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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오 마이 독립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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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05-0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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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일한 좌파 독립 언론 <파시피카>의 시련… 이윤 노리는 경영진 압력으로 제작진 대량 해고

사진/ 경영진의 압력에 대항해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는 <파시피카 라디오>산하 〈KPFA〉의 팸플릿.
독립된, 자유 언론이라는 실험이 50년 만에 좌초해가고 있다. 미국 내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유일한 비영리 독립 전국 라디오 방송망인 <파시피카 라디오>(Pacifica Radio) 네트워크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경영진은 재정난 타결과 사세확장을 위해 좀더 온건한 논조를 내세우며 이른바 ‘급진적’인 PD와 리포터들을 잘라내고 있고 이에 대해 방송국 직원들과 청취자들이 합세해 언론자유를 말살하는 행위라며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

청취자들이 분노했다

지난 28일 뉴욕에서는 이 네트워크의 5개 산하 지역방송사 중 하나인 에서의 언론자유 탄압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 방송사가 “Democracy Now!”라는 정치시사 대담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애미 굿맨에 대한 해고(해고 전에 굿맨에게 프로그램 내용을 경영진과 사전 협의할 것을 요구했으나 굿맨은 ‘검열’이라며 거부했다)했을 뿐만 아니라, ‘무모하게도’ 이와 관련된 자기 회사의 문제를 보도하던 방송을 도중에 중단시켜버리고 담당 프로듀서를 해고했다고 항의했다. 문제가 된 이 방송프로그램에서 전화대담 도중 경영진이 문자 그대로 ‘플러그를 뽑아버리는’ 바람에 때아닌 봉변을 당한 사람은 이 지역 연방하원의원인 메이저 오웬스였다. 그는 며칠 뒤 연방의회 석상에서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과연 이 나라에 언론자유가 있는가 하고 개탄했다.


사진/ 경영진 방침에 반발하는 〈KPFA〉직원들의 시위.
이에 앞서 지난 99년 가을에는 역시 산하 방송사인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버클리시에 있는 에서 급진적인 대담프로그램 진행자를 전격 해고하고 이에 항의하는 직원들마저 해고한 뒤 회사 자물쇠를 바꿔 아예 출입을 금지시켰다. 이 네트워크의 발상지이기도 한 버클리시에서는 1만5천여명의 청취자들이 대규모 항의시위를 벌여 경찰이 출동하고 수십여명이 체포당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산하 5개 방송사에서 해고 및 자진사퇴를 합쳐 네트워크를 떠난 베테랑 직원들만도 수십여명에 이른다. 해고자와 청취자들은 이 네트워크의 주요 수입원인 기부를 보이콧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고 과거의 창립 이념을 중시하는 소수파 이사회 멤버들은 법원에 다수파 이사회 멤버의 정통성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오보라고 주장하거나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특정 단체가 언론매체에 항의하는 경우는 자주 있지만 청취자들이 자신이 듣는 매체의 성격이나 위상 변화에 대해 시위를 벌일 정도로 반응하는 것은 미국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파시피카 라디오> 네트워크는 지난 1949년 반전 평화운동가인 루이스 힐에 의해 세워졌다. 처음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조그만 지역 방송사로 출발했으나 그뒤 로스앤젤레스, 뉴욕, 워싱턴, 휴스턴 등 5개 도시에서 자체 방송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의 프로그램 중 일부를 받아 방송하는 라디오 방송사가 전국에 40여개에 이른다. 루이스 힐의 이념은 언론이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유롭기 위해서는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체의 상업적인 광고방송 없이 순전히 청취자와 지역공동체의 자발적인 협조에 기반을 둔 비영리 매체로서의 방송사였다. 방송사의 모든 예산은 청취자의 기부에 의존하며 지역마다 청취자들로 구성된 조직이 있다. 주요 청취자층은 50년대부터 시작된 전통적인 시민권 및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소수민족들이다. <파시피카>는 유일한 독립방송망이면서도 동시에 권력과 자본의 눈치를 보지 않는 ‘좌파’ 매체로 알려져왔다. 이미 지난 50년대에 동성애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했고(당시로서는 거의 혁명적인 일이었다), 지난 70년대 2차 중동전 때에는 미국 언론으로서는 유일하게 테러리스트 단체라며 서구에서 일방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던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전선의 견해를 보도하기도 했다. 레이건, 부시 행정부 시절의 이란-콘트라게이트에 대한 집중 보도로도 유명하고 지난 클린턴 행정부에 대해 ‘개혁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비판을 한 사실상 유일한 방송매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성향과 독특한 운영방식 때문에 그동안 미국의 대표적인 ‘대안언론’으로 평가받아왔다.

