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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5월, 피흘리는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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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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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악의 유혈충돌 벌어진 노동절 시위… 경찰 폭력 감시를 위해 시민단체 맹활약

사진/ 마리아넨 광장에 집결하기 시작하는 시위대. 9천명이라는 유래없는 대규모 경찰병력이 좌파의 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지난 5월1일, 따스한 봄햇살이 가득한 오후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고국의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었고, 병역거부자들의 모임에서는 서명작업이 한창이었다. 한 모퉁이에서는 세입자위원회가 주최하는 법률상담이 진행되고 있었고, 녹색당의 천막 아래로는 풍선을 받으려는 아이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이렇게 베를린 크로이츠베어크 지역 마리아넨 광장은 각종 사회운동단체들이 세워놓은 50여개의 천막들로 가득 찼다. 기금마련을 위한 음식바자회에서 피어나는 연기와 고기냄새는 광장을 가득 메웠고, 풍선을 잡고 뛰어노는 꼬마들과 지역공산당이 마련한 대형 뜀틀판에서 하늘 높이 점프하며 깔깔거리는 아이들은, 5월의 푸른 하늘과 더불어 ‘마을잔치’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 4시가 지날 무렵 3천여명의 시위대가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광장은 온통 긴장감에 휩싸였다. 1987년 이후 14년간 계속되어온 좌파의 ‘혁명적 5월1일’ 집회가 올해 처음 베를린 시당국에 의해 금지되었고, 집회장소를 잃은 시위대는 지역녹색당과 공산당이 주최하는 마을 노동절 행사장으로 몰려든 것이다. 9천명이라는 유례없는 대규모 경찰병력이 좌파의 집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투입되었다. 시위대보다 더 많은 경찰이 순식간에 광장을 위협적으로 둘러쌌고, 이에 자극받은 시위대는 경찰의 해산시도에 맞서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보도블록을 깨기 시작했다. 연이어 10여대의 물대포가 진격해왔고, 최루가스가 광장을 순식간에 뒤덮었다.

신나치는 되고 좌파는 안 돼?


사진/ ‘경찰폭력, 무법지대인가’라는 제목의 심포지엄. 맨 오른쪽이 쿠차 교수, 그 옆이 헤른킨트 경관.
‘선택권’을 잃은 듯 시위대는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평화롭던 5월의 마을잔치는 결국 지난 14년 동안 열린 시위 중 가장 치열한 ‘시가전’으로 끝나버리고 말았다. 600여명이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160명이 넘는 시위대와 경찰이 병원으로 호송되었다. 자동차들이 불길에 휩싸였고, 인근의 모든 공중전화 박스와 광고대가 파괴되었다. 약 4시간에 걸쳐 진행된 도심 시가전은 경찰에 의해 시위대가 모두 해산되면서 그 막을 내렸다. 같은 시간 베를린 다른 한편에서는 논란 끝에 허가된 ‘신나치’들의 노동절 기념행사가 좌파와의 충돌을 우려한 경찰의 호위 속에 순조롭게 끝맺음을 하고 있었다.

주정부 내무장관인 베르테바흐는 이미 지난 4월26일 좌파의 노동절 집회를 불허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거듭되어온 노동절의 폭력 시위는 더이상 용납될 수 없으며, 수도 베를린의 질서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나 이러한 집회 불허조치는 시위대를 더욱 자극하였고, 결국 그가 우려했던 격렬한 ‘시가전’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서 베를린 경찰노조도 시위 불허가 더욱 큰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사전에 경고한 상태였다. 베를린 주의회 사회당과 녹색당 의원들은 베르테바흐에게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연방의회는 이번 ‘폭력사태’가 시위대에 의해 유발된 것인지 혹은 경찰의 과도한 진압으로 발생했는지를 가려내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조사를 진행중이다.

한편 계속돼온 노동절의 유혈충돌을 근절하기 위한 시민들의 감시 활동도 진행되고 있다. 노동절 폭력사태를 분석하고 대안을 찾고자 하는 시민단체인 ‘시위관찰대’가 이미 2000년 노동절부터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시위관찰대는 보고서와 사진, 비디오 등의 증거자료를 통해 경찰폭력을 유혈충돌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올해도 32명의 시민들이 ‘시위관찰대’로 활동했는데, 이들은 3인 1조가 되어, 비디오 및 사진 촬영을 통해 생생한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경찰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목격한 시민의 증언들을 모으고 기록함으로써 이후 진행되는 법정 싸움의 유효한 증거들을 만들어 나간다. 지난해 이 단체가 연방의회에 제출한 비디오자료는 2000년 노동절 유혈충돌의 책임이 경찰에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일군의 시위대가 경찰에 욕을 퍼붓자 이에 발끈한 경찰들이 집단으로 이들을 구타하면서 시위는 순식간에 ‘시가전’으로 번져나갔다는 것이다. 경찰은 시위참여자뿐만 아니라 이를 구경하던 인파에게도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했고, 이는 신분증을 제시하는 취재진들에게조차도 곤봉을 휘둘렀다는 ‘언론노조’의 항의로 증명되었다. 또한 한 국회의원의 요구에 의해 제출된 2000년 당시 경찰의 ‘무전통화’ 기록에서도 ‘시위대와 거리를 계속 좁혀나가라’ 등의 무리한 진압이 추측되는 명령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경관들에게 ‘신분번호’를 달자

