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전자방사능으로 고통받던 체사노 주민들의 작은 승리
거의 100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기자회견장을 빽빽이 채우면서 지난 4월10일 예정된 이탈리아 환경부 장관의 중대발표를 취재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전개될 이탈리아 정부와 바티칸의 대결을 결정지을 역사적인 순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후 다섯시 반으로 예정됐던 기자회견은 일곱시로 연기되었고 다시 여덟시로 연기되었다. 당시 회견장 위층 환경부 장관실에서는 장관과 바티칸쪽의 마지막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김이 빠져서 돌아가는 기자들도 간혹 눈에 띄었지만 대부분은 두 시간 반 동안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 이탈리아 TV방송사 기자는 “이탈리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이래 바티칸과의 역사상 최초의 충돌”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환경부 장관이 들어서면서 순식간에 회견장은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그의 발표의 요지는 “막판협상을 몇 시간 진행했지만 가톨릭쪽에서 언제 어느 정도로 라디오전자방사능을 낮추겠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48시간 동안 협상시간을 주겠으나 이를 넘길 경우 월요일(4월16일)에 바티칸 라디오송신탑의 전원을 끊겠다”는 최후통첩이었다. 사실 윌러 보르돈 장관의 발표는 대부분 이탈리아 기자들의 ‘적정선에서의 타협’이라는 예상을 뛰어넘는 강경한 입장이었기에 회견장은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바티칸쪽의 입장을 대변하는 TV기자가 항의성 질의를 한 뒤 고함을 지르면서 회견장을 빠져나가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12년 사이에 8명의 어린이 죽어가
바티칸라디오방송국의 송신탑들이 문제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벌써 몇년 전부터 송신탑들이 위치한 체사노 지역의 주민들은 라디오송신탑에서 방출되는 전자방사능의 피해를 각계에 호소해왔다. 환경단체나 언론에서 이 사실을 거론해왔으나 바티칸을 통해서는 사실상 아무런 해결책도 나오지 않았다. 급기야는 법에 호소하기로 결정한 주민들이 바티칸라디오방송국을 고소하면서 사태는 급진전되었고 이탈리아 정부가 개입하고 나섰다. TV방송, 인터폰, 전화 등에서 흘러나오는 바티칸방송은 컴퓨터작동중지 등 일상생활에서의 불편만 주는 것이 아니다. 거의 12년 사이에 8명의 어린이들이 전자방사능에 의한 백혈병으로 죽어갔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이탈리아 국민들을 엄청난 충격과 분노로 몰아넣었다. 송신탑을 지키던 경비원인 아버지가 암으로 죽자 그의 딸인 린다 판타넬라도 아버지의 암의 원인을 라디오송신탑에서 흘러나오는 전자방사능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역주민들은 라디오송신탑들을 철폐하고 피해보상을 해줄 것을 바티칸에 요구해왔다. 이 문제는 이탈리아 환경부의 개입으로 정치적 문제로 전환되었다. 이탈리아 정부와 바티칸 정부의 대립은 이탈리아 국민들의 민족성과 종교성이라는 문제로 발전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가톨릭신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에게 이탈리아 정부와 가톨릭교회의 대립은 혼란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계기로 이탈리아 국민들에 대한 바티칸의 영향력은 상당히 상실되었다. 바티칸라디오방송은 전세계 40여개의 언어로 방송을 내보내면서 세계 어디서나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강력한 전파를 발사해왔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1931년에 문을 연 바티칸라디오방송국은 1957년에 철도를 사이에 두고 체사노의 반대편에 위치한 ‘산타마리아 디 갈레리아’라는 지역에 송신탑을 세운 이후 현재까지 수십개의 송신탑을 세운 바 있다. 바티칸쪽은 이탈리아 환경부의 방침을 ‘불법’이라고 주장하면서 1957년 이후 이 송신탑 지역이 이탈리아법이 적용되지 않는 ‘치외법권지대’라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전자방사능의 방출량이 이탈리아법에서 규정한 양을 4배 이상이나 초과한다는 이탈리아 정부의 주장에 유럽연합의 기준치를 대면서 적법하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이에 환경부 장관은 “이탈리아 국민들의 건강을 해치는 ‘치외법권지역’은 있을 수 없다”고 대응해왔다. 바티칸은 이탈리아 국민들의 원망의 대상이 된 것을 의식하여 라디오송신탑의 출력을 낮추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계속 의사만 표시했지 실행은 전혀 되지 않았다.