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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안티조선? 안티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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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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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표적인 우익지 <빌트>와의 전쟁… 최근 사진조작으로 논쟁 확산

사진/ 원본 사진에 의하면, 왼쪽은 이동 확성기를 잡고 있는 한 시위자의 손장갑이고 오른쪽은 밧줄이다.
1968년 독일 우익 언론·출판사의 대표격인 슈프링어(Springer)사가 발행하는 주간지 <빌트>(Bild)는 “학생들 사이에 있는 폭력세력을 근절하자”며, 당시 학생운동세력과 첨예한 대립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급기야 “빌트 입 다물라”를 외치며 슈프링어사 베를린지부로 몰려든 학생 및 좌파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이 회사 건물이 불타올랐다. 이 불타는 슈프링어사 사진은 현재까지 68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사민-녹색 연정에 포문을 열다

사진/ 문제의 시위 사진. <빌트>에 의하면, 왼쪽에 쇠사슬 절단기, 오른쪽에 쇠파이프가 있다.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환경부 장관 트리틴.
70년대 후반에는 <빌트>에 대항하는 ‘안티 빌트’라는 시민단체가 형성되어, 이들이 주도하는 ‘빌트? No Thank You’라는 스티커 붙이기 운동이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큰 공감을 일으키며 <빌트>의 판매부수를 급격히 절감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슈프링어사에게 현 사민-녹색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68세대 출신 녹색당 각료들은 못마땅한 존재임이 분명할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난해 12월 슈프링어사는 <빌트>의 편집장을 36살의 디크만(Diekmann)으로 교체하며 현 정부에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디크만의 편집장 취임과 함께, 독일 외무장관 요시카 피셔가 과거 68운동 시절, 동료들과 함께 한명의 경찰을 구타하는 사진이 <빌트>에 의해 공개된 것이다. 야당인 기민·기사당은 이를 기회삼아 콜의 정치자금으로 상처받은 자신들의 지지율을 만회하려는 듯, 피셔 장관의 사퇴를 주장하며 현 정부에 대대적인 공세를 가했다. 디크만이 초년병 기자였던 시절,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는 그에게 수차례 단독인터뷰를 허용하면서, 디크만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다. 뒤에 콜이 선거에서 패배했을 때, 디크만은 곧바로 콜의 자서전 저술에 뛰어듦으로써 이에 보답했다. 콜의 정치야사는 디크만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언론계의 정설이다. 마침내 디크만이 독일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대중 주간지인 <빌트>의 편집장이 되었을 때, 일간지 <타츠>(TAZ)는 “디크만, 아버지 콜의 명예회복에 나서다”라며 그의 화려한 데뷔를 묘사했다. 또한 검찰이 콜의 정치자금 수사를 ‘벌금 추징’으로 종결하자, 슈프링어사 소속 <베를린 모르겐 포스트>는 ‘콜, 무죄’라는 기사를 1면에 다루며 콜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표현했다.


이러한 우향우 행진을 계속해온 슈프링어사는 최근 자충수를 두고야 말았다. 1월29일치 <빌트>는 94년 7월 괴팅겐시에서 벌어졌던 시위에서 웃으며 행진중인 현 연방환경부 장관 트리틴의 사진을 1면에 게재했다. “환경부 장관! 이 폭력시위 속에서 뭐하세요?”라는 제목의 사진 속엔 검은 두건을 두른 시위대의 모습이 사뭇 위협적으로 비친다. <빌트>는 사진글을 통해 당시 쇠파이프와 쇠사슬 절단기로 무장한 극렬분자를 포함한 3500여명이 검찰의 좌파 운동단체 사무실에 대한 수색영장 발부에 항의하는 시위를 가졌다고 보도했다. <빌트>는 친절하게도 빨간색 화살표를 통해 독자들에게 쇠파이프와 쇠사슬을 찾는 수고마저 덜어주고 있다. 이 문제의 사진은 <빌트>가 한 방송사의 보도자료에서 가져와 약간의 ‘손질’을 거쳐 게재한 것이다.

밧줄을 쇠파이프로 손질?

그러나 쇠파이프로 지칭된 물체는 한 시위대가 녹색당 및 사민당 시위 참여자와 자신들의 경계를 짓기 위해 둘러놓은 밧줄이었고, 절단기라고 주장된 물체는 자동차 위에 손을 올리고 있는 한 시위자의 장갑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빌트>의 사진 조작에 대한 비판과 책임추궁이 빗발쳤다. <빌트>는 며칠 뒤 짧은 사과문과 함께 다른 사진과 비디오를 검토한 뒤에야 자신들의 판단이 실수였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발뺌을 했다. 이에 독일 최대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은 “단순한 실수를 운운하는 것은 위선적인 행위이다. 밧줄과 장갑은 <빌트>가 게재한 사진에서도 분명히 식별이 가능한 것으로, 이는 명백한 의도를 가진 조작이 분명하다”라는 견해를 밝히며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좌파신문 <타츠>는 이번 조작사건을 1면 전면을 할애하여 보도하면서, <빌트>와의 투쟁을 촉구하고 나섰다.

베를린=강정수 통신원 jskang@we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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