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수준 높아지면서 “전통적 여성차별문화에 질렸다”는 반발심도 한몫
일정한 평화와 정치적 안정감이 생긴 캄보디아에는 요즘 ‘국제결혼’이 두드러진 사회현상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이 현상은 오랜 기간 내전에 시달리며 사회·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시민들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심리와 더불어, 최근 세상을 휩쓸고 있는 ‘세계화’의 추세가 뒷심으로 작용한 것처럼 보인다.
전통적으로 캄보디아사회는 국제결혼에 대해 탐탁찮게 여겨왔다. 주로 언어장벽과 종교적 이질성 또는 문화·인종적 차별성 같은 것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탓이었고, 특히 그 대상이 베트남 사람이라면 모두 손사래를 칠 정도였다. 별나게 베트남 사람을 꼽는 건, 해묵은 지리적·정치적 분쟁에 따른 전통적인 대베트남 ‘적개심’ 탓이다. 그러나 최근의 현상은 굳이 국적을 따질 것도 없이 누구든 상관없다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느냐”와 “얼마나 풍족해질 수 있느냐” 이 두개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옛날과 비교해 도를 넘었다?
현재 캄보디아에서는 국제결혼이든 뭐든 헌법상으로는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따라서 캄보디아 시민들 입장에서는 국제결혼에 대한 아무런 제한이 없다. 다만 혼인 대상자의 국가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따져보면, 약 30년 동안 계속된 내전과 외국의 침략으로 황폐해진 캄보디아는 현재 전체 인구 1200만 가운데 거의 36%가 절대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현실은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면 어떤 길이든 간다”는 대중적인 의식형성의 배경이 되어왔다.
이런 의식 속에서 캄보디아 시민들에게는 ‘외국’, ‘외국인’이라는 대상이 생존문제 해결의 첩경으로 여겨져왔다. 외국으로 살길을 찾아가든, 외국의 친척들이 돈을 보내오든 어쨌든 외국을 가장 손쉬운 해결책으로 믿었다. 이런 사회심리는 한발 더 나아가 최근 붐을 일으키고 있는 국제결혼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수도 프놈펜시 인구조사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1998년 392건이었던 국제결혼이 2000년에는 921건으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프놈펜시의 호적부를 꼼꼼히 들여다본 결과, 국제결혼의 방식은 주로 캄보디아 여성이 미국·프랑스·오스트레일리아·캐나다 남성과 짝을 맺는 것으로 드러났다.
“옛날과 비교해 요즘 국제결혼이 도를 넘어선 게 아닌지 염려스럽다.” 53살 먹은 프놈펜시 호적담당국장 욱 캥이 드러낸 불편한 심기다. 현재 캄보디아의 국제결혼은 대부분 전쟁을 피해 미국과 프랑스·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났던 100만명이 넘는 재외 가족들의 주선으로 이뤄지고 있다. 요즘 캄보디아 여성들이 국제결혼을 선호하는 까닭은 경제적인 이유가 크게 작용한 게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캄보디아 남성과 사회가 지닌 여성차별에 대한 반발심 상승이 빼놓을 수 없는 배경으로 보인다.
“크메르루주 정권 시절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다. 남성들이 여성을 학대하는 데 평생 질려 살아왔다.” 딸 셋을 둔 쁘리압 세다(54)는 자신의 경험을 딸들에게만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국제결혼에 대한 희망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우리가 겪었던 일을 생각해볼 때, 적어도 내 딸 가운데 한둘 아니면 차라리 셋 모두 외국인과 결혼해서 외국에 가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가 하면, 세계화의 추세는 닫혀 있던 캄보디아 시민들에게 심리적으로 ‘자유’와 ‘권리’에 대한 개인적인 의식을 확대시키며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경향을 만들어왔고, 한편으로는 시민들에게 외국을 드나들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해왔다. 가령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간다거나 각종 국제회의에 초청받는다거나 심지어 관광 교환프로그램 같은 일들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세계화의 풍조들이 국제결혼을 장려했거나 적어도 쉽게 용인하는 사회적 배경으로 작용했고 시민들에게는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필자는 국제결혼을 별로 달갑잖게 여겨온 캄보디아의 젊은이 가운데 하나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부정할 만한 꼬투리도 별로 없었던 게 정직한 고백이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존문제가 걸린 캄보디아의 현실을 바로 본다면, 누가 보다 나은 삶을 찾아 길을 떠나는 이들을 말릴 수 있겠는가. 여기다 국제결혼으로 집을 떠난 이들이 부쳐오는 현금은 기아에 허덕이던 가족들의 밥이 되고 또 생산기반이 전무한 캄보디아사회의 젖줄이 되는 것을.
국제결혼은 또한 지난 30년 동안 폐쇄되었던 캄보디아사회에 숨통을 열어주는 관문 노릇을 하고 있다. 이들이 경험한 국제사회의 흐름과 이들이 배운 고급 기술, 이들이 사귄 세계의 친구들은 30년 전쟁으로 황폐해진 캄보디아에 새로운 문화를 전파하면서 또 사회개발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부모를 모시기 위하여…
“가족들을 도울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전쟁통에 울고만 지냈던 지난 시절을 되돌아보면, 모든 게 행복하고 즐거울 뿐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남자와 결혼한 뒤 현지 은행에서 일하다 최근 고향을 찾은 치아반다(36)는 미래에 대한 희망에 젖어 있다. “내가 배운 영어, 내가 배운 전문적인 금융업을 조국에 전하고 싶다. 남편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게 정직한 현실이다. 국제결혼에 대한 빈정거림도 가자미눈으로도 볼 수 없는 현실일 뿐이다.
캄보디아를 포함한 대부분 아시아에서는 부모들이 죽을 때까지 자식들을 돌보는 것이 관습이었지만, 현재 캄보디아의 경우는 자식들이 부모들을 돌보는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생산이 없고 따라서 직업이 없는 캄보디아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부모를 모실 수 있는가? 여기에 최근 폭증하는 국제결혼의 또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는 뜻이다.
캄보디아, 아무것도 없는 이 땅에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국제결혼한 이들이 행복하게 잘살 수 있도록 기도하는 일만 남았다.
푸 키아(Puy Kea)/ <교토뉴스> 프놈펜 특파원

사진/ 외국인 남성과 데이트를 즐기는 캄보디아 여성. 캄보디아에서 국제결혼은 생계문제 해결의 첩경이다.(SI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