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종속국을 가르는 수십km 철조망 양쪽의 불법 이민자와 파수병, 그들은 모두 멕시코 사람들
▣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
미국과 멕시코는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남쪽에서 텍사스주 남단 브라운즈빌까지 장장 3천km가 넘는 국경을 맞대고 있다. 국경을 가르는 것은 늪지대와 가파른 계곡, 메마른 야산과 언덕이다. 그 국경의 서쪽에 ‘임페리얼 밸리’라는 이름을 가진 사막이 있고, ‘제국’과 ‘종속국’을 가르는 몇십km의 철조망이 있다. 국경의 위쪽, 그러니까 오늘날 미국의 광대한 서남부 지역은 19세기 중반까지는 멕시코 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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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민권은 정복하는 것” 바로 그 땅에 멕시코 사람들이 다시 몰려들고 있다. 전에도 불법 이주의 익숙한 통로가 되었던 그곳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뒤 급증한 멕시코의 빈민들이 매년 몇십만 명씩 새로운 삶을 찾아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다. 사막과 늪지대에서 국경수비대에게 발각돼 비참한 최후를 맞는 멕시코인들의 처절한 ‘생존투쟁’은, 그 맞은편에서 선조들이 빼앗은 국경을 철저히 수호하는 미국인들의 ‘애국전쟁’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이제는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서, 야음을 틈타 조국을 등지고 넘어오는 동족을 향해 망원경을 들이대고 총을 겨누는 상당수 국경수비대원들은 얄궂게도 몇십 년 전 똑같은 방식으로 국경을 넘어온 멕시코계 이민자의 자식이다. 미 이민당국이 스페인어를 할 줄 알면서 현장 사정에 익숙한 이들을 일부러 뽑아 배치한 것이다. 그 현장을 돌아본 프랑스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그런 교활한 조처를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혹시 ‘미국 시민권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게 함으로써, 그리고 그들을 과거 부모 세대가 피눈물을 흘리며 타넘었던 고난의 길을 지키는 파수병으로 세움으로써, 미국에 대한 오랜 욕망을 유지시키고자 하는’ 어떤 간책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지, 그 곤혹스런 장면의 정치적 함의를 묻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국경 봉쇄에 종사하는 것은 국토안보부 산하 국가기관만이 아니다. 국경지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각종 첨단장치를 설치해 월경자들의 체포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는, 관민 합동의 훌륭한 성공 사례를 연출하고 있다. 예컨대 애리조나주 팰로비나스 지역민들의 자경조직인 ‘테크노 패트리어츠’(Techno Patriots)는 국경선 안쪽 곳곳에 무인 카메라를 설치하고 이 카메라를 무선으로 인터넷과 연결해 각 회원들이 집에 앉아 수상한 이방인들을 철통같이 감시할 수 있게 했다. 그들은 컴퓨터 화면에 목표물이 출현하면 곧장 조직의 본부와 인근 국경수비대에 연락을 취한다.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입회비까지 내면서 가입해 하루 30분씩 자발적으로 근무하는 이 조직의 왕성한 활동 덕분에 최근 160건의 신고로 116명이 체포되는 성과를 거두었다는 소식이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이 작은 전쟁은, 다소 과장된 역사적인 비유를 동원하자면, 마치 로마제국 말기 게르만족의 국경선 침범 사태를 연상시킨다. 당시 내부적으로 이미 쇠망해가던 제국은 끊임없이 자신들을 괴롭히던 주변부의 ‘열등한 족속’들을 군사적으로 상대하느라 완전히 기운을 소진하고 말았다. 물론 과중한 징병과 조세에 시달리던 변방민들이 ‘이민족’에게 자발적으로 협력했던 로마와,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지키겠다고 나선 최근 미국의 처지는 다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현재 미국에 진출한 3천만 명의 거대한 히스패닉계 물결을 보고 있노라면, 150여 년 전 영토를 빼앗겼던 멕시코인들에게 허용된, 어떤 ‘역사적 간지(奸智)’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에서 스페인어권이 날로 확대되는 현상은 미국 사회를 내부로부터 잠식해가는 사회적 재편성의 새로운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중심부가 성장의 한계에 도달하다 역사상 수많은 제국의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는 그 물리적 확대지향성이다. 제국이라는 말 자체가 통치권을 가진 본국과 그 지배하에 있는 주변부를 지칭하는, 하나의 사회체제로서 제국의 본질적 특징을 담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제국이 확대지향성을 멈추었을 때 그것은 이미 제국으로서는 절정기를 지나 쇠락의 길에 들어선 중대한 징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제정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가 “제국은 성장하거나 아니면 소멸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고전적 제국의 작동 방식을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있었다. 