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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미국의 용병 ‘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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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4-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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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용광로’라는 통념과 달리 ‘아파르트헤이트의 나라’… ‘원주민들’의 역대 전쟁 참전율이 어느 인종보다 높아

▣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

역사상 모든 제국은 무수한 희생자들의 주검 위에 세워진다. 아테네와 로마, 비잔티움과 장안, 그리고 페테르부르크와 런던의 화려한 궁정과 사원, 웅장한 광장과 시계탑 밑에는 당대 피정복민과 노예들의 원혼이 서려 있다. 미제국의 심장인 백악관과 의사당 건물이 로마 양식을 본떠 지어진 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할까? 영국으로부터 13개 식민지의 독립을 쟁취하고 합중국 헌법을 기초한 ‘건국의 시조들’은 이미 자신의 미래를 옛날 로마제국의 영광에 투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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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불균형’과 ‘광범위한 인종적 불균형’

제헌의회에서 만들어진 미국의 헌법이 각 주에서 통과된 지 220년이 지난 올해 3월 초,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의 인종차별철폐위원회(UNCERD)는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지속되는 상황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위원회는 미국 정부가 인디언, 흑인, 라티노, 아랍인 등 자국의 소수 인종들에게 가해지는 차별 조처를 시정하는 데 충분한 의지를 보이지 않고, 인종 간 평등이라는 국제 기준을 충족시키는 데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세계에서 대표적인 인권·법치국가로 자임하는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제3세계 나라들에나 어울릴 법한 후진국 취급을 받게 된 것이다.

주류 언론에서 자주 외면하는 인종차별 이슈를 비중 있게 다루는 신문 <인디언 컨트리 투데이>의 최근 보도를 보면, 미국은 공식적인 언명과는 달리 여전히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체계’를 유지하는 나라임이 확인되고 있다. 원주민의 실상을 반영한 UNCERD의 보고서는 미국의 소수인종들과 관련된 사법 체계에서 ‘뚜렷한 불균형’이, 그들의 인권·보건·주택·교육 분야에서 ‘광범위한 인종적 불균형’이 발견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단적인 사례로, 원주민 여성들에 대한 강간범죄가 제대로 처벌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미군이 동두천과 오키나와 등 해외에서 저지르는 성범죄에 둔감한 ‘점령군적 태도’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상황이라 할 것이다. 또한 보고서는 원주민들이 정신적·문화적으로 성지로 여기는 땅에 미국 정부와 대기업들이 핵폐기물이나 독성 물질 쓰레기들을 버리고, 천연자원을 마구 채취하는 ‘환경 인종주의’를 고발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물질적 수입, 평균수명, 실업, 형사처벌 등에서 사회적으로 압도적인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물론 정부 관리나 변호사, 의사 등 번듯하게 출세한 원주민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수의 원주민들은 전국에 산재한 340개 ‘보호구역’ 안에서 수공업 제품을 만들거나 당국이 허가한 볼품없는 카지노 운영으로 연명하거나 그도 아니면 빈곤과 무지, 알코올중독에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 원주민들이 처한 비참한 상황은, 미국이 개입한 역대 전쟁에서 바로 ‘인디언’이 어느 인종보다 높은 참전율을 자랑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역설적으로 보인다. 남북전쟁 때 양 진영에 동원되기 시작한 이래 2차 대전 기간에는 2만5천 명이, 그리고 한국전쟁에도 수천 명이 ‘미군’으로 참전해 각종 무공훈장을 받았다. 그 뒤 베트남전쟁에도 4만여 명이, 그리고 1991년 걸프전에도 3천여 명의 인디언 남녀가 작전에 참가한 것으로 보고됐다. 그 결과 근래 250만 명 남짓한 원주민 인구 중 성인 남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20만 명이 참전 경험자들이며, 각 부족 집단의 지도자들 중 퇴역 군인 출신이 45%를 넘는 비율을 차지하는 실정이다.

