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침략이 ‘선물’한 민족주의 운동… 아랍 각국 감옥에서도 그 운동가들을 만난다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는 이스라엘의 ‘선물’이다.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는 민족주의의 냄새만 나도 송두리째 짓밟아버리는 이스라엘의 압박 속에서 오히려 무성히 자라났다고 보면 정확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늘 아랍의 유산과 조화를 이룬 자신들의 세계주의 전망에 대해 자부심을 지녀왔다. 그러나 이것은 1948년 전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창설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을 학살했던 그 ‘대재앙’의 폐허 위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식민주의의 실체를 보기 시작했다.
유행처럼 번진 ‘케피야’
1953년 7월23일, 친영국 노선을 걷던 이집트의 파로욱왕을 몰아내고 그 유명한 자말 압델 나세르가 등장하면서부터 아랍 민족주의는 아랍 전역으로 확대된다. 당시 나세르가 선거유세 과정에서 외쳤던 “아랍의 희망 속에 살아가자”는 구호는 바로 팔레스타인의 희망이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텐트에서는 나세르의 구호가 귀향을 위한 권리를 일깨운 구원의 소리였다. 그리고 이는 점차 이집트와 레바논을 비롯한 아랍의 대학 속으로 파고들어 강력한 운동단체를 결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런 가운데 걸프지역의 유전 발견은 쿠웨이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낙원으로 만든 동시에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으로 더욱 힘겨운 대응을 강요했다. 대학을 졸업한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사우디와 쿠웨이트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이들 가운데 한명이 바로 오늘날 팔레스타인자치기구 의장인 야세르 아라파트다.
그는 팔레스타인인의 귀향을 위해 ‘파타’라는 항쟁그룹을 결성해 무장투쟁을 선도했다. 아라파트는 즉각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고 1965년 이집트의 지원 아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창설해 대이스라엘 투쟁을 주도해나갔다. 아라파트가 즐겨 둘렀던 케피야(농민들의 두건)와 PLO는 공민권을 박탈당했던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는 이후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총리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누구인가”라는 파렴치한 성명서를 발표하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동시에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에 대한 이스라엘의 집요한 분쇄작전은 팔레스타인 영토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요르단과 레바논까지 확장돼나갔다. 이런 과정을 통해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상징으로 정착된 케피야의 착용은 아랍을 넘어 유럽의 좌파 운동가들에게도 유행처럼 퍼졌다. 당시 국제사회의 좌파 운동가들 사이에는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의 항쟁이 순결한 혁명의 상징처럼 인식되었다. 팔레스타인 민족주의는 의상에서 뿐만 아니라 점차 자신들의 뿌리를 찾는 본질적인 부분으로 확대돼나갔다. 음악과 연극, 미술을 비롯한 예술의 민족주의 전통 찾기와 더불어 정치적인 민족주의를 탐색하면서 자연스레 깃발이 민족의 상징 한가운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깃발과 같은 색깔의 옷을 입는 것조차 금지시키며 반팔레스타인 민족주의 강화에 심혈을 기울였다.
1987년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가 예기치 않은 상황에 직면했던 해이다. 1987년을 달구었던 팔레스타인의 인티파타(봉기)가 이스라엘을 벗어나 주변 아랍국들의 독재자들에게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아랍 독재자들은 팔레스타인 시민들이 외쳤던 인권을 비롯한 진보적인 요구들이 자국으로 전파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결과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 운동가들은 이제 아랍 각국의 감옥에서도 쉽사리 만날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자신들의 민족주의가 결코 배타적이거나 맹목적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심지어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학자나 정치가들은 팔레스타인의 민족주의가 유대교와 이스라엘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만 이스라엘의 침략에 대해서 저항하는 것이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본질이라고 여겨왔다. 이런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의 온건성은 1980년대 하마스의 창설과 함께 극심한 동요를 일으켜왔다. 자살폭탄공격이라는 충격적인 방식의 대이스라엘 투쟁을 시작한 하마스는 특히 완고한 종교주의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회교만이 해법이다.” 주목해볼 만한 하마스의 이 구호는 반이스라엘 투쟁을 넘는 수준의 민족주의를 의미했다.
눈여겨볼 것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가 늘 이스라엘의 공격 강도와 같은 수준의 궤적을 그려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최근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폭발세를 보이고 있는 민족주의는 이스라엘이 공정한 태도를 보일 때, 급격히 사그라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다오우드 쿠탑(Daoud Kuttab)/ 전 <알쿠드스신문> 기자·칼럼니스트

사진/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시위대의 충돌. 최근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폭발세를 보이고 있는 민족주의는 이스라엘이 공정한 태도를 보일 때 급격히 사그라질 것이다.(SYG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