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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다국적 재벌언론’의 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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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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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구조가 가장 큰 문제인 아프리카 언론… 진보언론은 해외에 근거지를 뒀다

사진/ 다국적 기업들이 지배하고 있는 아프리카 언론은 권력자와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람베(harambee)행사를 주도하고 있는 케냐의 모이 대통령.
언론의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 정도와 정치지도자의 집권기간이 반비례한다는 것은 거의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절대권력이 절대부패하지 않도록 언론은 항상 비판정신을 견지하고 권력에 대한 파수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케냐의 초대대통령이었던 조모 케냐타가 사망하자 부통령으로서 대권을 승계받아 23년간 권력을 유지해온 모이 대통령은 아프리카에서도 장기집권하고 있는 정치지도자 부류에 속한다. 모이 대통령의 이런 장기집권은 언론이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케냐 주요언론의 소유구조가 큰 문제로 지적되곤 한다.

언론사주의 ‘재갈물리기’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케냐의 언론은 외양상 상당한 자유를 누리고 있는 듯하지만 실은 권력과의 전략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몸집을 불려나가는 내부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권력에 대한 정면비판은 흔치 않다. 권력과 제휴하고 있는 언론사주와 편집자의 의도가 편집과정에 반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케냐의 3대 일간지 중 <케냐타임스>는 집권 케냐아프리카민족동맹(KANU)당의 기관지이고 <이스트 아프리칸 스탠더드>는 거대다국적기업인 론로(Lonrho)그룹 소유이며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데일리 네이션>은 아가 칸(Aga Khan)미디어그룹 소유이다. 유력언론들을 모두 정부나 정부와 모종의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데일리 네이션>의 언론사주인 아가 칸은 이슬람 시아파의 자유주의자들로 결성된 이스마일종파의 영적지도자로서 케냐 내에 호텔, 롯지, 학교, 병원 등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권력을 잡고 있는 정치지도자들과의 제휴가 불가피하다. 사주인 아가 칸이 직접 개입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언론이 어떤 논조를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재직하고 있는 언론인들이 사주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자명하다. 케냐의 저명한 언론인인 필립 오치엥은 자신의 저서인 <언론을 고발한다>에서 신문사의 경영진과 편집진은 사주가 제시한 기본원칙에서 벗어나면 사주가 개입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사주가 제정한 ‘편집목적’에 부합하는 글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집권세력이 언론인들에게 재갈을 물리기도 하지만 언론인 스스로 알아서 재갈을 무는 경우가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케냐에서도 지난해부터 상당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텔레비전 풍자극에서 모이 대통령이 코미디의 소재로 등장함으로써 권력에 대한 신화를 무너뜨리는 등 대중의 인식변화에 커다한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풍자극을 용인하고 있는 정치권이 언론의 비판에 진정으로 관용적인지는 의문이다. 집권세력이 부추긴 종족간 분쟁문제를 파헤친 언론인을 구속하고 간행물에 대한 압수나 탄압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케냐의 언론은 아직도 험로를 지나고 있다.

<아프리카 콘피덴셜>의 철저한 익명보도

아프리카 각국의 언론자유가 폭넓게 보장되지 않는 까닭에 양심적 지식인들은 해외를 근거지로 삼아 국내에서 다룰 수 없는 문제들을 폭로하곤 한다. 영국에서 발행하고 있는 <아프리카 콘피덴셜>이 그 대표적인 매체이다. <아프리카 콘피덴셜>은 아프리카에서 급속한 탈식민지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1960년에 창간되어 아프리카 각국에서 발생하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제반분야의 상황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보도함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프리카의 상황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지침적 매체로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아프리카 콘피덴셜>의 보도원칙 중 주목되는 점은 정부나 관영매체의 발표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사건의 진실에 근접하려는 자세를 항상 유지함으로써 보도의 객관성과 정확성을 제고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른바 ‘권력의 회랑’(corridors of power)에서 전개되고 있는 암투와 역학관계를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다. <아프리카 콘피덴셜>은 아프리카 각국에 취재원과 전문가를 보유하되 이들을 취재활동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이나 탄압으로부터 보호해주기 위해 취재원의 익명 보도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진보적 매체가 ‘익명성의 원칙’을 고수한다는 것은 아프리카에서 언론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폭넓은 언론자유의 실현을 가로막는 또다른 요인으로는 높은 문맹률, 언론매체의 도시집중화, 유능한 언론인력의 부족 등을 꼽을 수 있겠다. 결국 아프리카의 언론인들은 이러한 난제 극복과 언론자유의 실현이라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헨트=양철준 통신원 YANG.chuljoon@wanad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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