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환경부 장관이 4월10일 기자회견에서 더이상 미룰 수 없다면서 라디오송신탑들에 공급되는 전력을 차단하겠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바티칸라디오방송에 대한 로마 시민들의 의견은 대체로 하나로 모아졌는데 바티칸라디오방송이 종교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상업적’이라는 것이었다. 출간된 책소개에서부터 순례여행 등에 대한 소개를 통해 청취자들의 소비욕구를 북돋우는 역할에 방송이 치우쳐 있다는 얘기다.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의 광장을 지나서 은행들과 관광용품 가게들로 붐비는 대로를 따라가다가 끝나는 곳의 왼쪽편에 보이는 바티칸라디오방송국의 안테나. 이곳 방송국의 책임자인 롬바르디 신부와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바쁘다는 이유로 아예 구내전화통화도 거절하는 모습에서 필자가 느낀 것은 이탈리아 정부의 관료들보다도 더 관료적이었다는 것이다. “전파출력 9볼트로 낮추겠다” 이탈리아 정부와 바티칸의 대립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직접 피해를 당하는 주민들이다. 로마 중심가에서 기차를 이용해 북쪽으로 약 30분쯤 가면 도시를 완전히 탈출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탈리아 특유의 광활한 평원과 접하게 된다. 그러나 기차 안에서 보이는 시골의 푸르름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갑자기 나타나는 거대한 송신탑들의 숲을 지나치게 된다. 이 송신탑들은 기차 안에서 2분 이상이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꽤나 넓게 자리잡고 있다. 바로 이곳 송신탑숲의 반대편에 위치한 작은 도시가 체사노다. 주거인구가 약 1만명가량으로 대부분은 로마에 일터를 갖고 있는 통근자들과 넓은 땅에서 목축과 밀재배로 삶을 이어가는 농민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육군포병학교가 주둔해 있어 기차역은 훈련병들의 발걸음으로 언제나 분주하다. 이 작은 시골도시인 체사노가 유명해진 것은 라디오전자방사능이 백혈병을 유발시켜서 8명의 어린이들이 숨졌다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발표가 난 이후이다. 기차 안에서 로마에서 일한다는 한 회사원과 대화할 때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라디오송신탑에서 15km나 떨어진 곳에서 사는 그는 전화나 인터폰에서 바티칸방송이 흘러나오고 TV에서도 바티칸라디오방송이 흘러나와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체사노에서 백혈병에 걸려 고생했다는 네살된 아이를 찾았다. 플라비아라는 아이는 2년 전에 백혈병으로 수개월간 병원신세를 진 경험이 있다. 현재 많이 좋아진 상태인지 아이들과 뛰어놀 정도로 회복됐다. 그의 부모인 오구스토 로시(41)는 “아이의 백혈병이 바티칸라디오송신탑에서 방출된 전자방사능에 의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미 1988부터 99년 사이에 여덟명의 어린이들이 백혈병으로 숨진 사실과 지금도 몇몇 어린이들이 백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라디오전자방사능의 해악에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체사노 시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환경부 장관인 윌러 보르돈도 며칠 전 이곳을 방문하여 실제상황을 확인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월2일, 주민 200여명은 바티칸라디오방송국에서 집단시위를 벌였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라디오송신탑을 철폐하든지 다른 장소로 옮길 것을 방송국쪽에 강력히 요구했다. 이탈리아 환경부에서도 과학자들이 이 지역에 대한 피해를 조사한 결과 다른 지역들과 비교하여 백혈병의 발병정도가 훨씬 높게 나타났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발표하여 주민들의 주장에 과학성을 부여했다. 지난 4월14일 이탈리아 환경부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바티칸방송국에서 전파출력을 9볼트로 낮추겠다는 것과 중파방송을 하루에 7시간 동안 중단하여 지역주민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함에 따라 협상이 타결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것은 사실상 이탈리아 국민들의 승리”라고 그 의의를 전했다. 로마=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사진/ 부활절을 기념하기 위해 바티칸시티 광장에 모인 시민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톨릭 신자로 살아가는 이탈리아인들에게 이탈리아 정부와 바티칸의 대립은 혼란을 안겨주었다.

사진/ 바티칸라디오방송국의 송신탑. 전세계 40여개의 언어로 방송을 내보내면서 세계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강력한 전파를 발사해왔다.