변질돼버린 경영진의 음모

사진/ 〈KPFA〉직원들은 텐트를 치고 장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 <파시피카>의 갈등은 단지 내부의 이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지난 60년대 이후 <파시피카>는 내부에서 여러 세력들이 네트워크의 앞날을 두고 갈등해왔다. 그러나 뉴욕시의 언론감시 모임의 스티브 랜달의 말을 빌자면 그 갈등은 이른바 ‘진보진영 내부의 편차’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성격이 다르다. 방송사 내부에, 더 정확히는 상층 이사회에 “라디오방송사나 공동체, 진보적 정치 따위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세력들과의 갈등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일단 먼저 청취자 수를 늘려야” 하며, 그 논리적 귀결은 “급진적인 색채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워싱턴시에 있는 산하 방송사가 그같은 경향의 성공적 사례로 이사회의 주류에서 꼽고 있는 곳이다. 이 방송사는 이데올로기적 색채를 누그러뜨리다 못해 완전히 탈색시켜버렸다. 지금은 대부분의 편성시간이 재즈 음악방송으로 채워져 있고 지역 뉴스라고는 아침 시간에 서너꼭지가 전부이다. 그러나 이 방송국의 청취자 숫자는 과거에 비해 2배가량 늘었고(기존의 청취자들은 떨어져나갔지만) 기부헌금 또한 그만큼 증가했다. 워싱턴 교외의 상층 흑인 중산층들이 이 지국의 주요한 청취자들이다. 휴스턴 지국도 이 노선을 따르고 있다.

이에 반해 뉴욕,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지국에서는 과거의 경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우리가 제대로 한다면 청취자는 늘어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제대로’라는 의미에는 미국 내에서의 민주주의, 제3세계에 대한 관심, 소수민족, 노동운동 등 ‘진보적’인 내용을 의미한다. <파시피카 라디오>에 대한 책을 펴낸 매튜 라사는 “걸프전 당시 이에 비판적이었던 방송프로그램의 청취율이 급상승했던” 예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보수화되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이같은 내용은 점점 더 소수파로 남을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단지 진보와 보수 이상의 문제가 숨어 있다. 이 비영리 방송사를 세웠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문제, 바로 연간 예산은 5개 방송사를 다 합쳐도 1천만달러도 안 되지만 방송송출권 권리금은 그 몇배, 많게는 5억달러에 달한다는 엄청난 ‘자산’의 문제가 걸려 있는 것이다. 인수합병이 돈이 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네트워크는 굴러다니는 황금덩어리와 다를 바 없다.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서서히 변질되기 시작한 이사회는 급기야는 지난 95년 정관 변경을 했고 당시의 이사회 의장이던 마리 프랜시스 배리(현재 미 정부산하 시민권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때부터 노골적으로 기업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배리의 추천으로 신임이사가 된 존 머독(이번 사태의 주동자로 지목되고 있다)은 ‘노조 파괴’로 유명한 ‘엡스타인, 베커 앤 그린’이라는 법률회사의 소송전문 변호사로 사실상 방송사는 자신들이 비난하는 대표적인 종류의 인물을 상관으로 두고 있는 셈이다.

“미국 민주주의의 재난이다”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친기업적 주류 멤버들은 다른 거대 방송네트워크와의 인수합병을 통해 거대재단으로 발돋움하려 하고 있으며 지금의 성격 전환은 바로 그 첫 단계라는 것이 시위자들의 주장이다. 여기에는 미국 방송위원회의 규제조항상 방송국의 인수합병에는 청취자들의 반대가 있으면 의무적으로 공청회를 열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사전에 기존의 골치아픈 청취자들을 떼어내려는 공작이라는 것이다. 지난 4월 초에는 금융재벌인 씨티그룹의 부회장을 새로운 이사로 맞이하려다 월스트리트에서 시위를 벌인 청취자 시위대들 때문에 후보자 본인이 자진 사퇴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파시피카 라디오>의 진통은 단지 한 방송사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변화하는 미국 금융자본주의 사회·경제적 현실 속에서(90년대 이후 대부분의 미국의 신디케이트 언론은 기사가 나가기 전에 주요 광고주에게 사전 검열을 받고 있다) 청취자들을 가장 큰 무기로 싸우고 있는 대안언론의 이념이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시금석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엄 촘스키와 함께 <동의의 생산>을 지은 에드문드 허만은 시위장에서 “<파시피카>를 잃는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재난”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파시피카>는 미국에서 유일한 독립언론이며 좌파지향의 언론”일 뿐만 아니라, “그 창립이념은 청취자의 규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주고 반대의견을 가능케 하는 데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뉴욕=이공순 통신원 ksl21@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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