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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인생의 모험, 다른 세상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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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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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쌍 한쌍이 국제관계의 중요한 저변… 조화를 위해 늘 관용과 이해심을 화두로

최근 타이사회에서는 타이사람들이 한국이나 일본사람들과 결혼하는 일을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길 만큼 국제결혼이 보편화되어 있다. 이건 지난 세기 동안 수십만명의 중국 남성들이 일거리를 찾아 타이로 밀려와 타이 여성들과 결혼하면서 사회 전체가 일찌감치 국제결혼에 단련된 탓으로 여겨진다.

방콕시민 중 70%가 중국피

사진/ 98년 필자가 일본 여성과 결혼할 때 지인들에게 보냈던 안내 엽서. 필자의 아버지 임씨(한국발음)도 중국의 하이난섬에서 타이로 건너와 타이 여성과 결혼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타이로 넘어온 이 중국인들은 결국 타이 주류사회에 중국인 피를 주입했고, 현재 총리인 탁신 사나와트라를 비롯해 수많은 중국피가 타이 현대정치판을 휘둘러왔다. 한 서양 언론은 자체 조사결과, 적어도 70% 이상의 방콕 시민들이 중국피를 지닌 것으로 보도한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주변국들처럼 중국계의 과도한 진출이라는 주제가 큰 사회문제로 불거지지 않는 건, 타이사람들이 지닌 특별한 관용과 인종적으로 자유로운 철학을 전파한 소승불교에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모든 경우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타이사람들이 중국인들에 대한 편견을 지녔던 것이 사실이었다. 공공장소에서 침을 뱉는 사람들이라거나, 돈만 따지는 사람들이라거나, 교양없는 태도를 지닌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국제결혼. 내 경험에 비춰보면, 가장 중요한 건 의사소통의 문제다. “소통이 잘될수록 문제는 그만큼 줄어든다.” 이 단순한 논리는 국제결혼의 핵이라 할 만하다. 여기다 상대방에 대한 ‘관용’은 절대적인 조건이랄 수 있다. 간혹 나는 국제결혼에서 이 언어의 문제를 떠올리며 요즘처럼 한글이나 일본어를 배울 수 있는 교육기관이 넘쳐나도 어려움이 따르는데, 도대체 그 옛날 사람들은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국제결혼을 했을까 라는 생각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국제결혼에 대한 타이시민들의 인식이 보편화되었다고 앞에서 말했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말쑥하게 정리되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보자. 한국 여성들이 타이 남성과 결혼하면 자신들의 성을 바꿀 필요도 없고, 땅을 사든 뭘 하든 타이 남편과 똑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타이 여성이 한국 사나이와 결혼만 했다 하면, 즉각 이 타이 여성은 타이에서 땅을 살 권리마저 잃게 된다는 사실이다.

여기다 한술 더 떠, 국제결혼을 한 타이 여성들은 어김없이 “전직 창녀였나”라는 눈살부터 맞고 삶을 시작한다. 타이 남성들이 외국 여성과 결혼하면 ‘능력있는 남자’쯤으로 인정받는 것과 매우 먼 거리에서 타이 여성들의 국제결혼은 구박받고 있다는 말이다.

구박받는 여성들의 국제결혼

그럼에도 나는 개인적으로 국제결혼의 가치를 존중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국제관계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이건 존경하는 외무부나 대사관 직원들의 알량한 또는 표면적인 국제관계가 아니라, 쌍방이 인생을 건 국제관계라 그 농도에서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가령 동남아시아 사람들과 동아시아 사람들이 결혼했다고 치자. 거기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중심에 놓인다. 상호간 문화적인 이해 없이 국제결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사관처럼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국제결혼 한쌍 한쌍이 던지는 실질적인 의미는 국제관계의 중요한 저변이 된다는 믿음에서다. 적어도 그 국제결혼이 죽이네 살리네 소리지르며 깨지지 않는 동안에는.

또 하나 중요한 장점은 -나의 경우- 인생의 모험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국제결혼을 한 경우, 배우자를 통해 나와 다른 세상을 배울 수 있고 상호간의 조화를 위해 늘 관용과 이해심을 화두로 삼는 탓에 인간에 대한 깊은 탐색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왜 사람은 서로 다른 얼굴과 문화를 지니고 있는가?” 이게 내가 국제결혼을 하고 얻은 가장 중요한 의문이며 동시에 나는 이 숙제를 마치기 위해 애쓰며 살고 있다.

국제결혼, 거기엔 아무런 정략도 책략도 없다. 사랑하기 때문이고, 그 사랑에는 국경도 인종도 필요없다.

프라윗 로자나프룩(Pravit Rojanapruk)/ <더 네이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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