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지난해 2명 올해 6천명 떠났네

민족 간 비극 1990년부터 내몰려… 반대 테러도 있지만 재정착 신청 빠르게 증가

738
등록 : 2008-12-04 17:45 수정 : 2008-12-04 18:41

크게 작게

부탄 난민 청년들의 꿈 없는 삶이 시작된 건 1990년부터다.

19세기 부탄으로 이주한 네팔계 로트샴파스족은 농업과 상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성공의 터전을 닦았다. 하지만 부탄 절대왕정이 ‘한 민족 한 국가’를 내세우면서 이들의 시련은 시작됐다. 부탄의 종카어 대신 네팔어를 사용하고 부탄의 국교인 불교로 개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로트샴파스족 마을의 지도자가 붙들려가고 공무원들은 일자리를 뺏겼다. 탄압에 항거하던 시위대는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갔고, 결국 이들은 시민권을 뺏긴 채 삶의 터전에서 내몰렸다.

10만명 난민을 어디로 보내나

네팔 동부 다막에 자리한 부탄 난민촌 벨당기 2 캠프. 물 사정이 나빠 난민들은 물 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잠시 피해 있을 요량으로 서너 가정이 친척을 찾아 네팔 동부를 찾아온 게 난민 생활의 시작이었다. 네팔 정부는 같은 민족인데다 동일한 언어를 쓰는 부탄 난민들을 말없이 수용했고, 난민들은 1991년 그곳에서 첫 난민촌인 ‘티마이 캠프’를 세웠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타향살이는 올해로 벌써 18년째. 그사이 난민촌은 7곳으로 늘어났다.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꼽는 난민들은 이 시간을 “버려진 시간”이라고 부른다. 버려진 시간에도 새 생명은 끊임없이 태어났다. 지난 10월30일, 난민촌의 막둥이 비벡 비수아가 태어났다. 이렇게 애초 8만 명이던 난민 수는 10만8천여 명으로 불었다.

부탄에서 중산층 이상의 삶을 누려왔던 대다수 난민들은 ‘귀환’만을 열망했다. 하지만 고향 부탄은 이런 난민들의 요구에 귀를 막았다. 지난 3월 왕명으로나마 첫 민주적 선거가 실시되고 지난 10월6일엔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신의 젊은 왕이 새로 취임하는 변화가 있었지만, 난민 문제에선 ‘원래 네팔인이었던 이들이 네팔로 돌아갔을 뿐’이란 입장 그대로다. 이런 와중에 네팔과 부탄 두 나라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왔던 인도마저 중립적 태도로 돌아서면서 집으로 가는 길은 점점 더 멀어졌다.

계속된 정부 간·기구 간 협상이 실패로 끝난 뒤 국제 사회는 이들 난민을 제3국으로 재정착(Resettlement)시키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타이에 있던 버마 난민이나 아프리카 일부 국가 난민들도 제3국으로 재정착한 사례가 있지만, 10만 명이나 되는 대규모 난민을 제3국에 수용토록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2006년 미국이 6만 명의 부탄 난민을 수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돌파구가 마련됐다. 이후 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덴마크·노르웨이·네덜란드도 대열에 합류했고, 네팔 정부도 2007년 12월부터 출국 비자 발급 등을 돕겠다고 나섰다. “난민이란 ‘짐’을 전세계가 함께 나눈다”는 인식이 받아들여진 것이란 게 리처드 그린델 유엔난민기구(UNHCR) 재정착담당관의 설명이다.


난민촌을 벗어날 수 있는 계기지만, 정작 난민들은 이 조처를 마뜩잖게 여겼다. “영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려는 공작”이란 의혹이 번진 탓이다. 난민해방군(RLA)이 중심이 된 재정착 반대운동까지 일어났다. 2007년 5월엔 재정착에 관심을 보였단 이유만으로 난민촌의 유명한 캠프 지도자가 구타를 당했고, 2008년 5월엔 국제이주기구(IOM) 건물에 사제 폭탄을 투척하는 일도 벌어졌다.

“영영 고향으로 못 가는 거 아냐?”

하지만 대안 없는 난민촌 생활을 계속할 수만도 없다. 날이 갈수록 부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단 인식이 확산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재정착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늘고 있다. 지난해 재정착을 떠난 이가 2명(캠프 내 성폭력 피해자)에 불과했지만, 올해 10월까지 그 수는 6천 명으로 증가했다. 다른 나라에 재정착한 이들이 속속 소식을 전해오면서, 나가서도 살 만하겠단 자신감이 커졌다. 이에 힘입어 지난 5~8월엔 매달 5천 명가량이 재정착 신청서를 내는 등 전체 난민 수의 절반이 넘는 6만 명이 재정착 신청 뜻을 밝혔다. 이 가운데 2만4천 명은 이미 재정착 대상 7개국에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다막(네팔)=글·사진 이정애 기자 한겨레 국제부 hongbyul@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