오늘의 미국은 좀더 진화된 ‘신자유주의 제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팽창에 대한 집착은 고전적 제국에 비해 결코 약화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근래 미국은 그동안 승승장구해온 확장 노선이 안팎으로 심각한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으로만 보면 미국은 21세기 초반에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 넓은 세계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세계 지배를 능가하는 규모다. 하지만 벌거벗은 군사력은 그에 걸맞은 경제력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전세계에 퍼져 있는 미국의 군사기지는 점차 해당 지역에서 단지 점령군으로 고립되거나 심지어 인질로 전락하는 역설적인 양상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주변부에서 나타나는 헤게모니의 위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마도 미국이라는 중심국 자체가 사회적 공간을 확장하는 데 부닥친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기록이 말해주는 것은, 제국의 중심부가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주변부에서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열린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리얼리티, 곧 사회적 실제를 말하는 것이다. 해외로는 팽창, 내부로는 폐쇄 새로운 삶의 기회를 찾아 미국의 문을 두드리는 이민 지원자들은 계속 강화되는 각종 반이민 정책과 이민자들을 겨냥한 증오범죄에 따라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대통령 후보들 중 누구도 ‘합법 이민’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이민 지원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그나마 쇠퇴하는 미국 경제의 지탱에 불가피한 ‘불법체류자들’이다. 이처럼 밖으로만 빗장을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니다. 이미 미국 사회 안에서도 ‘성공 신화’는 뉴스거리로 취급될 정도로 점점 먼 옛날이야기가 되고 있다. 하층계급으로 자리를 굳힌 흑인과 최근 밀려드는 중남미계 신참자들이 열악한 일자리를 놓고 사활적인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오늘의 미국은 이중적인 모순에 봉착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세계 최강의 무력을 동원해 해외에서 무제한 팽창을 감행하면서도, 정작 제국의 본거지인 미국 사회 내부적으로는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추락하는 경제를 밑바닥에서 떠받치는 데 불가결한 값싼 노동력 이민자들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면서도 기존 시민들의 일자리 보호와 ‘국가 안보’의 이름으로 그들의 유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는 데 일등공신으로 보였던 ‘세계화’가 이제는 이 모순의 제국이 직면한 딜레마를 심화하는 데 톡톡히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시민권은 정복하는 것” 바로 그 땅에 멕시코 사람들이 다시 몰려들고 있다. 전에도 불법 이주의 익숙한 통로가 되었던 그곳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뒤 급증한 멕시코의 빈민들이 매년 몇십만 명씩 새로운 삶을 찾아 목숨을 걸고 있는 것이다. 사막과 늪지대에서 국경수비대에게 발각돼 비참한 최후를 맞는 멕시코인들의 처절한 ‘생존투쟁’은, 그 맞은편에서 선조들이 빼앗은 국경을 철저히 수호하는 미국인들의 ‘애국전쟁’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고 있다. 이제는 당당한 미국 시민으로서, 야음을 틈타 조국을 등지고 넘어오는 동족을 향해 망원경을 들이대고 총을 겨누는 상당수 국경수비대원들은 얄궂게도 몇십 년 전 똑같은 방식으로 국경을 넘어온 멕시코계 이민자의 자식이다. 미 이민당국이 스페인어를 할 줄 알면서 현장 사정에 익숙한 이들을 일부러 뽑아 배치한 것이다. 그 현장을 돌아본 프랑스인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그런 교활한 조처를 이해하기 힘들다면서, 혹시 ‘미국 시민권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복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게 함으로써, 그리고 그들을 과거 부모 세대가 피눈물을 흘리며 타넘었던 고난의 길을 지키는 파수병으로 세움으로써, 미국에 대한 오랜 욕망을 유지시키고자 하는’ 어떤 간책이 숨어 있는 것이 아닌지, 그 곤혹스런 장면의 정치적 함의를 묻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국경 봉쇄에 종사하는 것은 국토안보부 산하 국가기관만이 아니다. 국경지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각종 첨단장치를 설치해 월경자들의 체포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는, 관민 합동의 훌륭한 성공 사례를 연출하고 있다. 예컨대 애리조나주 팰로비나스 지역민들의 자경조직인 ‘테크노 패트리어츠’(Techno Patriots)는 국경선 안쪽 곳곳에 무인 카메라를 설치하고 이 카메라를 무선으로 인터넷과 연결해 각 회원들이 집에 앉아 수상한 이방인들을 철통같이 감시할 수 있게 했다. 그들은 컴퓨터 화면에 목표물이 출현하면 곧장 조직의 본부와 인근 국경수비대에 연락을 취한다.