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가르흐와 끝없는 공방 벌이던 푸틴, 〈NTV〉 융단폭격으로 국영화
“요즈음 텔레비전 보는 재미가 없다. 한창 잘 나가던 방송사의 유명 프로그램들이 방영 중단되면서 볼거리를 찾기 힘들다.” 가스프롬과 러시아 민영방송 간의 분쟁이 계속 확산되면서 일반 시청자들의 불평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베레조프스키·구신스키 옛 영화는 없다
최근 사태는 표면적으로는 경영권을 둘러싼 채권자와 채무자간의 분쟁으로 요약된다. 지난 수년 동안 는 국영 가스프롬사에 2억1160만달러의 채무가 있었는데 그 청산을 위해 담보로 잡혀 있는 자사 주식 19%를 채권자 ‘가스프롬 미디어’에 양도함으로써 사실상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이로써 러시아의 대표적 올리가르흐인 블라디미르 구신스키가 소유하고 있던 는 사실상 국영화되었다. 그 결과 푸틴은 그간 눈엣가시처럼 여겨오던 를 장기적으로 국가통제하에 둘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지난 4월3일 유명 시사분석 프로그램 <이토기> 진행자이면서 사장직을 겸했던 예브게니 키실레프가 해임되고 그 대신 미국시민권자인 니콜라스 요르단(러시아 이름 보리스 요르단)이 사장으로 임명됨으로써 형식상 마무리된 이 사건은 그간 언론재벌 블라디미르 구신스키에 대한 정부쪽의 집요한 공작이 일단락되었음을 의미한다. 옐친 시절 내내 권력과 밀월관계를 이루며 무소불위의 영화를 누리면서 때로는 권력을 막후조종했던 올리가르흐 전반에 대한 푸틴의 대대적인 압박정책이 실효를 거뒀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전문가들도 있고 권력에 의해 자행된 ‘언론탄압’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미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와 의 사실상의 소유자인 ‘또 하나의 언론재벌’ 보리스 베레조프스키로 하여금 자기소유 주식의 대부분을 국가로 양도하도록 업력을 넣은 바 있다. 한때 두마 의원 자격으로 ‘반푸틴당의 창설’ 등을 외쳤던 베레조프스키의 시도는 단발로 그치고 결국 이 사건도 조용히 흐지부지 푸틴의 승리로 끝났다.
정부의 에 대한 악감정은 사실 소속 기자들의 반정부적인 보도성향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94년 제1차 체첸전 당시 다른 매체와는 달리 유독 만이 개전 초기부터 러시아의 군사행동에 대한 부당함을 설파했고, 전쟁과정에서 속속들이 드러나는 인권파괴현장과 부당한 양민 살해 등 정부쪽으로서는 숨기고 싶은 장면들을 여과없이 방영하곤 했다. 그해 12월 초 드디어 검찰은 구신스키의 경호원과 운전사를 불법억류함으로써 최초로 방송사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위협을 느낀 구신스키는 가족과 함께 해외로 피신해야 했다. 에 대한 정부의 파상적인 공격은 다음해인 1995년에도 지속되었는데 이를테면 인형을 이용해서 권력의 부당함을 고발해왔던, 한창 인기를 끌던 대표적인 시사풍자극인 <쿠클르>의 방영을 금지하려는 시도도 한때 여론을 시끄럽게 한 적이 있다.
한편 1999년 8∼9월에 제2차 체첸전이 발발하고 바로 그 해에 있은 러시아 국가의회인 두마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간 갈등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체첸전을 보도하면서 는 예전과 같은 논조로 정부를 비난해왔고 친여성향 후보에 대해 지원성 보도를 요청해온 정부의 부탁을 “1996년에 옐친을 지원했던 것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며 보기좋게 거절했다. 선거전 방송에 임하면서 오히려 한술 더 떠 친여 성향 후보들에게 집중적으로 곤란한 질문만을 던져왔던 의 방송태도는 정부의 악감정을 더욱 자극할 수밖에 없었다.
테드 터너 인수도 실패
권력이 불편한 심기를 본격적인 행동으로 옮기게 된 것은 지난해 5월 푸틴이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부터이다. 푸틴은 취임 직후 를 포함하여 일간 <시보드냐> <코메르산트 데일리> 등 러시아의 대표적인 언론매체를 포괄하고 있는 언론그룹 ‘미디어 모스트’ 회장 블라디미르 구신스키를 사기죄로 전격 체포, 구금하는 것을 필두로 올리가르흐에 대한 대규모 수술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푸틴은 당시 유리 루쉬코프 모스크바 시장까지 가세, 구신스키의 조속한 석방을 촉구하는 여론의 압력에 밀려 구금 3일 만에 해외로 나가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석방하는 것으로 양보해야 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 구신스키가 스페인 검찰당국에 의해 사기죄 명목으로 체포되면서 다시 위기가 고조되었다. 이 사건은 결국 러시아 대검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이번에는 검찰뿐만 아니라 국세청도 압박작전에 가세했다. 러시아 국세청은 구신스키 산하 언론계열사들이 세금지불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 계열사들을 청산하도록 중재재판소에 신청했다.