원주민 성인 남자 4분의 1이 참전 경험자

역사상 제국의 전쟁에 동원되는 소수민족은 피 튀기는 전선의 맨 앞에 투입되는 총알받이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다. 제국의 전장에서 그들은 한낱 창이나 총, 대포와 같은 전투자원, 곧 인간자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열등한 처지에서 탈출하려는 소수민족 출신 군인들에게 전쟁은 신분 상승의 유일한, 또는 가장 빠른 지름길로 여겨진다. 과거 로마제국은 속주 출신 군인이 25년간의 복무 기간을 다 채우면 시민권을 부여했다. 스무 살에 전쟁터에 나간 청년은 마흔다섯 중년-당시 평균수명으로 보자면 거의 노년-이 돼서야 비로소 제국의 시민으로서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적들의 독화살과 예리한 창, 그리고 전선의 살을 에는 추위와 기아, 속수무책인 전염병을 이기고 살아남아 끝내 고향으로 돌아온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지금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터에는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또는 자신의 출신성분으로는 정상적으로 획득할 수 없는 교육 기회와 안정된 직업을 얻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내걸고 전선에 나가 있는 미국 내 소수민족 또는 하층 출신 청춘들이 적지 않다. 1924년, 즉 1차 대전이 끝나고 6년 뒤에 미합중국 의회가 ‘인디언 시민법’을 통과시킨 것을 보면,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미제국의 정당한 시민권을 얻기 위해 ‘용맹과 애국심’을 발휘한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메리카제국의 내부 식민지’로 전락한 원주민들의 사회적 지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지는 못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의 반열에 오른 로널드 레이건은 재임 중 ‘(보호구역의) 인디언은 합중국 시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싸웠단 말인가?

본래 광활한 아메리카 땅의 원주민이 처한 오늘의 사회적 상황을 볼 때 미합중국이 ‘인종의 용광로’라는 통속적 관념은 허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는 제국이 지배민족·피지배민족이라는 위계 구조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숨기는 신화요, 특수하게는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인종주의가 살아 있는 미국 사회의 가면을 덮고 있는 포장지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반 윌슨 대통령 이래 미국 정부는 ‘인권외교’와 ‘인도주의적 개입’을 구호로 삼아 세계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파수꾼으로서 자신의 임무와 역할을 정당화해왔다. 하지만 정작 자기 나라 안에서 정복된 ‘인디언’과 비유럽 출신 소수민족들에 대한 차별정책은 그 구호들이 다분히 외교적 수사라는 사실을 방증해준다. 대외적으로 지킬 뜻이 없거나 지킬 능력이 없는 약속을 남발하는 것은 건국 초기부터 미국 외교의 뚜렷한 전통 중 하나이다.

건국 초기부터 이어져온 외교적 수사

처음 ‘신대륙’에 정착한 유럽 출신 백인들이, 본래 그곳에서 자유로운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압박해 내쫓고 점령하는 과정은 거듭된 사기극과 잔혹한 살육의 연속이다. 미국 대통령이 1829년 3월23일자로 크리크족에게 보낸 서한에는 “당신들과 당신들의 모든 자손은 앞으로 풀이 자라는 한, 그리고 물이 마를 때까지 평화롭고 풍족하게 그곳에서 살 수 있을 것이오. 그 땅은 영원히 당신들의 소유가 될 것이오”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원주민의 땅을 빼앗거나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맺은 수많은 ‘조약’들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그들의 약속은 휴지 조각이 되고 원주민은 낯선 땅에서 또다시 쫓겨나거나 그에 저항하면 몰살당하는 운명을 맞았다.

그렇게 하여 북미 대륙에서만 약 900만 명을 헤아리는 원주민이 처음에는 스페인과 영국 등 유럽제국의 총칼 아래, 그리고 나중에는 미제국의 탐욕스런 ‘서부 개척’의 희생물이 되었다. 악명 높은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대량학살)는 서구 문명사에서 유일한 사건도, 가장 잔혹한 대량학살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스페인 왕실이 공인한 노예사냥꾼이자 아메리카제국에 최초로 길을 터준 학살자 콜럼버스는 미국인들에게 ‘신대륙의 발견자’로서, 매년 ‘콜럼버스 데이’(10월12일)의 영웅으로 당당히 기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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