지역주민들은 라디오송신탑들을 철폐하고 피해보상을 해줄 것을 바티칸에 요구해왔다. 이 문제는 이탈리아 환경부의 개입으로 정치적 문제로 전환되었다. 이탈리아 정부와 바티칸 정부의 대립은 이탈리아 국민들의 민족성과 종교성이라는 문제로 발전되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가톨릭신자로 살아가는 대부분의 이탈리아인들에게 이탈리아 정부와 가톨릭교회의 대립은 혼란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계기로 이탈리아 국민들에 대한 바티칸의 영향력은 상당히 상실되었다. 바티칸라디오방송은 전세계 40여개의 언어로 방송을 내보내면서 세계 어디서나 방송을 들을 수 있는 강력한 전파를 발사해왔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1931년에 문을 연 바티칸라디오방송국은 1957년에 철도를 사이에 두고 체사노의 반대편에 위치한 ‘산타마리아 디 갈레리아’라는 지역에 송신탑을 세운 이후 현재까지 수십개의 송신탑을 세운 바 있다. 바티칸쪽은 이탈리아 환경부의 방침을 ‘불법’이라고 주장하면서 1957년 이후 이 송신탑 지역이 이탈리아법이 적용되지 않는 ‘치외법권지대’라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전자방사능의 방출량이 이탈리아법에서 규정한 양을 4배 이상이나 초과한다는 이탈리아 정부의 주장에 유럽연합의 기준치를 대면서 적법하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이에 환경부 장관은 “이탈리아 국민들의 건강을 해치는 ‘치외법권지역’은 있을 수 없다”고 대응해왔다. 바티칸은 이탈리아 국민들의 원망의 대상이 된 것을 의식하여 라디오송신탑의 출력을 낮추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러나 계속 의사만 표시했지 실행은 전혀 되지 않았다.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환경부 장관이 4월10일 기자회견에서 더이상 미룰 수 없다면서 라디오송신탑들에 공급되는 전력을 차단하겠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바티칸라디오방송에 대한 로마 시민들의 의견은 대체로 하나로 모아졌는데 바티칸라디오방송이 종교적이라고 하기보다는 ‘상업적’이라는 것이었다. 출간된 책소개에서부터 순례여행 등에 대한 소개를 통해 청취자들의 소비욕구를 북돋우는 역할에 방송이 치우쳐 있다는 얘기다. 바티칸의 성베드로성당의 광장을 지나서 은행들과 관광용품 가게들로 붐비는 대로를 따라가다가 끝나는 곳의 왼쪽편에 보이는 바티칸라디오방송국의 안테나. 이곳 방송국의 책임자인 롬바르디 신부와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바쁘다는 이유로 아예 구내전화통화도 거절하는 모습에서 필자가 느낀 것은 이탈리아 정부의 관료들보다도 더 관료적이었다는 것이다. “전파출력 9볼트로 낮추겠다” 이탈리아 정부와 바티칸의 대립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직접 피해를 당하는 주민들이다. 로마 중심가에서 기차를 이용해 북쪽으로 약 30분쯤 가면 도시를 완전히 탈출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탈리아 특유의 광활한 평원과 접하게 된다. 그러나 기차 안에서 보이는 시골의 푸르름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갑자기 나타나는 거대한 송신탑들의 숲을 지나치게 된다. 이 송신탑들은 기차 안에서 2분 이상이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꽤나 넓게 자리잡고 있다. 바로 이곳 송신탑숲의 반대편에 위치한 작은 도시가 체사노다. 주거인구가 약 1만명가량으로 대부분은 로마에 일터를 갖고 있는 통근자들과 넓은 땅에서 목축과 밀재배로 삶을 이어가는 농민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육군포병학교가 주둔해 있어 기차역은 훈련병들의 발걸음으로 언제나 분주하다. 이 작은 시골도시인 체사노가 유명해진 것은 라디오전자방사능이 백혈병을 유발시켜서 8명의 어린이들이 숨졌다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발표가 난 이후이다. 기차 안에서 로마에서 일한다는 한 회사원과 대화할 때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라디오송신탑에서 15km나 떨어진 곳에서 사는 그는 전화나 인터폰에서 바티칸방송이 흘러나오고 TV에서도 바티칸라디오방송이 흘러나와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털어놓았다. 체사노에서 백혈병에 걸려 고생했다는 네살된 아이를 찾았다. 플라비아라는 아이는 2년 전에 백혈병으로 수개월간 병원신세를 진 경험이 있다. 현재 많이 좋아진 상태인지 아이들과 뛰어놀 정도로 회복됐다. 그의 부모인 오구스토 로시(41)는 “아이의 백혈병이 바티칸라디오송신탑에서 방출된 전자방사능에 의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미 1988부터 99년 사이에 여덟명의 어린이들이 백혈병으로 숨진 사실과 지금도 몇몇 어린이들이 백혈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라디오전자방사능의 해악에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체사노 시민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환경부 장관인 윌러 보르돈도 며칠 전 이곳을 방문하여 실제상황을 확인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 4월2일, 주민 200여명은 바티칸라디오방송국에서 집단시위를 벌였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라디오송신탑을 철폐하든지 다른 장소로 옮길 것을 방송국쪽에 강력히 요구했다. 이탈리아 환경부에서도 과학자들이 이 지역에 대한 피해를 조사한 결과 다른 지역들과 비교하여 백혈병의 발병정도가 훨씬 높게 나타났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발표하여 주민들의 주장에 과학성을 부여했다. 지난 4월14일 이탈리아 환경부 관계자와의 통화에서 바티칸방송국에서 전파출력을 9볼트로 낮추겠다는 것과 중파방송을 하루에 7시간 동안 중단하여 지역주민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함에 따라 협상이 타결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것은 사실상 이탈리아 국민들의 승리”라고 그 의의를 전했다. 로마=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