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입회비까지 내면서 가입해 하루 30분씩 자발적으로 근무하는 이 조직의 왕성한 활동 덕분에 최근 160건의 신고로 116명이 체포되는 성과를 거두었다는 소식이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날마다 벌어지는 이 작은 전쟁은, 다소 과장된 역사적인 비유를 동원하자면, 마치 로마제국 말기 게르만족의 국경선 침범 사태를 연상시킨다. 당시 내부적으로 이미 쇠망해가던 제국은 끊임없이 자신들을 괴롭히던 주변부의 ‘열등한 족속’들을 군사적으로 상대하느라 완전히 기운을 소진하고 말았다. 물론 과중한 징병과 조세에 시달리던 변방민들이 ‘이민족’에게 자발적으로 협력했던 로마와,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지키겠다고 나선 최근 미국의 처지는 다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현재 미국에 진출한 3천만 명의 거대한 히스패닉계 물결을 보고 있노라면, 150여 년 전 영토를 빼앗겼던 멕시코인들에게 허용된, 어떤 ‘역사적 간지(奸智)’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한 남부 지역에서 스페인어권이 날로 확대되는 현상은 미국 사회를 내부로부터 잠식해가는 사회적 재편성의 새로운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중심부가 성장의 한계에 도달하다 역사상 수많은 제국의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는 그 물리적 확대지향성이다. 제국이라는 말 자체가 통치권을 가진 본국과 그 지배하에 있는 주변부를 지칭하는, 하나의 사회체제로서 제국의 본질적 특징을 담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제국이 확대지향성을 멈추었을 때 그것은 이미 제국으로서는 절정기를 지나 쇠락의 길에 들어선 중대한 징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제정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가 “제국은 성장하거나 아니면 소멸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고전적 제국의 작동 방식을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있었다. 오늘의 미국은 좀더 진화된 ‘신자유주의 제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팽창에 대한 집착은 고전적 제국에 비해 결코 약화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근래 미국은 그동안 승승장구해온 확장 노선이 안팎으로 심각한 한계에 부딪힌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으로만 보면 미국은 21세기 초반에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 넓은 세계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세계 지배를 능가하는 규모다. 하지만 벌거벗은 군사력은 그에 걸맞은 경제력과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전세계에 퍼져 있는 미국의 군사기지는 점차 해당 지역에서 단지 점령군으로 고립되거나 심지어 인질로 전락하는 역설적인 양상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주변부에서 나타나는 헤게모니의 위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마도 미국이라는 중심국 자체가 사회적 공간을 확장하는 데 부닥친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기록이 말해주는 것은, 제국의 중심부가 성장의 한계에 다다랐을 때 주변부에서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미국은 더 이상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열린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이것은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리얼리티, 곧 사회적 실제를 말하는 것이다. 해외로는 팽창, 내부로는 폐쇄 새로운 삶의 기회를 찾아 미국의 문을 두드리는 이민 지원자들은 계속 강화되는 각종 반이민 정책과 이민자들을 겨냥한 증오범죄에 따라 점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대통령 후보들 중 누구도 ‘합법 이민’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이민 지원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그나마 쇠퇴하는 미국 경제의 지탱에 불가피한 ‘불법체류자들’이다. 이처럼 밖으로만 빗장을 걸어 잠그는 것이 아니다. 이미 미국 사회 안에서도 ‘성공 신화’는 뉴스거리로 취급될 정도로 점점 먼 옛날이야기가 되고 있다. 하층계급으로 자리를 굳힌 흑인과 최근 밀려드는 중남미계 신참자들이 열악한 일자리를 놓고 사활적인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오늘의 미국은 이중적인 모순에 봉착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세계 최강의 무력을 동원해 해외에서 무제한 팽창을 감행하면서도, 정작 제국의 본거지인 미국 사회 내부적으로는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추락하는 경제를 밑바닥에서 떠받치는 데 불가결한 값싼 노동력 이민자들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면서도 기존 시민들의 일자리 보호와 ‘국가 안보’의 이름으로 그들의 유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는 데 일등공신으로 보였던 ‘세계화’가 이제는 이 모순의 제국이 직면한 딜레마를 심화하는 데 톡톡히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