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또 하나의 도그마, 민족주의

355
등록 : 2001-04-17 00:00 수정 :

크게 작게

세계화가 대안이 아니듯 이기적인 아시아판 민족주의도 우리의 대안은 아니다

“민족경제 파탄의 원흉 소로스 입국 반대.”

올해 초 방콕의 외신기자클럽이 말썽 많은 국제 투전가 조지 소로스를 초청해서 저간의 사정들을 몇 마디 들어보겠다고 발표하자, 타이 시민사회는 불같이 들고일어났다. 뜬금없이 이 사나이를 초청하겠다던 외신기자클럽도 수상했지만 그보다는 ‘정체불명’의 인물 하나에 사회 전체가 과연 ‘민족주의’를 내걸고 흥분할 만했는가라는 의문이 남는 사건이었다. “민족의 이름으로 그를 거부한다”며 제법 진보적 성향을 지닌 사회운동가들도 가세했다.

“매우 협소한 민족주의로, 타이사회의 전통적인 고질병이다.” 출라롱콘대학 정치학과 교수이자 정통 마르크시스트인 차이 웅파콘 같은 이들은 노골적으로 짜증을 냈다. “이들이 바로 버마 노동자들의 타이 입국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국제노동시장을 향해 일자리를 더 풀어라고 소리쳤던 이중적인 태도를 지닌 민족주의자들이다.”


소로스와 관련된 논쟁들

소로스가 타이경제를 망쳤는지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탐색이 필요한 일이지만, 적어도 민족국가의 이름으로 이중적인 잣대를 휘두르는 최근의 아시아판 민족주의 정서는 분명 세계 시민이 꿈꾸는 21세기의 ‘인본주의’에 오물을 끼얹고 있다.

그로부터 한달 뒤, 말레이시아로 넘어가 보자. 이번에는 말레이 민족주의를 내걸고 20년을 버텨온 마하티르 총리가 정부라는 최강 조직을 통해 ‘비판 탄압용’ 민족주의의 칼을 휘둘렀다. 공교롭게 여기도 소로스가 등장했다. “일부 언론이 소로스의 뒷돈을 받고 말레이시아를 자해하고 있다.” ‘말레이시아키니’라는 인터넷신문이 직격탄을 맞았다. 말레이시아에서 유일하게 그리고 거침없이 마하티르를 비판해온 이 신문은 지금 장래가 불투명한 채 비틀거리고 있다.

“아시아경제를 말아먹은 놈.” 마하티르의 원색적인 비난에 “민족을 이용해 먹는 지독한 독재자”로 맞받아쳤던 소로스, 이 ‘개와 원숭이 관계’는 적당히 서로의 생존에 봉사해온 셈인데, 문제는 다민족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민족차별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계나 인디아계와 같은 소수민족이 다수민족 말레이 중심사회에서 극도로 피곤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게 민족분쟁의 조짐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 이기적인 아시아판 민족주의는 전통적으로 다민족국가를 형성해온 아시아 전역에 불길한 민족분쟁의 기운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최근 아시아 전역으로 급격히 파급되고 있는 이 민족주의 기운은 국제사회의 새로운 지배이데올로기로 자리잡은 ‘세계화’의 골간을 이루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폭격기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당한 데 따른 반발심리를 이용한 또다른 형태의 도그마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반미정서를 적절히 이용하는 중국의 전통적인 대민족주의 기운, 민족분쟁으로 이미 조각난 인도네시아의 위험한 정치적 곡예, 50년을 끌어온 버마의 지독한 민족분쟁, 타밀족과 싱할리족의 전쟁으로 황폐해진 스리랑카, 그리고 필리핀,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중동 어디를 둘러봐도 현재 아시아가 지닌 모든 문제의 본질 속에는 협애한 민족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이번주 아시아 네트워크는 현재 이상기류를 타고 흘러가는 아시아의 민족주의를 한번 들여다보자는 뜻에서 ‘골치 아픈’ 자리를 마련했다. 오른쪽으로 급격히 쏠려가는 일본사회의 상징으로 떠오른 교과서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도도한 인도의 민족주의는 지금 어떤 꼴을 하고 있는가, 늘 가슴아픈 뉴스만을 전해주던 팔레스타인 시민들에게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이렇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는 세 나라의 민족주의 기운을 맞보며 아시아를 좀더 이해해보자는 뜻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민족주의 분위기는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점검해보자는 뜻을 함께 담았다.

끝으로 아시아 네트워크는 근대국가 형성 이후의 ‘편리한’ 개념인 이 민족주의를 마치 유구한 전통과 역사의 산물처럼 위조해 정치적 잇속을 챙기는 ‘날조민족주의’나, 또 살과 피를 내세워 시민들의 삶과 죽음을 마구 재단하는 ‘육질민족주의’도 모두 우리의 것이 아님을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자 한다.

세계화가 시민의 대안이 아니듯이, 그 저항 논리로 내세우는 희한한 민족주의도 마찬가지로 시민의 대안이 아님을 결론에 살짝 올려놓는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