름 대통령이 된 뒤부터 아사드는 줄기차게 다음을 강조해왔다. “최종적인 철군 결정은 시리아와 레바논 두 정부가 동시에 인정하는 안전의 조건들이 성숙할 때 가능하다.” 게다가 중동분쟁의 핵인 이스라엘에 강경파 아리엘 샤론 정부가 들어섰고, 이에 따라 고조된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의 긴장이 레바논으로 옮겨붙을 가능성을 놓고 많은 이들이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정치분석가들은 레바논 기독교도들의 시리아군 철수 요구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리아군 철수 요구는 상황논리가 아니다.” 전 워싱턴 주재 레바논 대사이자 시리아철군에 가장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 온 시몬 카람은 “시리아의 새 대통령도 별로 다를 바가 없다. 레바논에게는 또다른 모습의 이스라엘 총리일 뿐”이라고 직격탄을 쏘아올렸다. 정치평론가 미카엘 영은 “기독교도들의 시리아군 철수 요구는 현재 이스라엘-시리아의 긴장 고조로 일정 부분 위축되고 있지만, 추후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194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레바논은 기독교와 회교도 사이에 비례제를 통해 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모든 직책을 분배하는 정치구조를 출범시켰다. 1931년의 인구조사보고서에 따라 가장 큰 공동체로 인정된 기독교 마론파가 대통령과 육군총장직을, 그리고 총리는 회교도 수니파가, 국회의장은 회교도 시아파가 각각 나눠가지는 형태로. 이 비례제에 따라 의회에서도 주류를 형성한 기독교도는 전통적으로 가난했던 회교 시아파가 1943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급성장하는 동안에도 기득권에만 집착하고 있었는데, 결국 16년 전쟁이 끝난 1991년 시아파가 욱일승천해 레바논 정치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하면서 의회 내의 각 종파간 비율도 50:50으로 외형상 균형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시아파는 1990년대 레바논 남부에 주둔하고 있던 이스라엘군에 무장투쟁으로 맞섰다. 결국 지난해 이스라엘군 철수에 빛나는 공을 세운 친이란계 ‘히즈불라’와 국회의장 나비 벨리가 이끄는 ‘아말’ 이라는 두개의 주축 세력을 통해 정치적 주도권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말하자면 16년 전쟁이 끝나면서 기독교와 회교도의 입지가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셈이다. 전쟁이 끝난 뒤, 수니파는 억만장자 사업가 라픽 하리리를 지도자로 선출해 정계에 활발히 진출했고, 드루즈교(레바논 산중에 분포한 회교에 기독교를 섞은 종파)는 민병대지도자 와리드 줌브라트를 중심으로 장관과 의원을 배출하며 정치적 약진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 군사지도자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기독교 민병대 레바논군 지도자 사미르 게아게아는 감방으로 갔고, 1989년 시리아군에 대한 공격을 주도했던 기독교군 사령관 미카엘 아오운은 프랑스로 망명을 떠났다. 추기경의 철군요구, 뜨거운 쟁점 부상

사진/ 올해 들어 동베이루트의 한 성모마리아상에서 성유가 흘러나온다는 말이 나돌아 기독교도들을 흥분시키고 있다.(Reem Hadda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