올해 들어 몇개월간 법정공방이 지겹도록 반복되어오는 동안 미디어 모스트쪽은 나름대로 ‘ 살리기’를 모색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자사의 부채를 탕감하고 방송의 국유화를 방지하기 위해 문제가 되고 있는 19%의 자사주식을 외국자본에 판매한다는 아이디어였다. 한때 90년대 초에 유사하게 를 인수하려다 실패를 맛보았던 미국 창립자이자 타임워너사 부사장인 테드 터너가 이번에도 뛰어들었다. 여기에 러시아 올리가르흐의 ‘큰 형님’ 베레조프스키도 가세했다. 선언의 성격에 그치고 말았지만 어쨌건 그는 2월 초 “ 사태는 러시아의 언론자유 보장이라는 사회 이해관계의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디어 모스트가 지고 있는 채무를 자신이 구매하고 긴급한 운영자금조달을 위해 추가로 5천만달러를 신용대출해줄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3월 초 대검이 사태의 조속한 마무리 차원에서 구신스키건 조사를 더욱 강도높게 실시할 것을 천명하는 가운데 모스크바 중재재판소는 문제의 19%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박탈하고 압수조치를 취했다. 이 조치는 사실상 이 주식의 판매 금지 결정과 같은 것으로 이로써 그간 간헐적으로 살리기 차원에서 협상중이었던 외국자본과의 투자유치 움직임 등 외부자본의 유입가능성은 원천봉쇄되었다. 이제 의 운명은 언제 가스프롬으로 넘어가느냐,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자단들의 언론자유는 얼만큼 보장될 것이냐는, 절박한 물음에 직면하게 되었고, 이 즈음에서 러시아 기자협회는 3월 말에 푸슈킨광장에서 언론자유수호 결의대회를 가질 것을 천명하였다.
지난 4월3일 드디어 새 경영진이 가스프롬사에 의해 임명되었고 기자단 전원은 새 지도부 거부운동에 돌입했다. 그러나 10일간의 공방전 끝에 타티아나 미트코바 등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다른 방송사로 자리를 옮겼다. 전 사장 키실레프는 사장직을 맡으면서 자신의 인원들을 데리고 갔다. 일부 주요뉴스진행자 등은 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압적인 정부 태도에 대한 비판도
지난 14일부터 전격적으로 업무개시를 선언한 알프페드 코흐 회장 및 보리스 요르단 사장을 정점으로 하는 NTV 새 경영진과 방송사의 앞날에 대해서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어쨌건 이번 사태로 러시아에서 옛 올리가르흐 세력은 확실히 약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푸틴을 지지하지 않았던 구신스키에 대한 권력의 집요한 공격, 그 과정에서 그간 여론에서 가비교적 중립적이라 평가되었던 의 기존 경영진과 기자진이 대폭상처를 받으면서 푸틴의 올리가르흐에 대한 공격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와 함께 사태의 전모가 어떻건간에 인력의 대거이동은 는 물론이고 다른 방송사에서의 인사이동, 기존 방송 프로그램의 변경 혹은 철회 등의 급격한 조치들로 이어질 것이고 그에 따라 당분간은 정상적인 방송이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이같이 이번 사태의 파장은 정부와 언론권력의 싸움이라는 한도를 넘어서 러시아 언론체계 전체의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러시아 언론재벌들은 옐친 시절 크렘린에서 다른 올리가르흐들과 정기적 회합을 가지며 러시아 경제를 주물러왔고, 불법정치자금 조성에도 한몫했다. 러시아 경제를 망친 주범이 바로 그들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최근 사태에서 푸틴의 지나치게 강압적인 태도는 지식인들의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상트페테르부르크대 한국학과장 아나톨리 바실리예프 교수는 “과거 한국의 <조선일보>와 같이 절대권력에 복종적인 언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인 이번 조치야말로 푸틴의 그간 정책 중에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조치”라고 짤막하게 논평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박현봉 통신원 parkhb_spb@yahoo.com

사진/ 푸틴은 계속적으로 올리가르호를 압박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베레조프스키의 주식을 국가로 양도하게 한 것도 그 실례이다.(SIGMA)

사진/ 미디어 모스트의 소유주인 구신스키는 두마 의원직을 가지고 있던 베레조프스키보다 더욱 비참한 퇴락의 길을 걸었다.

사진/ 〈NTV〉직원들의 농성장면. 그들은 자신들의 회사가 국영기업 가스프롬에 인수되는 것은 명백한 언론탄압이라 비판한다.(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