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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또 하나의 툴라는 준폭동

‘탁신 타도’ 외치는 극우 PAD가 경찰을 자극… 왕비는 부상자 치료에 10만밧을 기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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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0-16 14:57 수정 : 2008-10-1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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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마삿 학살 32주년 기념일이 조용히 지나간 다음날인 10월7일, 타이 사회는 또 한 차례의 ‘툴라’(10월)를 목도했다. ‘세 번째 툴라’는 앞선 두 차례와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독재정권을 타도한 1973년 10월 피플파워(첫 번째 툴라)의 역동성도, 극우 세력과 결탁한 국가 폭력에 짓밟힌 1976년 10월 진보운동(두 번째 툴라)의 비극도 없었다. 다만 ‘탁신 타도’를 외치는 극우 성향의 반정부 시위대인 민주주의민중연대(PAD)가 연출한 ‘준폭동’이었다고나 할까?

지난 10월7일 방콕 시내 중심가에서 PAD 시위대와 경찰 간 충돌이 격화하면서 곳곳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시위대 일부가 거리에 세워진 경찰 차량을 밀어내고 있다.

전에 없던 ‘의회 해산’ 구호

PAD는 솜차이 웡사왓 신임 총리(탁신 전 총리의 매제) 정부가 정책 발표를 위해 10월7일 소집한 의회의 개회를 막기 위해 전날 밤부터 의사당을 봉쇄했다. 전에 없던 ‘의회 해산’이란 구호도 등장했다. 현장에 배치된 경찰은 ‘의원용 통로’를 만들겠다고 하더니, 예고도 없이 최루탄을 발사하는 등 진압에 나서 몇십 명이 다쳤다. 시위대는 다시 모여들었고, 경찰은 이들의 행동을 사실상 묵인했다. 그러자 되레 PAD가 경찰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PAD는 의사당 인근 거리에서 픽업트럭을 몰고 다니며 의도적으로 경찰 수십 명을 들이받았다. 뾰족한 깃봉으로 경찰을 찌르기도 했다. 결국 폭력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2명이 숨지고 몇백 명이 다치는 유혈 사태로 번졌다.

“못 들어간다. 우린 의사당을 계속 봉쇄할 것이고, 아무도 당신을 구해주지 못할 것이다.”

이날 오후 2시께 의사당 주변을 기웃거리던 기자를 막아선 건 경찰이 아니었다. 경찰 진압부대와 1m 남짓한 거리를 두고 대치 중이던 PAD의 ‘사수대’였다. 빈말은 아닌 듯했다. 의회는 이미 오후 1시께 정회했지만, 의원과 취재진, 의사당 직원 등 몇백 명이 사실상 건물 안에 갇혀 있었다. PAD는 저녁 7시께 기자들과 의사당 직원들이 (담을 타고) 나오는 건 ‘허락’했지만, 의원들은 끝내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의원들의 ‘통로’를 마련하기 위해 경찰은 오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최루탄을 쐈다. 뿌연 연기가 퍼지는 틈을 타 의원들은 담을 뛰어넘었다. 솜차이 총리도 비만막 왕궁 쪽으로 넘어가 경찰 헬기를 탔다. 이 과정에서 PAD 쪽의 발포로 경찰 3명이 다쳤다.

사실 지난 9월17일 솜차이 총리 당선 직후만 해도 분위기가 이 정도로 험악하지는 않았다. 솜차이 총리는 PAD 지도자인 손티 등과 전화 통화를 하는 등 유화적인 몸짓을 했고, 두 진영은 군 장성 출신 부총리 차왈릿 용짜이윳을 통해 대화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하지만 PAD 지지자들이 솜차이 총리의 지방 시찰길 곳곳에 나타나 방해 시위를 벌이면서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이어 지난 10월3일엔 PAD의 ‘2선 지도부’ 중 한 사람인 차이왓 신수웡이 경찰에 체포되면서 대화판이 깨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월5일 PAD 지도부의 ‘핵심 중 핵심’인 참롱 스리무앙 전 방콕 시장이 투표장을 찾았다가 전격 체포·구속되면서 파국을 맞게 됐다. ‘직접투표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PAD의 지도부가 시장 선거를 위해 체포를 감수하고 나선 것도 뜨악하지만, 이미 지도부가 체포되기 시작한 시점에 경호원조차 없이 보란 듯이 투표장을 찾은 것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이날 카메라 세례를 받아가며 투표를 마치고, 현장에 있던 경찰에게 거수 경례까지 받은 참롱 전 시장은 미소를 지으며 붙잡혀갔다. 한 경찰 관계자는 “반역죄로 수배령이 내려진 사람이 제 발로 걸어왔는데, 만약 체포를 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를 했다고 비판받을 게 뻔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와 때를 같이해 탁신 전 총리가 영국에서 ‘정치 난민’ 신청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PAD 시위대의 행동은 더욱 거칠어졌다.

유유히 웃으며 나타난 ‘수배자’

앞선 두 차례 툴라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기이하게 뒤섞인 PAD는 그렇게 세 번째 툴라의 불을 밝혔다. 눈길을 끄는 건 시리킷 왕비가 10월7일 오전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 직후 부상자 치료에 쓰라며 10만밧을 기부했다는 점이다. 이는 PAD에 대한 암묵적 지지 선언으로 읽힌다. 이날 저녁 무렵엔 ‘질서 유지’를 내세운 군부의 트럭 4대가 방콕 도심에 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 쿠데타는 없을 것”이라던 군부가 다시 탱크를 몰고 들어올 가능성을 점치는 이들도 있다. 과거를 교훈으로 삼지 못한 타이 역사의 다음 장이 궁금해진다.

방콕(타이)=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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