사진/ 시가전 관람석을 대여하고 있는 집. 현수막에 인터넷 주소도 보인다.
체포된 시위참여자에 대한 처벌에 맞서, 1998년부터는 경찰에 대한 고소, 고발 또한 줄을 이었다. 한해 평균 1천건이 넘는 고소장이 검찰에 접수되었으나, 대부분 ‘증거 불충분’이라는 이유로 기각되었다. 2000년의 경우 무려 2163건의 고소가 이루어졌으나, 이중 59명의 경찰에게만 내부 징계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체포된 시위참여자의 절반 이상이 ‘소요죄’로 형사처벌을 받은 것에 비하면 이는 매우 대조적인 수치인 것이다. 이에 대해 ‘비판적 경찰’이라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헤른킨트 경관은 “만약 동료의 구타 사실을 증언한다면, 그는 경찰조직에서 ‘왕따’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된다”며 법정 진술의 어려움을 밝히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동료 경찰이 증언한 사건은 단 2건뿐이다.

헤른킨트 경관은 지난 4월24일 있었던 ‘경찰폭력, 무법지대인가’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을 통해, 경찰 내부에 존재하는 ‘면책문화’를 경찰폭력의 또다른 배경으로 지적했다. 경찰의 폭력행위는 동료나 내부 조직에 의해 통제 혹은 감시받거나 고발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경찰 개개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고, 이는 ‘극한 상황’에 처했을 경우 개인적 판단에 따라 폭력을 사용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경찰 개개인을 이러한 상황으로 내몰고 있는 “정치적이고 조직적인 방임”을 경찰폭력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에 참여한 베를린 경찰대학 쿠차 교수는 ‘경찰의 익명성’을 또 하나의 문제로 설명하고 있다. 베를린 경찰청은 이번 심포지엄에 제출한 질의 답변서를 통해 ‘시민이 요구할 경우 경찰은 자신의 신분을 밝힐 의무가 있으며, 이 내규조항은 지금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그는 경찰의 곤봉에 맞아 피를 흘리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경찰에게 신분을 밝힐 것을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며, 혹 요구한다 해도 선선히 이에 응하는 경찰은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쿠차 교수는 독일좌파법률인협회를 통해 경관들이 자동차 번호판과 같이 분명한 신분번호를 착용케 하는 법안을 현재 준비중이다. 이를 통해 경찰의 익명성이 야기하는 잠재적 폭력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또한 “내 앞에 서 있는 시위자를 ‘인간’으로 보지 않을 경우, 손쉽게 몽둥이가 나가게 된다”며, 시위대를 적으로 간주하는 시위진압 경찰에 대한 교육내용 개선도 주장하고 있다.

‘시위 관람석’까지 팔기도

전통적으로 좌파의 상징이 되어온 크로이츠베어크 지역 호텔들은 이번 베를린 시가전을 취재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외신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를 의식한 지역의 장사꾼들은 시가전이 예상되는 거리의 집들을 ‘관람석’으로 대여해주었다. 심지어 인터넷으로 예약을 받고 실황중계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집들도 생겨났다. 5월2일 독일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번 시가전을 단연 1면에 보도하였다. 그러나 그 기사들 어디에서도 시위대가 외친 구호들과 주장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돌들이 날아다니고, 자동차가 불타는 사진들이 시위대의 구호를 대신하고 있었다. 이어 시위대와 경찰간의 폭력사태의 책임 공방이 신문을 도배하고 있다. 어쩌면 여기서 ‘조직적 방임’의 배경을 읽어야 하는지 모른다. 이렇게 시위대와 경찰의 값비싼 희생이 정치적 목소리를 소외시켜버리는 ‘의외’의 성과를 보면서 말이다.

한편 87년 좌파들의 거리축제를 경찰이 진압하면서 시작된 시가전이, 14년을 지나면서 하나의 연례행사나 ‘의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절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시가전’도 없는 현 독일의 정치지형에서, 투석전에 참여하고 있는 10대들의 증가를 정치적 공감대의 확대나 좌파조직의 성장으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의식’은 어쩌면 과거의 치열했던 시위에 대한 추억의 장이거나 1년 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약속의 장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5월1일, 이 날은 제도 정치권에 대부분의 의제를 빼앗겨버린 독일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불법’의 날인지도 모른다.

베를린=글·사진 강정수 통신원 jskang@we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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